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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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어느 날, OO은행으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다. 문자엔 로그인만 해도 쿠폰을 준다고 쓰여있었다. 로그인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속는 셈 치고 은행 앱에 로그인을 했다가 재빨리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뒤 진짜로 쿠폰이 들어왔다. 그날은 점심을 빨리 먹고 스타벅스에 갔고, 쿠폰에 돈을 좀 보태서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음료를 받아 들고 어디에서 마실까 고민했다. 예전 같으면 길거리를 걸으며 마음껏 음료를 마시겠지만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이대로 사무실까지 들고 가서 마셔야 했다. 날씨도 좋고 산책도 조금 할까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더웠다.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 밖으로 나오면 비교적 넓은 형태의 광장 같은 곳이 있다. 이곳은 건물 기둥을 받치고 있는 자리라 중간중간 건물 기둥이 있을 뿐 나머지 공간은 텅 빈 데다 꽤 넓고 그늘져 있어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있기에도 좋다.
사람들이 없는 기둥 옆에 서서 마스크를 내리고 음료수를 마신다. 손에 들고 있는 민트색 음료를 보다 자연스레 시선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하늘로 이동한다. 오늘의 하늘색은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처럼 민트색이었다. (글의 주제와는 상관없지만 난 민초단이다.)
그러다 문득 기둥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이곳의 건물 기둥은 불투명한 소재가 아니라 반투명한 소재로 되어 있어서 아주 선명하진 않아도 내 모습을 알아보기엔 충분할 정도였다.
검정 기둥에 비친, 온통 하얀색으로 꾸민 나. 귀에는 하얀 에어팟을, 몸에는 자잘한 꽃무늬가 수 놓인 하얀색 원피스를, 발에는 하얀 샌들을 신었다. 여기엔 방송국 같은 밝은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기둥이 사람을 늘씬하게 비춰주는 거울도 아니다 보니 나의 외양이 적나라하게 비친다.
못 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 있고 옛날에 비해 살이 좀 쪘다고 해도 여전히 전반적으로 빼빼 말랐으며 옷은 사이즈가 맞긴 하지만 헐렁한 몸에 걸쳐놓은 거라 그다지 맵시는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고 있어서 계속 치맛자락이 흔들렸다.
그런데 도대체 나를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봐야 할까?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객관적으로만 보다가 진정한 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경쟁사회.
스펙과 조건.
나는 요즘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현재 내 스펙이 어느 정도이며 이걸로 지원 가능한지, 서류 통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판가름하려고 한다. 여기서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면 나의 합격 가능성을 낮추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정직하게 비춰주는 기둥 앞에서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좀 주관적으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객관적으로'만' 나를 보다간 내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냥 나로서의 나.
눈은 작고 코는 적당히 오뚝하고 입도 작고 얼굴도 작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예쁘진 않은 얼굴. 고집도 있고 어떤 포인트에선 용감해 보이지만 또 어떤 포인트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 잘 웃지 않고 차가워 보인다는 소릴 많이 듣지만 이상한 포인트에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사람. 하지만 그런 나도 나라는 것. 그냥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다가 문득 발견한 구절을 적어본다. 에밀 시오랑이라는 작가의 책 ‘절망의 끝에서’에 나오는 한 구절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터무니없이
사랑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나의 잘못된 점까지 모두 감싸려고 하는 것 그러니까 지나친 자기 합리화를 하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너무 미워하지도 말아야겠다.
나는 하늘색을 좋아한다.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를 한 입 먹으니 입 안이 화- 해지면서 하늘색으로 가득 찼고 내 눈앞엔 내가 좋아하는 하늘빛의 하늘이 펼쳐져있다. 내가 하늘색으로 꽉 찬 느낌이 든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