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걸린 해쉬브라운 한 조각이 나에게 미친 영향
이 에피소드는 해쉬브라운 한 조각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침밥 보단 잠을 택했기 때문에 아침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서였다. 9시에 회사에 출근해서 3시간 정도 바짝 일하면 금방 점심시간인 12시가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을만했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 자발적으로 근무시간을 8시-17시로 바꾸게 되면서 8시에 출근을 하자 점심시간인 12시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그래서 아침엔 반드시,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챙겨 먹기로 했다.
엄마가 지난 주말에 만들어놓고 하나 남겨두었던 미니 햄버거-모닝롤 빵을 갈라 그 사이에 토마토, 양상추, 치즈, 케첩 등을 넣고 만든 것-가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면서, 가져가서 먹을 거면 가져가고 아니면 다시 냉장고에 넣어 놓으라고 했다. 나는 가져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미니 햄버거가 맛도 있고 하나 먹고 나면 꽤 든든해서 좋았기 때문에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아파트 밖을 나서자마자 빗줄기가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집에서 나오기 직전 버스 시간 도착 정보를 보니 내가 탈 수 있는 3개의 버스 모두 20분 뒤에나 온다고 나와 있었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나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왔지만 버스가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고, 비도 왔기 때문에 사무실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도 와있지 않아서 내가 조금 지각한 사실은 들키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인터넷 강의부터 들어야 했기 때문에 미니 햄버거는 눈에 띄게 일단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급하게 오늘 분량의 강의를 다 듣고 나니 사람들이 한두 명씩 출근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햄버거는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9,10시가 넘어가서 뭔가를 먹으면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아침을 늦게 먹으면 점심때 배가 불러서 점심을 조금 먹게 되고 그러고 나면 오후 일찍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러니까 먹을 거면 빨리 먹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오기 전에 먹기로 결심하고 포장을 풀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평상시에도 음식을 많이 씹어서 먹고 천천히 먹었기 때문에 이 미니 햄버거 또한 천천히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빵 사이에 들어가 있던 해쉬브라운이 차가워서 응집력이 약해졌는지 힘없이 해체되면서 조각조각 바스러졌고 그 바스러진 덩어리 중 하나가 그대로 목 뒤로 휙, 넘어가 버렸다.
저작咀嚼기관인 입에서 어떤 일도, 행동도 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이다. 컥컥, 소리를 내서 입 안에 있는 빵은 뱉어냈지만 해쉬브라운 한 조각이 애매하게 목에 걸리고 말았다. 이걸 뱉어내던지 아님 적어도 입으로 끌어올려서 다시 잘 씹고 내려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한 조각은 어떻게 해도 도통 올라오지 않았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올라오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으니 그나마 이걸 꿀꺽 삼켜버리는 게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평소에도 많이 씹어 먹는 편인 데다 질긴 것들은 오래 씹다가도 목 뒤로 안 넘어가서 뱉어낸 적도 왕왕 있었다. 그런 나에게 씹지도 않고 음식물을 넘긴다는 건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어쩔 수 없어서 그대로 꿀꺽 삼키고 말았다.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고 목에 걸려있던 해쉬브라운은 그렇게 억지로 삼켜져서 목 뒤로 넘어갔다. 그 뒤로 남은 빵을 먹으려 노력했지만 냉장고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빵에는 냉장고 음식 냄새가 배어있었고 상추는 눅눅했다. 분명 목 뒤로 다 넘겼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해쉬 브라운이 목에 걸려있는 느낌이어서 결국 반도 못 먹고 남은 햄버거를 버렸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걸 더 먹었다간 속이 불편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같은 팀 여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해서 같이 나갔다. 나는 그녀들을 따라갈 때도 있고 안 갈 때도 있다. 음료가 나오고 10분 정도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온다. 나는 아침에 오자마자 커피를 마셨으니 따뜻한 녹차 라테를 시켜 홀짝홀짝 마셨다.
