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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Dec 11. 2021

추어탕에 얽힌 기억

못 먹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다

     나는 말랐다. 살이 조금 찐 지금도 꽤 마른 편이다. 엄마가 마른 편이어서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지만 먹는데 욕심이 크게 없다는 이유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남들 다 좋아한다는 고기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애들은 제육볶음이 반찬으로 올라오면 서로 먹으려고 싸운다던데 우리 가족은 고기반찬이 식탁에 올라와도 조용했다.


     커서야 알았다. 엄마는 그땐 돈이 없어서 돈을 아끼려고, 고기는 비싸니까 많이 못 샀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음식을 먹어봐야 커서도 잘 먹는다는데, 나는 고기를 많이 안 먹어봐서 그런지 몰라도 고기반찬이 올라와도 잘 안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다 나는 편식을 한다. 나는 오이를 매우 싫어한다. 언제부터 싫어했는진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어느 시점의 기억이 있을 때부터 오이를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소풍 가면 김밥을 먹게 되는데 엄마가 싸주는 건 애초부터 오이를 빼고 만들면 되니까 상관없지만 밖에서 파는 걸 사서 나눠주는 경우 오이가 들어있으면 곤란해진다. 결국 배는 고프니까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오이를 빼고 겨우겨우 먹긴 하는데, 아무리 오이를 빼도 김밥 안에 오이의 잔향이 남아 있어서 먹으면서도 구역질이 난다.


     내가 오이를 싫어하는 건 그 특유의 향 때문이다. 정확히 그 향 때문에 오이를 못 먹겠다. 비리다고 해야 하나, 나에겐 구역질을 불러일으키는 향이다. (오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 향수와 비누 중에도 오이향이 나는 제품이 있는데 그것도 싫어한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마른 애가 편식해서 이런 거 아니냐고 욕먹으니까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도록 부단히 조심했다.


      그나마 요즘엔 싫어하는걸 억지로 먹이지 않는 분위기라지만 여전히 나에게 숙제인 오이. 그런데 몇 년 전, 오이를 안 먹는 사람들은 쓴 맛을 느끼는 DNA가 일반 사람들보다 예민해서 그런 것이라는 기사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이뿐만 아니라 비슷한 과인 수박, 참외도 그러하다는데 정확했다. 나는 수박과 참외를 먹긴 했지만 그동안 오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여러 번 했었다. 내가 오이를 싫어하는 게 단순 편식이 아님이 밝혀져서(?) 다행이다. 

(관련기사 : https://www.vogue.co.kr/2019/04/30/%ec%98%a4%ec%9d%b4%ed%98%90%ec%98%a4%ec%9e%90%ec%99%80-tas2r38-%ec%9c%a0%ec%a0%84%ec%9e%90/?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


     어쨌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마른 편이어서, 사람들이 엄마한테 '얘는 밥을 안주냐'는 얘길 너무 많이 들었다. 엄마는 할 만큼 했다. 직장 다니면서 살림까지 깔끔하게 하고 삼시세끼 밥을 직접 해서 먹인 우리 엄마가 그런 소릴 듣는 게 나 때문인 거 같아 눈치 보이고 미안했는데 엄마도 속상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작게 태어난 건 맞지만 그래도 잘 먹고 잘 크면 되는 건데... 이건 잘 안 먹는 내 탓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나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엄마가 추어탕이라는 것을 사 왔다. 나는 추어탕이라는 걸 처음 들어봤다. 게다가 평소의 엄마는 밖에서 음식을 사 오는 편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 집의 외식은 치킨, 피자, 중국집 배달 정도뿐이고 그 외에 밖에서 조리된 요리는 잘 사 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밖에서 조리된 음식을 사 온 것이다. 이건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거라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에 좋고 살찌는데도 좋은 음식이라고 하니 나보고 꼭 먹으라 했다. 국처럼 보였는데 비주얼부터 색이 별로였다. 근데 맛은 더 별로였다. 비린 데다 더 이상 입에 들어가지 않는 맛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먹으라고 했다. 평소의 엄마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오이 싫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않고 알아서 오이를 빼고 김밥을 싸주거나 김밥 대신 유부초밥을 싸주는 사람인데. 콩 먹기 싫다고 엄마 밥에 덜어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날은 유독 그랬다. 이거 먹고 살쪄야 한다면서. 나는 토할 거 같은 기분이었지만 억지로 어느 정도 먹다가 그만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추어탕은 못 먹는 음식이 되고 말았다.


     성인이 되어 남원에 놀러 갔는데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이 추어탕이었다. 맛집은 죄다 추어탕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그 기억 때문에 나에게 추어탕은 못 먹는 음식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러 30대가 되고도 한참 지난 작년.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는 평소에 혼자서도 건강식을 잘 챙겨 먹는 편인데 그날은 추어탕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회사 근처에 괜찮은 데가 있다면서, 막내 사원도 같이 간다고 했다. 나는 고민이 되었다. 내가 그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면 메뉴를 바꾸거나 아님 나는 따로 먹으러 가야 했다. 그런데 막내가 저번에 자기도 먹어봤는데 괜찮았다고 했다. 그래, 그럼 이번 기회에 한번 먹어보자.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언젠가 그날의 추어탕 이야기를 꺼내자 엄마가 그랬다. 그때는 좀 미안했다고. 가게에서 사 온 거라 아마 가게에서 먹었으면 괜찮았을 수도 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끓이다 보니까 가게에서 한 것처럼 맛이 안 나서 비리고 맛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가게에서 직접 먹으면 괜찮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팀원들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눈앞에 마주한 비주얼. 익숙해지지 않는다. 슬쩍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따라 해서 먹어본다. 일단 들깨가루를 넣고 국물과 건더기를 한 숟갈 덜어서 먹어본다. 어? 하나도 안 비린데? 그냥 얼큰하고 구수한 국밥 같았다. 미꾸라지는 다 갈려 있었기 때문에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밥을 말고 잘 먹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가서 먹었다.


     내가 좀 말랐다고 온갖 친척, 가족, 아는 사람, 우리를 전혀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도 애 살 좀 찌우라고, 밥은 안 먹이냐는 소릴 듣고 친구들에겐 아프리카 소말리아 사람 같다고 놀림받는 딸내미를 보면서 속상했을 엄마. 그렇게 바쁜 시간 쪼개가며 집밥을 해 먹이고 도시락을 싸들려 보내도 도통 살이 찌지 않는 딸. 


     워낙 말랐으니 옷을 입어도 태가 안 나고 조금 과식했다 싶으면 바로 배탈 나는 약골. 골골대는 딸내미가 안쓰럽기도 하고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눈총을 받는 당신에게도 면죄부를 주고자 내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도 한 숟갈만 더 추어탕을 먹어보라고 했을 엄마.



     이제 나는 추어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추어탕을 먹을 때마다 억지로 추어탕을 먹게 한 엄마의 마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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