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니seny Jan 14. 2022

초보 독립생활자가 부딪치는 장벽 : 청소가 뭐예요?

깨끗한 집에 살아야 깨끗하게 쓰게 된다

      독립한 지 이제 8개월 차. 그동안은 줄곧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나. 집안일의 영역 중 '청소'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동안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직접 청소를 하는 것은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정도. 나에게 청소란 마지못해서 하거나 정말로 내 방을 치워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혼자 사니 다르다. 혼자 사는 집이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저녁때 집에 잠깐 있는 정도인데도 뭘 했다고 먼지가 쌓인다. 그리고 화장실 물때는 왜 그리도 빨리 끼는 것인지. 분명 어제 청소했는데도 세면대가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혼자 사는 집이니까 그깟 더러운 거, 나만 좀 보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더럽게 놔두면 더 더러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장소나 물건이 깨끗하면 더럽혀도 기분이 찜찜하기 때문에 더럽게 쓰지 않게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저분한 상태면 원래 지저분했는데 하며 더 더럽게 쓰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엔 탕비실이 있다.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그분은 하루에 딱 한번, 쓰레기만 비워주신다. 그래서 탕비실 테이블은 대체적으로 지저분하다. 조리대에 튀긴 커피 자국도, 누군가가 흘리고 간 물자국도 본인이 닦지 않는 한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엄청 깔끔한 편이 아닌데도 그것들이 참 신경 쓰였다. 그리고 그 자국들은 분명 다음번에 내가 물을 뜨러 왔을 때도 그대로 남아있고 대부분은 아까보다 더 더러워져 있다. 


      더러운 것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더럽혀진 탕비실 테이블 위에는 물건을 올려놓기도 꺼려진다.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마는 것이다. 나 말고도 닦는 사람이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띄는 것들은 슬쩍 닦는다. 물 자국이 튀지 않은 곳을 찾아 조심스레 컵을 올려놓는 그런 사소한 것마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크지도 않은 조리대와 테이블을 한 번 쓱 닦는 것,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지만 집에서 청소해야 할 곳들은 꽤 많다. 분에 넘치게 원룸이 아닌 아파트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방 2개에 화장실 2개 그리고 거실과 작게 부엌이 있다. 처음부터 화장실 하나는 청소하기 싫어서 아예 안 쓰고 청소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집에 온 엄마 왈 그래도 청소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때가 끼고 시간이 지나면 더 안 닦이고 나중에 청소하려면 더 힘들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2차 접종을 앞둔 시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접종 예약은 오후 3시였다. 오전에는 여유가 있길래 오랜만에 늦잠을 자거나 개인적인 공부 같은 밀린 일들을 하려다가 청소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동안 청소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니 독립하고 나서는 청소를 얼마 간격으로 해야 하는지 조차도 감을 잡지 못했다. 평일에는 도통 청소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겨우겨우 주말에 한번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요일이 다 가기 전에, 밀린 숙제를 하는 것처럼 계속 미뤄두다가 했다.


     오늘 백신을 맞고 오면 컨디션도 나른하고 맞은쪽 팔 엔 근육통이 와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다 주말 내내 청소를 해야지 해야지 하고 결국 안 하거나 최대한 미룰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오늘은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를 하기로 했다.


     이상하게 청소를 하려면 그냥 시작을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시작하는 의식으로 에어팟을 귀에 꼽고 신나는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틀고 그것을 들으면서 청소를 시작한다. 그래야 청소 도구를 손에 들고 행동을 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먼저 화장실 청소부터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화장실 두 군데 청소를 모두 하기로 했고 먼저 작은 화장실에 갔다. 가루비누를 변기와 세면대에 뿌리고 열심히 솔로 닦고 물을 뿌려 마무리한다. 그나마 화장실을 건식으로 쓰고 있어서 바닥에는 물을 뿌리지 않고 바닥은 물티슈로 바닥을 훔치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나머지 화장실 하나가 남았다. 여기가 많이 쓰는 메인 화장실이다. 변기와 세면대에 가루비누를 뿌린 후 열심히 닦는다. 그리고 샤워부스에 들어가서 샤워부스 바닥에도 가루비누를 뿌린 뒤 닦아낸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상하게도 샤워를 하고 다음날이 되었는데도 바닥에 물이 마르지 않아서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샤워기 헤드랑 본체 쪽에 문제가 있어서 물을 잠갔는데도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바닥이 완전히 마르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2,3달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사람을 불러 고쳤고 이제야 바닥이 깔끔하게 잘 마른다.


     이제 보니 샤워부스의 유리도 참 더럽다. 전 세입자도 거기까진 청소를 안 한 모양이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샤워부스 깨끗하게 청소하는 방법이라는 추천 동영상을 본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검색을 해보니 샤워 부스를 닦기 위해선 다른 도구가 필요할 것 같다. 조만간 그것들을 사서 샤워부스의 유리가 없는 거 마냥 부딪칠 정도로 깨끗하게 닦아야겠다.


     이제 화장실 청소가 끝났고 방과 거실 바닥청소가 남았다. 침대방부터 시작해 밀대로 바닥을 슥슥 민다. 슬슬 땀이 나는 느낌이다. 밀대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혼자 살기엔 아무래도 넓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복에 겨운 소리 같지만 다음엔 청소하기가 귀찮으니 좁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거실, 부엌, 나머지 서재 방까지 밀대로 쓸고 닦는다. 그리고 나니 한 시간 반이 흘러있었다. 온몸엔 어설프게 땀이 나있다. 로봇청소기를 들일까 고민된다. 


