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선언한 막내 사원 붙잡기
(2021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주말은 바빴다. 프랑스어 공인 자격시험인 델프(DELF)를 저질러 놓는 바람에 토요일은 필기시험을, 일요일에는 구술시험을 봤다. 그렇게 주말 이틀 내내 시험을 보고 나니 다시 출근이다. 특히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엔 항상 많은 생각이 든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늦게 잠들곤 하는데...
독립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 혼자 있으니까 침대에 앉아 혼자 마구 떠들었다. 정확히는 나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이런 거하면 잘할 거 같다 라며 혼자 스피치를 했다. 그리고 확신에 들었다가도 동시에 지금 일하는 곳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막내가 팀장님께 곧 그만두겠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어 보였고 그저 감정에 휩싸여서 그런 거 같았다. 누구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결정은 자유다. 하지만 그녀가 이곳을 지금 당장 뛰쳐나가 더 잘 될 수도 있지만 그러리란 보장도 없었다.
팀장님의 말이 어느 정도 맞다. 얘가 실력이 되고 어디 가서도 잘될 애라면 자기도 보내주는 게 기분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사람이고 아직 갖춰지지 않은 사람인데 퇴사한다는 결정을 지지하는 것은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짜로 어디 다른 곳에 합격해서 가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거짓말을 하고서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건 그냥 단순히 하기 싫다는 거다. 상황을 회피하는 꼴 밖에 안 되는 것.
막내 사원은 이전 직장에서 1년 일하고 그만두고 몇 달 쉬다가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이제야 1년 반이 되었다. 2년 반의 어설픈 경력과 두 번의 퇴사. 서류통과가 된다고 해도 면접에서 이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버텨낼 수 있을까?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있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적응했으니 여기서 기회를 노리거나 아니면 그만둘 각오하고 월급 받으면서 이직 자리를 알아보는 게 훨씬 유리하고 현명하다. 그런 생각도 못할 정도로 그냥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에만 둘러싸여 있었던 듯하다.
최악의 사태도 생각해야 했다.
그녀가 그만둔다는 사실이 회사에 받아들여지고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다른 회사로 언제까지 이직해야 한다,라고 했을 때 6월 중순에라도 그만두면? 그 일은 고스란히 나와 내 동료가 받아서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막내사원이 떠넘긴 일을 하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로 퇴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내가 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음을 미리 인지하고 마음의 대비를 해야 했다.
그녀는 자기가 여기에 있는 게 더 민폐 같아서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민폐였다면 우리가 진작에 도와주지도 않았을 거고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 아무도 붙잡지 않았을 것이다. 신입사원으로서 그런 고민을 하는 건 당연하고 아직까지는 그래도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고 인사를 했다. 어차피 그만둘 사람이라면 정을 주지 않는 게 좋다. 퇴사하고 연락이 온다면 받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솔직하게라도 말했더라면 이 정도는 안 했을 텐데 너무 자기 생각만 한다 싶었다. 그런데 내 자리로 슬쩍 와서는 주말에 생각해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당장 그만두지는 않겠다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길어질 거 같아 사무실을 나와 카페로 갔다.
지난번엔 내가 많이 떠들었으니 오늘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자기가 느끼기에도 감정에 휩싸여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냥 다 그만두고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살기나 하고 싶었다고. 나는 말했다.
"네가 만약에 진짜로 민폐였다면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아무도 안 붙잡았을 거야. 하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 자신감 갖고, 너무 걱정하지 마. 잘하고 있고 앞으로 좀 더 발전할 거야. 누구나 퇴사할 수 있고 본인이 결정하는 거지만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아무런 대책 없이 그만두면 앞으로 고생할 게 뻔히 보이길래 붙잡았다고."
팀장님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팀장님 입장과는 달랐다. 내가 들으면서 화났던 부분에 대해 그게 갈등상황이 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일단 팀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눠보라 했다. 고민이 있으면 말하고 팀장님이 그런 역할을 하려고, 그러려고 돈 받고 앉아있는 거라고.
그리고 회사에 있는 동안 뭐든 좋으니 여기서 최대한 뽑아먹고 가라고 했다. 교육을 많이 듣던, 피드백을 많이 해주는 팀장님 아래서 피드백도 많이 받아서 자료도 잘 만들고 여러 업무도 해보는 등 할 수 있는 걸 해보라고. 그게 너한테 이득인 거라고. 그리고 휴가를 내고 봤던 시험은 그동안 여러 번 봤는데 계속 떨어졌었고 이번에 끝나면 다시는 안 보겠다 했는데 다행히 붙었단다.
사실 그녀 때문에 나와 동료도 그 자격증 시험공부를 시작하고 시험을 봤는데 우리는 한 번에 붙었었다. 그녀는 입사 면접을 볼 때부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속 본인만 떨어지니까 스트레스를 꽤 받았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런 것들이 해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응어리가 풀린 것 같다. 하지만 이미 한번 말을 내뱉은 이상 얼마 안 지나 또 그만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막내사원은 생각보다 굉장히 감정에 휩싸이는 타입이다. 나도 잘 우는 편이지만 상대방을 곤란하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 벌써 몇 번이나 팀장님 앞에서 울어버려서 팀장님이 무슨 말을 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막내사원의 퇴사선언은 회수되었다. 만약 그대로 그녀가 퇴사했다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는 죄책감이 있었는데 그것도 덜었다. 그리고 나한테 당분간 그녀의 일이 넘어올 일은 없을 테니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