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
상담실에 앉아 있으면 부모와 아이가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어머니는 부모상담에서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며 깊은 피로와 무력감을 토로한다. 아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떨군 채 속삭인다. “엄마는 나를 늘 화난 눈으로 본다.”
어머니의 말에는 통제되지 않는 삶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스며 있고, 아이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늘한 체감이 담겨 있다. 두 목소리는 한자리에 모이지 않았지만 묘하게 닮아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속에는 같은 갈망이 숨어 있다.
“나를 조금만 더 이해해 달라.”
부모상담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종종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아이와 부딪히고, 화내고, 후회하는 자신을 견디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 고백의 밑바닥에는 아이를 향한 사랑이 놓여 있다. 사랑이 크기에 불안도 커지고, 불안은 더 단단히 붙잡으려는 힘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애씀은 때로 아이에게는 숨 막히는 족쇄가 되어 버린다.
반대로 아이상담에서는 언어 대신 행동이 목소리를 대신한다. 블록을 높이 쌓아 올렸다가 일부러 무너뜨리며 흘깃 보내는 눈빛, 지시에 반대로 움직이며 살피는 시선. 그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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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너지는 걸 봐줘.”
“내가 이래도 괜찮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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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부모를 향한 간절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를 조금 더 봐 달라.”
상담자는 부모와 아이를 따로 만나지만, 그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을 느낀다. 부모의 불안, 아이의 갈망, 그리고 두 사람을 휘감는 긴장감이 교차할 때 관계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때마다 깨닫는다. 관계는 결국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이며 “나는 늘 부족하다”라고 믿는다면, 그 시선은 아이에게로 옮겨간다. 아이는 “나는 괜찮지 않다”는 감각을 배우고, 그 마음은 또 다른 행동으로 튀어나온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아이의 서툼조차 가능성으로 읽어낼 수 있다. 아이의 눈빛과 몸짓에는 늘 부모의 내면이 투영되어 있다.
관계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오해와 갈등은 언제든 생기고, 가까움과 멂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 흔들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담 속에서 배운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야 뿌리가 깊어지듯, 부모와 아이의 갈등 또한 서로를 단단히 묶어주는 뿌리가 될 수 있다. 상담의 역할은 그 흔들림을 두려움이 아닌 성장의 신호로 전환해 주는 일이다.
관계는 결국 거울이다. 부모는 아이 속에서 자신을 보고, 아이는 부모의 눈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또 하나의 거울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다. 왜곡된 반사 대신 조금 더 맑은 빛을 비추어,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진짜 얼굴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상담자로서 내가 관계 앞에서 감당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을 오늘도 곱씹는다.
오늘도 나는 관계라는 거울 앞에서, 나와 당신의 얼굴을 함께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