요즘 우리의 화제는 막내 사원에게 얼마 전 생긴 남자친구였다. 소개팅하고 바로 다음날과 또 그다음 날까지 내리 3일을 만나고 바로 사귀기로 했다며 아주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동료가 막내 사원에게 전에는 힘들다고 징징대더니 남자친구 생기고서는 안 그런 것 같다며 '남자친구 생겨서 좋죠?' 하며 놀린다. 이 말을 한 다른 동료도 남자친구가 있다. 회사에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사내연애를 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들은 대충 다 아는 그런 관계다. 공식적으로는 서로가 연인관계임을 밝히지 않았고 나도 그것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전 할 말이 있다면서 혹시 알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OO 씨랑 사귀는 거 맞다고, 같은 팀원이니까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말해주었다. (나와 그녀는 동갑이고 연차도 비슷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정도의 친분만 유지하는 사이다) 사귄 지 1년 정도가 갓 넘은 거 같았는데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는 그 둘의 공통 지인인 회사 동료니까 좋은 점만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엄마가 요즘 '너 일과 사랑, 공부 다 하느라 힘들겠다'라고 말했다며 본인도 일과 공부 양쪽 모두를 열심히 하고 있으며 거기에 연애까지 잘 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서로 좋아하는 혹은 좋아하게 되는 게 쉬운 게 아니니 잘 된 일이지만 회사에서는 일로 얽혀있는 사이다 보니 솔직히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다. 어쨌든 팀원 3명 중 나 빼고 둘은 연애를 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며칠 전 동료가 장난스럽게 막내 사원에게 네 남자친구 주위에 아는 사람 없냐고, 나 좀 소개해 주라며 가볍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냥 으레 들 하는 말이니까 듣고 넘겼다. 그렇지만 막내 사원은 그냥 또 장난스럽게 연인 사이가 얼마 되지 않은 알콩달콩한 남자친구에게 진짜로 물어본 것 같은 뉘앙스였다. 그랬더니 소개해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둥 업무 특성상 이런 조건의 사람인데 내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거 같다며 나를 앞에 두고 조잘조잘 얘기를 했다.
그런데 애초에 나는 아무에게도 남자친구를 소개해달라고 물어보지도, 조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남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이건 좀 무례한 거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하고 말았다. 그런데 또 하나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우리 팀이 포함된 본부의 전체 회식을 마치고 남은 다른 팀의 팀원들을 포함해 몇 명만 2차에 갔을 때 일이었다.
그 자리에 나 포함 미혼자가 둘이었지만 한 명은 올해 말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의 특성상 결혼 언제 할 거냐, 결혼할 생각은 있냐 그런 대화들이 오갔고 난 잘 모르겠다,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선택지는 열려있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결혼을 안 하면 살기 힘들 거 같기도 하다 등의 얘기들을 했다.
그러니 또 흔히들 하는, 그럼 몇 살 차이까지 괜찮냐? 이런 걸 물어보길래 연상은 좀 부담스럽다 했더니 그럼 연하? 이러면서 다른 팀에 있는 연하인 남자 직원 이름을 댔다. 그런데 그 남자 직원은 누구나 다 아는,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었다. 뭐지, 이건? 이걸 농담이라고 한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진지충인가? 만약 내가 그 남자 직원이 맘에 든다고 하면 뭐 여자친구랑 헤어지라고 할 건가? 아니면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었다며 내가 그 직원한테 호감 있는 거 같던데 하며 다른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화제에 올릴 것인가? (물론 나는 그 남자 직원이 여자친구가 있건 없건 관심이 없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말들이 전부 다 무례하게 느껴졌다.
여자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그렇지만 그냥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도 힘이 드는데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은 한국사회 분위기 상 많은 편견, 오해, 선입견들과 싸우며 살아야 한다. 다수의 기혼자가 아닌 소수의 미혼자로 살아가는 건,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엔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뭔데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걸까? 소개해줄 거면 진지하게 소개를 시켜 주던가 그럴 거 아니면 시시껄렁한 말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좀 더 건설적이거나 재밌는 이야기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페에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하는데 아무래도 아까 아침에 목에 걸린 해쉬 브라운이 계속 문제인 거 같다. 체한 거 같았다.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얹힌 것 같다. 결국 점심을 건너뛰고 사무실에서 쉬었다. 좀 쉬면 알아서 체기가 좀 내려가지 않을까 했다. 사실 나는 지금 목에 걸렸다 어설프게 넘어간 해쉬 브라운 때문에 속이 메슥거리는 거고 그래서 두통도 온 거다. 그게 맞다.
하지만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의 대화, 아까 아침에 카페에서 들었던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있다가 해쉬브라운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휴게실에 놓여있는 1인용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워 위를 부여잡고 혼자 끙끙대면서, 해쉬브라운 때문에 생긴 체기에다 나를 속상하게 했던 이 모든 감정들을 얹어 환자의 특권인 응석을 부려본다. 이 모든 생각의 흐름은 오늘 아침 목에 걸린 해쉬브라운 한 조각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