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니seny Aug 01. 2021

누군가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무명 재즈 가수의 무대를 보고

     회사에서 오랜만에 회식 자리가 있었다. 3개 팀을 아우르는 본부 전원이 모인 만큼 넓은 자리가 필요했고 올해 새로 취임하신 대표이사님과 처음 함께 하는 식사자리이기에 꽤 고심해서 식사 장소를 찾았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곳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저녁에는 잠깐씩 재즈 공연도 하는 곳이라고 했다. 


     미리 주문해놓은 식사는 빠르게 나왔고, 맛있었다. 식사 도중 혹시나 마가 뜨는 시간을 염려해 준비해온 아이스 브레이킹까지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그리고 공연 시간이 되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에 올라온 가수와 연주자의 낯이 익었는데 가만 보니 아까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여자 두 분이었다. 






     나는 재즈에 대해 잘 모른다. '재즈'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 외엔 재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다. 재즈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느낌은 흑인들의 소울풀soulful한 느낌, 자유롭게 연주를 주고받는다는 이미지와(편곡이 아주 자유롭게? 진행된다고 들은 것 같다) 둥둥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같은 것들이다. 


     오늘의 무대는 작고 소박했다. 피아니스트 한 명과 가수 한 명이 무대에 오르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나는 재즈 라이브 공연을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은 앳되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주 젊어 보이는-나보다도 어려 보이는-가수는 노래를 시작했고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꽉 찬 풍선처럼 동그란 모양의 알찬 목소리로 이 공간을 채워주었고, 곧 그녀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식당에 울려 퍼졌다.


     특히 첫 번째 노래가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스치듯 들린 노래 가사에 현재 시점인 'July'(7월)이라는 단어와 듣기만 해도 상큼한 'lemonade'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래 제목을 찾고 싶었는데 검색이 안 되어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 다행히 노래가 끝나고 가수분께서 작은 목소리로 "이 노래 제목은 'I wish you love'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마침 지금이 7월인데 노래 가사에 7월이 들어간 걸로 봐서 의도하고 선곡한 건 아닐까? 그리고 7월엔 내 생일이 있어 개인적으로 많이 신경 쓰이는 달이기도 하다. 가수가 현재 시점을 의도하고 선곡했는지 여부를 떠나 나는 그저 내 생일이 있기도 한 7월이 가사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뒤로도 노래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식당'이기 때문에 첫 곡을 집중해서 듣던 사람들도 다시 식사나 대화로 돌아갔고 가수는 그 자리에서 꿋꿋이 노래를 불렀다. 30분간의 1부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술에 취해갔고 목소리와 동작은 더 커져만 갔다. 몰랐는데 30분 뒤에 2부 공연이 있었다.  


     2부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취해 있었기 때문에 좀 전의 첫 번째 무대보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걸 모르고 우리끼리 박수를 치고 연설을 하고 난리가 났다. 그러다 이제 1차를 마무리 하자는 분위기가 되어 자리에서 다들 주섬주섬 일어나는데 새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 분명 내가 아는 노랜데! 하며 반가워진 나는 가사의 일부를 검색해서 노래를 찾아냈다. 그 노래는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마리아가 부르는 'favorite things'였다. 작년에 오스트리아 여행을 가기 전 영화를 보면서 찾아들었던 그 노래였다. 라이브 버전으로 들으니 참 좋았고 나는 노래를 더 듣고 싶었지만 계산을 하고 모두들 식당을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원래는 깔끔하게 1차만 끝내고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2차에 합류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아까 진행했던 1차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다들 재즈 공연이 그게 뭐냐, 실망이었다, 가수라면 뭐 화장도 좀 하고 의상도 가수답게 입어야 되는 거 아니냐, 노래도 별로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말들을 듣자마자 씁쓸해졌을까? 목소리는 훈련으로 얻어지는 것도 있지만 타고난 것도 있을 것이다. 이 무대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어떤 나날들을 위해 여태까지 시간을 쏟아 훈련하고 달려왔을 것이다. 모두들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슈퍼스타처럼 노래할 순 없다. 혹은 실력이 있다고 해도 스타성이나 운, 타이밍 등이 맞지 않으면 성공하긴 어렵다. 


