선생님은 기록 쟁이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내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번역된다. 남의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언어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서. (중략) 글을 쓰는 과정은 나라는 사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_<기록의 쓸모, p151 중>_
‘나의 언어로 살기 위해 쓰는 것’,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은 것’, ‘나라는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인 것’. 기록의 쓸모 저자가 말하는 기록과 글쓰기를 통해 얻게 되는 과정에 동의하는 바이다.
사실 나는 책을 읽는 행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랬던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간다니 참 많이도 발전했다. 어떻게 이런 발전을 하게 되었을까? 처음엔 책을 읽는 사람이 지적 여보여 나도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괜히 가지도 않던 서점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내 모습이니 책이 읽힐 리가 있나! 무슨 소리인지도, 와닿지도 않았다. 그래도 자꾸 만나게 되면 친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의식적으로 책과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잘 읽히는 책을 찾게 되었고 가끔은 책 속에 나오는 문장이 나를 위로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구절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은 것이지?’, ‘나는 누구지?’, '잠깐,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내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난 그동안 누군가에겐 잘 맞추는 사람이었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맞춤형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삶의 주체는 ‘내가’ 아닌 ‘너’로 형성된 빈 껍데기뿐이었다. 충격이다. 나는 그럼 어디서부터 나를 돌아보고 찾아야 할까? 그 해답은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사춘기도 아닌데, ‘나는 누구인가?’ 질문에 답하려 글을 끄적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여행지, 이뤄내고 싶은 것을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처음엔 한 개도 쓰지 못하다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하나, 둘 써 내려갔다. 그렇게 첫 버킷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써 내려간 버킷리스트 목록을 지워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혼밥 먹기’였다. 이유는, 그동안 독립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온 터라 혼자 밥 먹어 볼 생각조차 못 해봤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람이 한적한 식당에 들어가 평소 자주 먹는 음식으로 주문했다. 사람들 시선이 너무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각자 주문한 음식 먹기 바빴고, 나라는 사람 따위 들어왔는지 안 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어 보였다. 그렇게 첫 번째 리스트를 어렵지 않게 무사히 해결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혼자서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다음 버킷리스트가 뭐였더라?’
‘혼자 여행하기’ 두 번째 할 일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책을 읽었고,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은 당연히 없으니 책에서 하라는 그대로 여행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여행이 시작된다. 무사히 첫 여행을 마친 뒤론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국내 방방곡곡을 누비다 가까운 해외여행까지 혼자 가게 되고, 정점으로 유럽을 간다.
이렇게 점차 혼자 해낸 것이 쌓이니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내게 자주 ‘잘 있느냐’ 안부도 물으며 나와의 관계도 잘 이어나갔다. 이에, 위에서 언급한 기록의 쓸모 본문 중 ‘글을 쓰는 과정은 나라는 사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라는 구절에 동의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혼밥 먹기로 시작해 먼 나라 유럽 여행까지 모든 걸 마친 나의 일련의 과정에서 스스로 던진 수많은 질문과 답을 끄적인 기록이 차곡히 쌓여있었다. 내가 깨달은 그 많은 기록들, 그것들을 모아 책이 내고 싶어 졌다. 책 쓰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래도 그냥 해보기로 했다.
결국, 내 바람대로 내 이름으로 된 <당신의 삶 속 N> 첫 에세이를 독립출판을 통해 출간하는 경험을 하며 ‘작가’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처음엔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글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또, 내가 겪은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도 얻고 싶었다. 글쓰기는 이렇게 내게 또 하나의 부캐(부캐릭터)를 선물해줬으며 나의 삶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오늘, 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하루일 수 있다. 작은 기록의 반란을 믿고 오늘도 나는 은밀히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