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재능을 깨워라!
“남 눈치 보지 말고, 일단 하자! 생각보다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눈칫밥’ 먹으며 자라온 세월도 어느덧 계란 한 판을 채워간다. 내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고3 시절도 지났고, 내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채 어느새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린, 남이 정해준 기준과 틀 속에서 살아가기 바빴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성장하면 학교라는 좀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간다. 그 사회 속에서 시험이라는 평가에 무너지기도 하고, 때론 좋은 성적이 나를 웃게 만들기도 하며 그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10대를 보낸다. 이러한 경쟁으로 쌓아온 모든 과정이 내게 남겨준 건 무엇일까?
그건, 결국 ‘눈칫밥’이다. ‘나는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왔는데, 쟤는 벌써 저기까지 갔네.’, ‘쟤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하겠어?’ 등..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남이 정한 틀 속에 맞추려 눈치싸움을 한다. 그러다 남이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기라도 하면 좌절을 맛보고 실패자란 낙오를 스스로 찍는다. 그렇게 정한 기준의 실패는 과연 실패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저 우린 남과 다를 뿐이다. 모두가 다 다른 생김새를 가진 것처럼.
사실, 나 또한 10대를 지나 20대를 꽤 보내면서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내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인간관계가 나를 대신 설명해줄 매개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모임도 빠지지 않고 나가려 했다. 또, 또래가 하는 것은 다 따라 해보기도 하고 내가 들어줄 수 없을 무리한 부탁마저 거절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참아가며 들어준 적도 많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난 그저 빈껍데기에 불과한 사람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없었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 였다. 독립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혼자 해낼 것조차 없는 의존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힘을 믿는다. 그렇게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만 나의 존재를 확인하던 내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며 해낸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보내며 깨달은 결론은, 남을 위한 ‘눈칫밥’은 나를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결국 내 눈치를 보며 나를 돌봐야 내가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장은 언제나 성장통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단숨에 성장시켜주지 않고, 쉽게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되도록 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늘 내게 질문해야 했다. ‘넌 누구니?’, ‘넌 무엇을 좋아하니?’,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라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나’와 가까워지려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얻은 건, ‘나’라는 사람은 꽤 많은 것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있었다. 또,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였다. 그러나 도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매번 모든 게 좋은 결과를 안겨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니 내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웬만한 실패에는 굴하지 않은 매집과 유연하게 넘길 줄 아는 사고를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묻고 생각하며 결국 나를 ‘N 잡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가 누군가를 위한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왔다면 난 그저 누군가를 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남 눈치 보다 내 눈치를 더 많이 보며 살아간다. 하루를 보내더라도 ‘오늘 하루 너에게 떳떳할 만큼 잘 살아냈니?’라며 스스로 물었을 때 자신에게 부끄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러니 이제,
“남 눈치 보지 말고, 일단 하자! 생각보다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꿈틀거리는 당신 안에 재능을 깨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