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독립영화 보기 (3)

전주를 여행하며 독립영화 한 편 보기

by 세니seny

그다음 날은 대전에서 멀지 않은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서는 매년 4월 말경 ‘전주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 때문에 전주에 와서 영화를 본 적은 여러 번 있다. 영화의 거리에는 CGV, 메가박스뿐만 아니라 오늘 갔던 전주독립영화관이나 다른 작은 소규모의 극장들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전주독립영화관에 갈 일이 없어서 이번 방문이 처음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아침에 <폭풍의 언덕>을 보고 상덕카레에서 점심을 먹고 광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극장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렸는데 문이 열리고 나서 보이는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어느 지역을 가던 독립영화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아무리 토요일이라지만 줄을 서서 표는 사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심지어 작은 극장이라 좌석도 별로 없는데 사람이 꽤 많아서 매진될 뻔했다. 겨우 표를 샀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단체로 온 것 같았다.


전주의 전주독립영화관. (2012.07)


표를 사다가 우연찮게 영화 시간표를 봤는데 다음 회차에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를 하는 걸 발견했다. 영화를 보러 들어가면서 고민되었다. ‘카레를 먹지 말고 영화나 한 편 더 볼까? 어차피 내일로 티켓을 이용한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기차표를 예매한 것도 아니고, 아무 때나 기차 시간에 맞춰서 갈 수 있지. 문제는 익산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 시간이지. 그렇지만 카레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 영화를 보는 내내 고민했다.


오늘 본 <폭풍의 언덕>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아침보터 보기는 우울할까 봐 안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대에 맞는 게 이것밖에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왕 보게 된 거 최대한 몰입해서 보기로 했다. 영화는 계속 불안하게 긴장의 선을 탔고, 히스클리프는 난폭해져 갔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기차 시간표를 검색하니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시간은 괜찮았다. 결국 나는 카레를 포기하고 영화를 한 편 더 보기로 했다.


대신에 영화관 바로 앞에 ‘옴시롱 감시롱’이라는 유명한 분식집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옴시롱 감시롱’은 떡볶이, 순대 등을 파는 분식점인데 떡볶이에 고구마가 들어가 있는 아주 달달한 떡볶이를 판매한다. 요새 떡볶이 추세는 매운맛인데 매운맛에 약한 나에게 딱이었다. 좀 지저분해 보이는 분식집이었지만 맛있게 먹고 나와 다시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음 회차의 영화표를 끊었다. 그런데 끊고 나서 옆에 있는 상영 시간표를 보니까 뭔가 이상한 거다. 직원에게 따지려다가 다시 자세히 봤더니 내가 상영 시간표를 잘못 본 것이었다.


내가 보고 싶어 했다던 그 영화는 어제 동 시간대에 상영된 영화였던 것이다. 표를 취소해도 되었겠지만 카레까지 포기한 마당이었다. 게다가 잘못 끊은 이 영화가 내 관심 레이더망에 있던 영화이긴 했다. 그래서 그냥 봤다.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이번에는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상영된다고 했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버전이란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상영형태라고 한다. 주인공들이 뭘 하고 있는지까지 묘사된 아주 친절한 자막 제공은 물론이며 음성으로도 해당 내용을 안내해 주었다.


즉,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까지 영화를 볼 수 있는 버전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인 내가 볼 때는 좀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친절하게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 하나하나를 다 설명해 주는 바람에 내가 생각할 재미를 놓치게 된 것이었다.


아침부터 대전에서 피곤하게 움직였고, 이미 영화 한 편을 봤고, 점심도 먹어서 배부르다 싶었는지 나는 영화 중간에 졸아 버리고 말았다. 머쓱한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오는데 어느 업체에서 홍보를 위해 일본 카레와 화장품 샘플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것들을 받아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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