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려워 (3)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by 세니seny

그런데 저기 아래 어느 층인가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웅얼거리는 목소릴 들으니까 아니 이건 우리 부서의 3부장님(=3분의 부장님) 아닌가!


계단이라 목소리가 울려서 대화내용이 자세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내 사수인 OO부장님이 아침에 있었던 사태에 대해 말하면 나머지 부장님들이 동조하면서 서로 힘든 얘기하고 까는 식의 대화였다. 마치 우리 여직원들이 회의실에서 점심 먹으며 험담을 하는 것처럼.


나는 세 부장님이 대화를 나누는, 계단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내가 이상한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그러다 부장님들이 계단을 빠져나가고 나서도 한참을 서있다가 사람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마 울음을 참았으면 기분이 더 엿 같았을지 모른다. 울고 왔더니 그래도 좀 나아졌다.


그날 오후.

부장님께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다.


뭔지 알 것 같다. 혹시 나 나가라는 건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나?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용은 예상했듯이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처음엔 앞으로의 내 커리어나 업무 방향 제시를 하시는가 싶었지만 결론은 어제 있었던 일 얘기다.


어쨌든 같은 사무실에서 계속 마주칠 거고 그 사람은 2,3년 있으면 정년퇴직할 거고 YY씨(나)가 더 오래 다닐 거니까(어딜 봐서? 참나ㅎ)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서로 껄끄럽지 않게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요령 있게 애교도 떨고 그러라는 충고를 해주셨다.


부장님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런 사람에게 부릴 애교 따윈 없어요. 그리고 어찌 되었던 그분이 정년퇴직을 하던 뭘 하던 그전에 내가 먼저 그만둘 거니 그것도 해당사항 없다고요.


하지만 이직하기 전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로컬이냐 외국계냐의 문제는 아니다. 진짜로. 이건 그냥 그 사람의 문제라고요.


아무튼 주말에 이 문제에 대해 좀 생각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퇴근할 때쯤 되니 주말 넘기지 말고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전무님이 방에 혼자 계시길래 슬쩍 가서 문을 두들기고 들어갔다.


어제는 욱해서 죄송했다고 하니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이고, 여기가 체계가 없고 자기가 바쁘고 어쩌고 됐다'며 사과를 받아주셨다. 됐어. 난 이걸로 만족할래.


그리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이런 건 희생할 수 있지, 아무렴. 크게 전진하기 위해서 그저 살짝, 한 보 후퇴한 것일 뿐이야'라는 멋진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니 잘한 거라고.


그러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길 다니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불안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끼어들게 된 이 판에서,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휘두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힘들었던 11월도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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