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TV 방송에서 3년 전 여행을 갔었던 담양 국수거리가 나왔다. 연예인들이 맛있게 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니 내 입속에도 그때 먹었던 국수의 맛이 맴돌았다. 당장 국수를 먹으러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급하게 일정을 잡고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는 숙소를 찾아 예약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거의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이 당연시되었다. 여행 장소를 선택할 때도 숙소를 선택할 때도 모든 기준은 뚱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느냐이다. 그런 면에서 담양은 썩 만족할 만한 곳이다.
소쇄원이나 메타세쿼이아길을 같이 갈 수 있고, 애견 동반 숙소나 식당, 카페도 제법 많은 편인 데다가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 첫날 저녁 식사는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국수로 정했다. 담양 국수거리는 관방천이 흐르는 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천을 사이에 두고 죽녹원과 국수거리가 마주 보고 있다. 규모가 작은 국숫집 한 열 집이 쭉 늘어서 있는데 국수를 먹는 곳은 식당 안이 아니라 천변 옆에 위치해 있는 야외 평상이다. 초록색으로 덮인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 제방 아래로 흐르는 물과 건너편 풍경을 보며 국수를 먹는 그 맛이란. 국수 한두 줄을 평상 위에 넙죽 엎드려있는 뚱이에게도 먹여주며 같이 행복을 느낀다.
사실 국수 맛을 누가 물어본다면 그냥 평범한 멸치육수의 국수 맛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별다를 게 없다. 국수가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나. 하지만, 평범한 국수와의 차이점을 꽂으라면 면이 중면이라는 것이다. 이 국수거리는 플라스틱에 자리를 빼앗겨버린 대나무 용품을 팔던 죽물시장(대나무 오일장)의 상인과 구경꾼들이 간단한 한 끼를 해결하던 식당들이었다고 한다. 허기를 달래기에는 중면이 포만감을 줘서 소면 대신 중면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죽물시장은 문을 닫았고, 국수거리만 남은 것이다. 오래전 시장의 풍경을 상상해 보면 못내 아쉽다. 편리하고 값싼 물건들에 밀려난 것이 대나무 바구니 하나만은 아니다. 사라진 옛것들은 아련한 고향 같아 그저 그리울 뿐이다.
국수거리에서 출발해서 관방천의 제방을 따라 걸으면 아름드리나무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1648년 조선시대 인조 26년에 잦은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푸조나무를 길을 따라 심어 관방제림길을 조성했다고 한다. 3~400년 나이를 먹은 나무가 180여 그루 심어진 둑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꼭 권한다. 더운 초여름 날씨에도 커다란 나무로 가득한 길을 걸으면 더위는 사라지고 숲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느 마을에서는 큰 대접을 받을만한 오래된 나무들인데 여기서는 너무 흔해서 이름표조차도 나무 1, 나무 2 이런 식이다. 하지만 베어지지 않고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모두 모여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관방제림길을 쭉 40여 분 걸어가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시작하는 메타프로방스에 도착하게 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까지 걸어가면 하루가 꽉 채워진다. 500년 전 만들어진 정원인 소쇄원도 고택이 있는 슬로시티도 강아지와 같이 가기 좋다. 담양은 두 번 다 늦봄에 방문했지만, 가을 단풍 들었을 때는 더욱 멋있는 경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이 딱 방문하기 좋겠다. 누군가 담양을 간다고 한다면 국수거리와 관방제림길을 꼬옥 가보라고 추천할 것이다. 몇 년 후 또 뜬금없이 국수거리가 떠오르면 나는 다시 또 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뚱이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