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뜨 피아프의 샹송을 들으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으로 한층 무르익은 가을을 바라본다. 앉으면 바로 책을 읽곤 하던 다른 날과 달리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무들과 더 멀리 날아올라 가버린 파란 하늘 그리고 호수의 눈부신 윤슬을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책을 읽을 때면 늘 음악을 듣는데, 가을의 향기가 물씬 나는 이런 날엔 당연히 샹송이다. 좋아하는 샹송은 귀에 익숙한 오래된 곡들, 사랑의 찬가나 장밋빛 인생, 빠담빠담 같은 누구나 아는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의 노래들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나 그녀의 곡인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이다.
샹송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에디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가수인 그녀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친할머니가 경영하는 매춘업소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 손에서 자랐고, 가난한 환경 탓에 늘 영양실조에 시달려서 키가 142cm밖에 자라지 못했다. 14세에 집을 나와 이후 스무 살 무렵까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고, 이때 그녀 인생의 유일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2살 때 뇌수막염으로 죽었다. 스무 살 중반 이후부터는 가수로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그녀의 삶은 장밋빛 인생으로 변한 듯했다.
신은 아름다운 목소리와 명성을 그녀에게 준 대신, 평범한 행복은 주지 않았다. ‘이브 몽탕’을 비롯한 많은 남자와 사랑을 했지만, 진정 사랑한 남자는 에디뜨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는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순회공연을 하면서 교통사고를 네 번이나 겪었고,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견디기 위해 손을 댄 모르핀에 중독되었다.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원인도 모르핀 중독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죽기 3년 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이다. 물론 곡을 만든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그녀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요, 그 어떤 것도 난 후회하지 않아요/사람들이 내게 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제겐 마찬가지랍니다/아니요, 그 어떤 것도 난 후회하지 않아요/이미 대가를 치렀고, 지웠고, 잊어버렸죠/그저 과거일 뿐이에요/문득 추억이 떠올라 후회와 기쁨들이 되살아났지요/하지만 제겐 그 어떤 것도 이제 필요치 않답니다/요동치던 사랑에 대한 기억들도 다 지워버렸어요/영원히 지워버린 지금 난 새로 시작할 거예요/내 인생이나 나의 기쁨들은 이제 당신과 함께 시작될 거니까요”
이미 죽음을 앞둔 그녀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는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나온 불행조차도 다 껴안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불완전한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면과 고단한 삶을 어떻게든 이겨내는 의지가 느껴진다. 수년 전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이후 혼자 방황 아닌 방황을 했었다. 너무 힘들다며 나온 것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이 노래를 한 시간 내내 반복해서 들으며 산책했다. 노랫말처럼 수년간의 맘고생으로 나는 아마 대가를 치른 것 같고, 이제 그 모든 걸 과거로 넘기며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우리의 인생 1막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라면, 인생 2막은 이제 지나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완벽한 삶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여줄 때이다. 물론 긴 인생의 시간 속에는 실수할 때도 있었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도 있었고,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이었던 시절도 있다.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다 내가 견뎌온 삶이고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그냥 잘 이겨내고 잘 살았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보듬어 안아주자. 먼 길을 걸어온 자신을 사랑하며 아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