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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ug 28. 2021

가장 최근에 무지개를 본 게 언제일까?

무지개를 따라 2009년으로 건너가보다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려고 나왔다. 이제 해가 막 졌는지 구름 뒤로 선명하고 진한 자줏빛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한 발자국 정도 먼저 앞서 나간 엄마가 말했다.



2021년 7월 15일의 무지개 @ 서울 (2021.07.15)


무지개다!



그단스크에서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 폴란드 (2018.08.15)


     요즘 무지개는 책이나 영화에서만 나오는, 현실에선 좀처럼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내가 가장 최근에 본 무지개는 2018년 유럽여행 때 폴란드에서, 당일치기 여행을 위해 북쪽의 그단스크까지 갔다가 기차를 타고 다시 수도인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가 잠깐 왔다 그쳤었는데 마침 해가 떨어지는 시각이었고 드넓은 평원을 지나가고 있는데 기차 차창 너머로 무지개가 보였다. 여행 중에 무지개를 본건 처음이라 꽤 인상에 남았다. 잠시 혼자 2018년에 봤던 무지개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있는 나에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가장 최근에 무지개를 본 건 2009년 8월쯤이었다고 했다.


     나도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오래된 일들은 어느 정도 잊어버린다. 특히 기억하기 싫은 일이라면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운다. 그래서 내가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사진을 찍었다든가 글을 썼다든가 해서 어떤 식으로든 형태를 남겨놓은 것만이 온전하게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기억력이 진짜로 좋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대체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인간은 모든 걸 다 기억하다간 제대로 살아나갈 수 없기에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는데 그 말이 우리 엄마에게만큼은 예외다.


     30년 전 아빠에게 들었던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이나, 십몇 년 전 대략 어느 시점쯤에 아는 누군가와 있었던 일의 소상 등을 그대로 기억해내서 나에게 얘기해준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엄마가 2009년에 봤다고 하면 2009년의 그날이 틀림없을 것이다.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엄마)가 무지개를 본 날을 왜 기억하나면,
그때 네(나)가 전화를 했었어.
학교에서 작은 회사 하나를 소개해줘서 면접을 보러 갔었고
거기서 합격했다고 출근하라고 했는데
네가 너무 작은 회사라 안 가겠다고, 전화로 말했었거든.



     당시 나는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한 학기를 휴학했기 때문에 여름학기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상반기부터 계속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지금도 취업이 어렵지만 그 당시도 취업이 쉬운 편은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였지만 소위 말하는 상위권 학교는 아니었다. 다행히 나는 경영학 전공이라 여러 기업에 원서를 넣어볼 수는 있었지만 서류를 통과하거나 면접을 보러 오라는 횟수가 매우 적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대학교만 졸업하면 본인들이 살아왔던 옛날 마냥 취업이 잘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적당한 4년제 대학의 경영학 전공이면 학교 졸업하기 전엔 당연히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금의 취업시장은 30년 전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게 참 어려웠다.


    취업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잘'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엔 계약직/파견직이란 개념 자체도 희박했는데 이제는 계약직/파견직이라는 단어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되면서 애초에 괜찮은 정규직 자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리가 났다 하더라도 T/O 자체가 적어서 그 과정을 뚫지 못하면 그대로 낙오자가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타이밍이나 운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으로 내가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거라(가능성이 낮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본 곳'에 입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7월 말쯤,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대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는 건 거의 없는 일 아닐까? 진짜 큰 사고를 쳤거나(혹은 사고를 당했거나) 하는 정도가 아닌 이상. 알고 보니 과 사무실에서 내가 졸업학기인걸 알고 혹시 아직 취업이 안 되었으면 우리 학교를 졸업한 선배님께서 운영하는 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회계팀 사원을 구하고 있으니 면접을 보라는 내용을 전달하려고 전화를 한 거였다. 


