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

면접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드는 생각들

by 세니seny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좋다. 이 거리가 언젠가 나의 출퇴근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광화문역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시위가 없는 이 동네는 참으로 조용하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 아까 면접 가는 동안에는 일부러 노래도 안 듣고 유튜브도 안 켰다. 그 대신 면접 예상답변을 준비하고 그도 아니면 그냥 떨려서 가만히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핸드폰 데이터 충전도 했겠다, 신나게 데이터를 펑펑 쓰면서 유튜브를 보며 왔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 우효의 <brave>를 들으며 용기를 충전했다. 그런데 관련 추천곡으로 뜨는 제목이 참 맛있어 보이는 우효의 <pizza>란 노래를 들었다. 분명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노래. 그때는 임팩트가 없어서 이후로 안 들었었는데 오늘 다시 들으니 임팩트 있네? 조곤조곤한 가사를 들어보니 좋아.


<brave>, 우효
<pizza>, 우효


오후의 햇살,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싫다. 집에는 다섯 시까지만 들어가면 되니까 아직 시간이 있어. 그래, 좀 걷자. 산책을 하던 게... 보자 보자, 작년 11월 중순 이후로는 날도 추워지고 11월 말에 있을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까 밖에 안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날이 추워져서 산책은 하지 않았다.


아직도 나무는 헐벗은 겨울이다. 하지만 똑같은 겨울이어도 겨울 초입에서 한겨울로 들어가는 겨울과 이제 겨울의 끝에서 봄으로 향하는 겨울은 다르다. 지금은 후자다.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발견한 좋은 노래와 걷기 좋은 산책로와 결과는 아직 모르겠지만 면접 하나가 끝났다. 아쉬운 건 이번 봄이 지나면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뿐.


그러고 보면 이 집에 입주하고 첫 1년은 일하느라 정신없어서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거나 (그러고 보니 야근도 오지게 많이 했네... 하) 주말에 집에 잠깐 붙어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머지 1년은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그리고 다가오는 이번 봄까지 계속 집에 붙어있게 되었다. 마치 지난 1년 간 집에 있지 않았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서류상 퇴사는 작년 5월이지만 실제 마지막 근무는 4월 초중순까지였기에 나의 퇴사의 감각은 4월에 맞춰져 있었다. 아직 벚꽃 잎이 다 떨어지지 않은 그래서 밤에는 조금 쌀쌀한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어서 두근거림을 불러오는 그런 봄밤이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벚꽃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아아, 이제 이 풍경은 1년 뒤에나 볼 수 있겠지.


그 1년 뒤가 곧 다가온다. 그리고 곧 이사를 가게 되었으니 마지막 풍경이 되기도 한다. 그건 예상 못했지. 그때는 이사를 갈지 말지,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한 달하고도 보름정도 후면 마지막 출근을 한지 벌써 꽉 채워서 1년(!)이다. 그리고 2024년이 아닌 2025년의 벚꽃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2026년에는 앞으로 당분간 들어가서 살게 될 본가 앞의 벚꽃길을 보게 될까 아니면 나도 모를 또 어딘가의 새로운 동네에서 벚꽃이 가득한 풍경을 될까.


겨울이지만 따스함을 머금은 햇살을 맞으며 우효의 <꿀차>를, <vinyard>를 들으며 산책길 중간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렇게 퇴근길이나 집에 들어오는 길에 음악을 듣다가 너무 좋아서,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아쉬워서 천변 산책길로 전진했던 순간들. 앞으로도 그건 변함없겠지만 이런 순간에도 아무한테도 늦게 간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고 있고 싶은 대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고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냐는 둥과 같은 이런저런 소릴 듣게 되겠지.


면접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산책을 해서 좋았다. 겨울이 이 정도로만 따뜻하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구온난화는 걱정되지만 추위가 싫고 그 추위 때문에 마음 놓고 하는 산책이 어려운 나에게는 그래서 겨울이 싫은 나에게는 그저 역시 겨울이 조금만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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