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 아니 문득 떠오른 첫 여행의 기억 (4)

여행 vs 관광. 하지만 내가 이것을 여행이라 정의 내린 건...

by 세니seny
'여행'의 정의는 무엇인가?
무엇이 '관광'과 다른 것인가?


헷갈린다. 이건 분명 단체여행이므로 관광의 성격이 더 짙은, 내가 원하는 코스를 능동적으로 방문한다기보다 여행사에서 짜놓은 여행지를 방문하는 것이므로 수동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여행'이라 정의 내린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스스로
일상을 탈출할
생각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실행했다는 것.


위의 문장 자체로 여행이 성립된다고 본 거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그 행동을 해서 나를 함께 경험하게 함으로써 얼결에 일상을 탈출했고 여행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다.


지금도 생각나는 여행 중 에피소드 하나.


여행가격이 참 저렴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여정 중간에 그렇게 자꾸 뭘 사라고 농장이나 가게를 들렀기 때문이었다. 충격적이었던 건 사슴농장에 가서 한참 떠들어대고는 물건을 사라고 하면서 사슴즙이었나 사슴고기였나를 먹어보라고 줬다. 아니, 그 귀여운 사슴을 어떻게 먹나 싶어서 안 먹었는데… 먹지도 않았는데 비린 느낌.


이런 게 여행인 건가? 싶어 현타가 오면서도 <추적 60분>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듯한 코너가 생각났다. 일명 현장르포 형식으로 이런 식의 저가 패키지여행을 가면 추가비용이 많이 발생하거나 이상한 쇼핑센터에 들러 물건을 강매한다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피식 웃었다.저렴한 건 다~~~~~ 이유가 있다는 것 또한 확실하게 몸에 새기게 된 거다.


지금은 여행의 세부내역이 잘 기억나지도 않는 나에게 '수덕사'라는 지명과 '사슴농장'의 강렬한 기억만을 남겨준 여행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을 나의 '여행'의 시작이라 부를 것이다.


여행은 인생을 사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의식주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여행은 안 가도 죽지 않는다. 그러니까 안 가도 그만이다.


하지만 안온하고 지루한 일상, 안전한 곳을 잠시나마 벗어날 용기를 택한 것이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 여행이라는 건 아무래도 잘 모르는 낯선 지역에 간다는 것이다. 일상생활보다는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국내도 아니고 외국으로 나간다면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달라 더 위험하다.


하지만 그것에 시간과 돈이라는 귀중한 것을 쓰고 대신 경험과 추억과 기억과 체험과 교환하는 것. 그런 메커니즘을 몸에 익히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 밖에도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의식주 이외의 것이 오히려 의식주를 떠받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아침, 저녁, 평일 그리고 주말 밤낮없이 일하던 엄마. 그 와중에 집안일 챙겨, 집에서 밥과 반찬을 꼬박 다 만들어서 우리 가족 든든히 챙겨 먹이고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그래서 도저히 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삶. 물론 당신이 지쳐서였을 수도 있고 가족 중심의 삶을 사느라 친구와의 만남도 끊고 살아서 갑자기 여행 갈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나를 그 여행에 데려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 처음으로 꽤나 큰, 씁쓸한 실패를 하고 기운이 빠져 있을 때 그 여행이 나를 환기시켜 준 것이다. 그냥 '힘내' '잘될 거야'라는 말보다(물론 이런 말도 도움이 된다) 말이 아닌 주변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을 바꿔준 엄마에게 고맙다.


당시에도 고맙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다른 관점에서 더 그런 마음이 든다. 단순히 내 기분을 전환시켜 준 것 외에도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여유를 내서 기분 전환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살면서 가끔 여행도 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아니... 그런데 왜 나는 이 문장들을 쓰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걸까?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그래야만 한다는 걸 은연중에 배웠다는 점에서 엄마에게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나도 지쳐있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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