     나는 사람들이 밥 먹는 걸 보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가수의 심정을 생각했다. 물론 그 가수도 이것을 단순한 아르바이트로 치부하고 대충 부르다 내려가야지, 란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읽어낸 것이었을까? 나는 이 공연에 대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으니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오랜만에, 라이브로 살아있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참 좋았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앞이건 뭐건 간에 어쨌든 가수는 30여 분간 그 자리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그것을 생생하게 듣지 않았는가. 나는 좀 서글퍼졌다.



누군가가 에너지를 쏟아낸 시간이 단 몇 마디의 말로 쉽게 부정당하고 있었다.



     영화 '라라랜드'의 초반부에서 재즈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본인이 연주하고 싶은 스타일이 있는데 식당 주인이 원하는 스타일은 따로 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니 고용주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하고 식당 주인의 요청대로 연주를 한다. 그러면서 이런 연주를 듣는 사람이 없다? 고 했나 그런 대사가 있었다. 그렇게 고용주가 원하는 대로 연주를 하다 살짝살짝 변주를 시도하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고용주의 말처럼 다들 음악엔 관심이 없고 음식을 먹거나 같이 온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음악을 들으러 온 공연장이 아니라 밥을 먹기 위해 온 식당이다. 그러니 라이브로 연주를 한다고 해도 그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배경음악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연주를 듣지 않는 것 같자 세바스찬은 마음대로 곡을 바꿔서 연주를 해버린다. 그때 식당 밖을 지나던 여자 주인공 미아(엠마 스톤)가 그 소리에 이끌려 식당에 들어온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고용주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는 죄로(사실 대사들을 보면 이전에도 그런 적이 많았던 거 같다) 당장 그 자리에서 해고를 당한다. 미아는 연주가 참 좋았다고 말을 건네려는데 그런 게 눈에 보일 리 없는 세바스찬은 미아를 무시한 채 식당을 나가버린다. 식당의 배경 음악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진심이 담긴 연주를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인 미아가 알아채 주었다. 오늘 이 식당의 연주자와 가수도 세바스찬과 같은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철저하게 그런 감정은 배제한 채 그저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노래를 불렀던 걸까? 


     노래를 부르거나 공연하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직장인에게 일하는 시간인 것처럼, 가수에게는 노래하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래하는 일이 과연 일반 직장인들이 말하는 의미의 '일하는' 시간과 똑같을까? 우리가 하는 '업무'나 '회사일'은 효율성, 간결성 등을 추구하는데 반해, 노래와 같은 예술에서 추구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니, 거창한 게 아니라도 좋다. 예술이나 문화생활이 의식주와 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아름다운 것만을 보고 느끼고 또 마음을 풍부하게 하는데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렇지, 정식 재즈 공연장도 아닌 곳에서 뭘 얼마나 바랐던 걸까? 그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술자리는 사람들 정신이 아직 멀쩡한 1차만 깔끔하게 하고 가는 게 좋은 거다. 뒤로 갈수록 술이 많이 들어가니 헛소리가 많이 나온다.


     객관적으로 그 가수의 노래가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노래 가사에서 현재를 흐르고 있는 7월을 발견했고-심지어 노래도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좋아하지만 잊고 있었던 노래인 'favorite things'도 들을 수 있었다. 잘 정제되어 녹음된 음반(음원)을 듣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다른 소리들은 차단된 채로 오직 그 노래, 멜로디, 연주만이 이어폰을 통해 바로 귀에 와서 꽂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제된 음반과 달리 라이브는 가수와 관객이 같은 공기를 공유하며 호흡하는 그곳에서, 가수의 노래가 흐르고 그 노래가 우리가 있는 투명한 공간을 가득 메우면서 관객의 귀에도 꽂히는 현장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음반처럼 잘 정제되어 있지 않아도, 설사 음정이 흔들리거나 약간의 실수가 있어도 머쓱하게 웃으며 넘어가거나 애드리브로 다르게 부를 수도 있다. 살아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퇴근하면서 혼자 그 가게에 방문해 그것이 누구든 그날 공연하는 사람의 노래를, 음악을 찬찬히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 살 먹고 미팅하기 (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