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유럽여행기 : 여행에 닥친 수많은 불운 (3)

터져버린 물파스와 드라이기 없는 숙소, 비 쫄딱 맞기까지

by 세니seny

그리고 이어진 다음날.


숙소에서 짐을 푸는데 이상하게 물파스 냄새가 진하게 났다. 파우치를 열어보니 어떻게 된 건지 물파스가 다 새서 파우치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 결국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렸다.


게다가 크라쿠프에서 이동해 도착한 바르샤바의 숙소에는 드라이기가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다.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일단 드라이기 문제는 제치고 빨리 저녁 먹고 다음 일정을 가야 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식당에 가는 대신 간단히 슈퍼에서 뭘 사 먹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계산대 줄이 길어서 무인 계산대에서 카드로 계산해야지, 하며 무인계산대에 섰는데 카드가 먹통이었다. 직원은 불러도 오지 않았고 결국 아까보다 줄이 더 길어진 계산대에서 직원에게 계산을 하고 오니 시간이 촉박해졌다. 저녁 일정은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이라 절대 늦으면 안 돼서 결국 토마토 한 개 먹고 부랴부랴 공연장에 갔다.


정신줄 놓고 봤던 바르샤바의 조성진 공연. (2018.08)


첫 타임인 조성진의 공연을 보고 무슨 얼이 빠진 것인지 중간에 인터미션 시간에 그대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와서야 프로그램북을 보니 인터미션 후 다른 교향곡 무대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그렇게 나는 무대 하나를 통으로 날리고 숙소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 조성진 피아니스트 공연 봤으면 됐지 뭐.


폴란드에서의 정신없는 일정을 마무리하고 넘어간, 그 이름도 생소한 라트비아. 체메리 국립공원의 신비로운 풍경에 반해 가게 된 곳이었다. 체메리 공원은 정말로 멋졌다. 공원을 보고 나와서 조금 욕심을 부려 자전거 타고 반대편 호수로 가다가 비를 만나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덜덜 떨며 비를 피했다.


그리고 나니 다시 날이 맑아져 해변길이가 26km나 된다는 유르말라 해변에 갔다.


나와 함께 한 자전거. (2018.08)
이곳이 그 유르말라 해변인데... 이 사진 찍고 5분도 안돼서 폭우가... (2018.08)


그런데 도착한 지 5분이나 지났을까 아직 해변은 보지도 않고 잠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아까보다 더 강력한 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는 데다 비를 피할 곳도 없어 그 비를 쫄딱 다 맞았다. 그러고 나니 다음날 아침엔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감기에 걸려 약 먹고 몸 추스르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라트비아 옆 나라인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선 단 하루를 머물렀다. 실제 도시 구경은 겨우 반나절이나 했나. 체크인부터 해서 숙소 침대에 살포시 앉았을 뿐인데 침대가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내 몸무게를 굳이 밝히고 싶진 않지만… 침대가 무너진 게 결코 내 몸무게 때문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다. 참고로 내 몸무게는 40kg대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환승편을 타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파우치에서 로션 향기가 강하게 나는 거다. 그래서 안을 들여다봤더니 이게 웬걸. 로션 뚜껑이 어느샌가 열려서 다 터져서 가방 안에 로션의 플로럴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수미쌍관을 그려내는 여행도 있구나. 여행의 시작에선 알싸한 이번 여행을 예고하듯 물파스가 터졌다. 그래도 결국 힘든 여행 잘 마치고 돌아가니 수고했다는, 그래서 향기로운 로션을 가방 안에 팡팡 터뜨려준 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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