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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 하기

by 모래알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부지런한 성격이 못 된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아주 게으른 편에 속한다. 26년 차 주부이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귀찮은 일투성이다. 한번 하기 싫다고 미뤄둔 일은 어찌 된 영문인지 계속 미뤄지기 일쑤다. 작년 이맘때 여행 갈 때 썼던 모자는 1년 내내 세탁실에서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고, 해마다 겨울만 되면 문풍지를 사야 한다고 생각만 한 지 벌써 3년도 지났다.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는 일은 그나마 덜 싫어하지만, 청소나 정리는 몇십 년이 지나도 영 친해지기 힘든 존재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핑곗거리조차 없다. 이렇게 게으른 내가 요즈음 해결법 하나를 찾았다. 그건 바로 ‘30분만 하기’이다.


몇 달 전 읽은 책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이치다 노리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언젠가 청소의 달인에게 배운 핵심은 두가지였습니다. ‘청소는 더럽지 않더라도 매일 한다’, 그리고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 귀찮다, 힘들어, 하기 싫어, 라는 생각이 들 틈을 주지 않는게 핵심이지요. 저녁 식사 준비도 30분이면 됩니다.- 완벽한 청소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제의 내용이었는데 왠지 나 같은 귀차니즘에게 딱 들어맞는 처방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엔 억지로 몇 시간씩 진을 빼며 하다가 탈진되고 짜증만 나는 상황을 그만하고 싶었다.


집안일은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의무적으로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아무리 잘해도 표시가 안 나는데, 안 하면 바로 표시가 나는 게 집안일이라 하지 않던가. 거기에 육아까지 합쳐지면 일은 몇 배로 늘어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신경질이 나 있었다. 부엌일을 할 때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옆에서 계속 말을 걸면 그냥 화가 났다. 지금 와서 보니 아마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힘든데 해야 하니까 짜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걸 나이 오십이 돼서야 알았다. 이제는 내가 지금 몸이 힘든 상태구나 하고 스스로 알아채고 쉬려고 한다. 하지만, 이왕이면 신경질이 아예 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해결책이 될 것 같았다.


당장 책이 가르쳐준 방법을 적용해 보았다. 청소기 돌리는 시간 30분, 현관 타일 걸레질 30분, 요리하는 시간 30분 이런 식이다. 어떤 종류의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해야 할 때는 타이머에 30분 입력하고 움직인다.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알람이 울리면 미련 없이 바로 멈춘다. 생각보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해야 할 일을 덜 미루게 되었다. 청소해야지 하고 며칠을 미루는 것보다는 짧은 시간 매일 하는 게 결과물도 더 훌륭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칭찬의 의미로 쉬는 시간을 준다. 30분 일하고 30분 쉬기,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1시간 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다. 게다가 미뤘던 일을 한 다음이라 그런지 뿌듯하다.


물론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일도 꽤 많다. 저녁 식사 준비로 반찬을 만드는 도중에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걸레를 던져버리고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꽤 많은 일들을 짧게 짧게 끝내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덜어져서 짜증 지수도 많이 낮아졌다. 이 방법을 진작 알았더라면 아이들의 공부 시간을 30분 단위로 줬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찾아보니 사람의 집중력도 최대 30분 정도라고 한다. 싫어하는 과목 공부 시간을 30분 단위로 했다면 아들의 성적이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을 30분으로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의 마음가짐으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이들에게도 더 다정한 엄마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아쉬운 맘이 든다. 30분 하기 실천 후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의무적으로 강제로 해야 하는 일들, 하기 싫었던 일들은 무조건 30분만 하기로 했더니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귀찮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현저하게 줄었다. 30분은 게으른 나를 설득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잠깐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내 무거운 엉덩이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전보다 미루는 일들이 줄어들면서 맘의 짐도 줄어들어 홀가분해졌다. 물론 집안은 완벽하게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지만, 내 하루하루의 시간은 만족감으로 꽉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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