     사실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길래 안 받았는데 그게 우리 과 교수님 전화번호였다. 교수님께선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 집으로 한번 전화를 해 보라고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또 하필이면 그 전화를 내가 집에 없을 때 엄마가 받았고 엄마는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 당황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진정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참 전에 졸업한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다음날인가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규모가 작은 소기업이었고 집에서는 매우 가까운 편이었다. 회장님이 우리 학교를 졸업하신 분이었고 나 이외에 이미 동문 선배들을 2,3명 정도 채용해서 일을 해오고 있다고 하셨다. 면접이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1시간가량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8월 초에 최종 합격이라고 연락이 왔고,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난 면접을 보고 온 그날, 곧바로 엄마한테 말했다. 혹시나 여기에서 출근하라고 한다고 해도 입사하지 않을 거라고. 교수님께서 직접 전화도 주셨고 이미 동문도 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회사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나는 첫 직장인만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배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식 졸업은 8월 말이니까 아직 시간도 있고 요즘은 옛날처럼 졸업하기 전에 취직하는 사람도 드물다며 엄마에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구직생활 중 최초로 최종 합격통보를 받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사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 후에 밖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쪽에서 합격이라고 연락 왔는데 입사하지 않겠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엄마에게 그 내용을 말한 기억은 있었지만 내가 전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두 달이 지난 9월 말, 서류를 여러 군데 통과해 10월 초에 면접을 본 두 군데에서 동시에 합격통보를 받았으며 그중에 원하던 기업을 골라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삼성, LG 같은 대기업도 아니고 일반인들에겐 회사 이름이 낯선 곳일 수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큰 기업이었고 집에서도 가까운 편이어서 충분히 만족했다. 이곳은 대기업처럼 공채를 시행하지 않고 자리에 결원이 생기거나 인원을 늘릴 때만 수시채용을 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충원했다.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공채 말고 오히려 이런 수시채용을 노리는 게 나한테는 더 잘 맞을 수도 있겠구나 판단해 수시채용을 노려서 성공한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취직이 되어 잘 풀렸기 때문에 엄마는 이제야 그때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때 네가 전화 와서 동문기업에 입사 안 하겠다고 했을 때,
그냥 입사하라고 할걸 당시엔 속으로 후회했었어.
집에서도 가깝고 처음 합격했으니 다니라고 할걸.
네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고 할걸. 



     대학교 4년 등록금 대면서 겨우 가르쳐놨더니 공무원 시험 보라는 부모님 말도 안 듣고, 일반 사기업에 취직하겠답시고 마지막 학기 내내 뭘 하기는 하는 거 같은데 부모님이 보기에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또래 친척들은 이름만 들으면 다 알만한 대기업에 척척 취업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나는 졸업 직전까지 대기업에 면접은커녕 서류통과도 거의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때 저 말을 그대로 들었다면 엄청 상처 받았을 것이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 뒤로 더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으니 그때 내 판단이 맞았고 그래서 저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 전화를 받았던 날 본 무지개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가장 최근에 본 무지개라기 보단, 여태 봤던 무지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무지개였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최근에 방통대와 평생교육원에 지원을 하려고 하니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가 필요해서 서류를 떼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뒤집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옛 생각이 났다. 졸업 전에 학과 사무실 통해서 동문 선배가 한다는 회사에 추천한다고 면접 보라고 했었지? 그래서 그 회사 이름을 검색해봤더니 다행히 아직 회사는 살아있었고 매출 규모도 성장했으며 동문 선배이신 사장님의 인터뷰가 학교 홈페이지에 실려있었다. 당시에는 동문도 2,3명 정도였는데 이젠 열몇 명 정도가 다닌다고 했다. 비록 내가 입사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회사가 잘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5분도 안 되는 순간에 사라진 2021년의 무지개를 보고 잠시 2009년에 다녀왔다. 다음번에 또 무지개를 본다면 가장 최근에 무지개를 본 2021년으로 이동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2021년이 좋은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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