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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24. 2021

여의도와 두 번 이별하기 : 여의도에게 쓰는 편지

자의에 의한 이별과 타의에 의한 이별

     나에게 여의도는 지금의 여의도 공원이 여의도 광장이던 시절의 기억부터 시작한다. (나보다 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아마 여의도가 비행장이던 시절부터 알고 계시겠지만.) 나에게 여의도는, 광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며 자전거를 타던 곳이고, 부모님을 졸라 사람 많은 벚꽃 축제를 보러 왔던 곳이기도 하며 성인이 되면서는 친구들과 놀러 오던 곳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여의도의 높은 건물들이 보이곤 해서 여의도는 항상 회사원들로 그득할 것 같은, 학생인 나에게는 아직은 먼 어른들의 세계 같은 느낌도 있었다. (나중에 그곳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앨범 촬영을 위해 궁궐에 갔다가-경복궁이었나, 어딘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뭔가 우울해진 기분에 사로잡혀 집에 같이 오던 친구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중간에 지하철을 갈아타고 혼자 여의도에 내렸다.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 가서 한강과 그 너머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던 곳이기도 했고 나에겐 여전히 여름밤과 치맥의 로망이 남아있는 곳 그리고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마 여의도에서 일하는 많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여의도는 단지 일하는 곳-생각해보니 나도 여의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벚꽃 축제 등으로 이곳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는 방송국 건물이 있어 신기해 보이는 곳, 주말에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없어 그래도 (시내에 비하면) 비교적 한가로운 곳 그리고 첫 번째 직장을 관둔 후로 이직을 하지 못한 당시의 나에게는 가슴 쓰린 곳이기도 했다. 


    괜히 여의도를 돌아다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 사람들을 만날까 봐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지금 앉아 있는 이 커피숍에선 퇴근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음악 들으며 눈물짓기도 했고, 스트레스 가득일 땐 꼭 들러서 조각 케이크를 포장해가거나 아예 앉아서 먹고 갔고, 책을 들고 와서 퇴근 후에 공부도 했던 곳이다.


     그렇게 다시 구직자로 돌아갔다가 두 번째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곳은 강남역과 양재역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다. 강남엔 정말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았다. 여의도는 지역 특성상 주거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로 양복을 입고 단정한 옷을 입은 즉 회사원 같이 생긴 사람들만 돌아다녔기에 그런 분위기에 익숙했다. 그런데 강남엔 회사원과 학생 등 너 나할 것 없이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어디에선가 튀어나와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서울 및 경기도 외곽 지역까지, 여러 곳에서 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강남으로 실어 날랐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직을 결심했고 회사를 옮겨 세 번째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진짜 숲인 여의도 공원과 그 뒤로 펼쳐진 빌딩 숲 (@여의도공원, 2017.08.25 촬영)


     세 번째 회사는 첫 번째 회사와 마찬가지로 여의도에 위치해 있었는데 두 곳의 거리는 5분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어서 주변의 모든 게 익숙했다. 어디에 가면 은행이 있고, 어떤 식당이 있으며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들을 다 아는 곳이었다. 그리고 집에서의 출퇴근 거리도 가까워져서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나에게 여의도는 여러 추억들과 첫 번째 회사가 있던 곳이자 이제 세 번째 회사가 있는 곳이었다. 회사 이직 시에는 많은 것을 고려하는데 그중엔 출퇴근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 회사를 여의도로 다녔을 때 집과 가까워서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세 번째 회사가 여의도에 위치해 있어 원서를 넣었던 이유도 있었다(그렇지만 합격할 줄은 몰랐다). 그랬는데 사무실 이전이 결정되면서 오늘이 여의도에서의 마지막 근무 날이 되었다.


     타의에 의해 사무실이 이전하게 되면서 나의 여의도 직장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의도에 있던 첫 번째 회사를 자의로 그만두고 9개월 간 놀 때, 여의도에 영화를 보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5월 말에서 6월 초쯤의 늦봄 ~ 초여름이었던 거 같다. 그때는 구직 중이었으니까 여러모로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퇴근만 하면 떠나고 그렇게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던 여의도에 와서 영화를 보고 여의도 공원을 걷고 그랬었는데 오늘도 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제 나이가 좀 더 먹었고 지금은 백수가 아니라 일을 하는 중이며 일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라는 것일까.


     여의도라는 공간이 나에게 주는 안정감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으로 간다. 사무실이 이전하면 출퇴근하는 거리가 멀어져 걱정인 데다 마침 바로 위의 상사가 이직을 하게 되어 오늘까지만 같이 근무하고 다음 주부터는 다른 회사로 출근하기 때문에 그 분과도 여의도에서의 근무가 마지막 기억이 된다. 그러면서 언젠가 새로운 상사가 오기 전까지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을 떠맡게 된 듯한 기분도 없잖아 있어 여러모로 기분이 이상했다.


     나에게 여의도란 무엇인가?



     현재까지 약 8년의 직장생활 중 6년의 시간을 보낸 곳이다. 이렇게 높은 건물들 사이에 내 자리 하나가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면접을 보던 취업 준비생 신분을 지나 이곳 여의도에서 신입사원이 되는 기회를 얻었다. 여의도를 지나다니며 봤던 그 높은 빌딩들에서 근무를 했고, 얼마 전 과장이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때로는 여의도 공원도 부지런히 산책했고 몇 번의 회식과 환영회, 송별회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기도 했다.


     다시 이곳을 떠난다. 아마 여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은 이직을 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조만간 여의도에 다시 와야겠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그렇게 조금씩 이별할 생각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동네에 익숙해질 거고 그러면 좀 더 편안한 기분으로 여의도에 놀러 올 수 있겠지.






여의도에게,


내 어릴 적의 기억부터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되어 이곳에서 회사를 다니기까지,

너는 정말 나의 많은 기억들을 품고 있구나.

집으로 가는 여의도 환승센터 횡단보도에서 대학교 때의 친구를 우연히 만났던 기억,

(대학교 졸업하고 연락을 하지 않던 친구였는데 마침 우리 회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회사를 다닌다고)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 퇴근하며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퇴근길에 남의 빌딩 건물 1층 화장실에 들어가 엉엉 울던 기억,

(그런데 그 건물은 남의 빌딩에서 세 번째 회사가 위치해 있는 건물이 되었다)


겨울만 되면 건물들 사이로 유독 칼바람이 불어 추웠던 기억,

여의도공원 건너편 국회의사당 쪽에서 칼부림이 났던 시각에 나도 여의도에 있어 놀랐던 기억,

여의도공원을 통해 사계절의 흐름을 볼 수 있어 참 좋았던 기억,

그렇게 좋아하던 무한도전의 야외 촬영이 여의도에서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실제로 보지 못했고

(덕후는 계를 못 탄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는데, 맞는 거 같다 엉엉)


첫 번째 회사가 여의도 내에서 건물을 이전했는데 새 건물의 수많은 공사 업체 중 친한 친구네 회사가 있었고(관련 글 :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하여 https://brunch.co.kr/@lifewanderer/56)

그 친구가 마침 그 현장 공사에 참여해서 친구의 피, 땀, 눈물(?)이 담긴 건물이 완공되었고

새 사무실에 입주하고 나서 친구를 몰래 불러 사무실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신입사원 때는 그저 지쳐서 빨리 퇴근해서 여의도를 벗어나려고만 했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여의도를 그렇게 미워하지 말고 잘 지내보자고 다짐했었고 이번엔 그 다짐을 잘 지켰다.

그러니 후회는 남지 않는다.


안녕, 여의도.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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