     몇 년 전,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결혼하고 나서 신혼집에 나를 초대해준 적이 있다. 친구네 집 앞에 내려서 슈퍼에 들러 휴지와 간식거리 등을 잔뜩 사들고 방문했다. 처음이었다. 친구와 부모님이 함께 사는 집에 간 게 아니라 친구가 독립해서, 결혼을 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룬 집에 방문한 것이.


     사실 신혼집에 초대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요즘은 옛날처럼 집들이를 많이 하는 추세도 아니고 친구를 초대하라는 의무는 없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예전에 먼저 결혼한 다른 친구가 신혼집에 초대해주지 않아서 서운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이제 부모님의 집이 아닌 자기(와 남편)의 집이 생긴 거니까 내가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꼭 초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까지 생각한,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친구는 여기가 안방이고 거실이고 화장실이라고 소개해주면서 내가 오기 전에 청소를 했다고 했다. 내가 오기 전 청소를 했다는 친구의 그 말에 담긴 수고를 이제는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는 요리를 잘 못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어서 대접해줬다. 카레에 김치를 곁들여 먹고, 방울토마토를 먹고 또 밀크티를 먹고 내가 사 온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고... 계속 뭘 먹으며 오후 내내 별 것도 아닌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했지만 더 어두워지면 집에 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처음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중간에 친구 무리가 겹치다 보니 안면을 트게 되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겹치는 수업도 생기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유일하게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항상 밖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고 밥을 사 먹던 우리, 영화제를 다니며 기차에서 또 영화관 앞에서 그리고 숙소에 가서도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가정이 있고 생활이 있다. 청소를 하면서 친구의 고마웠던 환대가 떠올랐고 다른 친구라면 몰라도 이 친구만큼은 꼭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청소를 다 마치고 오후에 백신을 맞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기분이 좋았다. 오늘로서 백신 접종을 다 마쳤고 회사에서 주는 백신 휴가로 하루를 쉰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와는 다른 기쁨도 있었다. 오늘 나를 가장 기쁘게 했던 건 하루의 시작을 내가 사는 곳의 청소를 정갈하게 마쳤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청소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전날 저녁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러 서가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이슬아 작가의 책 <심신 단련>의 한 꼭지를 보고 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빌리기 전 이미 책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가서 그 책을 바로 집어 오기도 하지만 서가를 돌다가 내가 전혀 모르는 책이거나 혹은 작가만 아는 책이거나 제목만 아는 책을 발견하면 책을 집어 들고 첫 부분을 읽어본다. 그러면 느낌이 온다. 이게 계속 읽힐 건지 아니면 잘 안 읽힐 건지를. (물론 같은 책이라도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앞부분을 조금 읽어보면서 읽히겠다 싶으면 빌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도 빌려오게 된 거였고 첫 꼭지에 실린 글을 살짝 소개해본다.


8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화장실 락스 청소로 하루를 시작했다. 지저분한 일일수록 기쁜 날에 슥 해버리는 게 좋다. 괜찮은 기분일 때 과슬이(과거의 이슬아)가 미리 해놓은 청소는 서럽거나 피로하거나 게으를 미슬이(미래의 이슬아)를 케어한다. (중략) 락스 청소를 하고 나면 화장실은 확연히 달라져 있다. 비교적 하얘진 화장실의 문을 닫고 집 전체 바닥을 걸레로 닦았다.

(중략)

우리는 그 사람이 아주 천천히 집을 정리하는 장면을 같이 상상했다. 거의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 청소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못 받은 수도요금은 8천 원짜리 농담이 되고 나는 여느 때처럼 내 집 곳곳을 청소했다. 옆집 남자나 삼십 대 오빠들과는 달리 지체 없이 정리했다.


<더 이상 오빠는 없다> 이슬아 작가 산문집 <심신 단련>에 실린 첫 번째 글


     중간에 빠진 내용은 이슬아 작가가 건물 특성상 앞집에 사는 남자와 수도요금을 나눠 내야 하는데 먼저 이슬아 작가가 내고 나중에 받는 형식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사 가면서 내야 할 마지막 달 수도요금을, 새로 이사 간 집이 정리되는 대로 입금하겠다더니 두 달째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집 정리되는 대로 입금하겠다더니 두 달째 입금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굉장히 정리 중인 거 아냐? 
두 달 동안 열심히 치웠는데도 아직도 정리가 안된 걸까? 



      수도요금은 아마도 끝까지 못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농담으로 넘기고 여전히 집 안 곳곳을 청소한다. 수도요금을 제 때 내지 않은 옆집 남자와 같이 살았던 삼십 대 오빠들과는 달리 제 때, 바로바로. 그런 그녀의 글을 읽고 나 또한 청소를 미루지 말고 지체 없이 해야겠다고 무의식 중에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그 뒤로 이제 매주 토요일, 나의 첫 일과는 집 안 청소로 시작한다. 내가 흘린 더러움, 내가 거둔다. 청소를 해야 다음 일과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밀이 있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