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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Dec 05. 2020

이것은 스카우트인가 새로운 헬게이트 입성인가

전(前) 상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회계팀의 업무는 주기적으로 돌아간다. 월 마감, 분기 마감, 반기 마감, 연마감. 중간중간 거래처 대금지급, 세금납부나 중간감사, 기말감사 그 외 본사 보고서 작성 등 대부분 정해진 기한이 있어 그에 맞춰 일을 하게 된다. 좋은 점은 어느 정도 미래의 일이 예상 가능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오히려 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는 절대로 쉴 수 없다거나 휴가를 내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은 며칠 내내 야근하며 일했던 5월 마감을 끝냈기 때문에 금요일 반나절만이라도 쉬고 싶어 오후만 휴가를 냈다. 






     오늘 오후 반차는 여름옷을 좀 구경하고, 북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좀 쉬다가 집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쇼핑몰에 들어서서 옷을 구경하러 돌아다녔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래서 오늘 쇼핑을 접을까 하다가 그래도 이왕 시간 내서 나왔는데 좀 더 보자 싶어 안 가본 가게들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나는 평소에 통화를 많이 안 하는 편이라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회사인가? 하면서 봤더니 지금은 이직해서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전 상사인 부장님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떴다. 이직하시고도 카톡으로 몇 번 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뭔진 몰라도 이번엔 전화로 물어봐야 할 내용인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면서 할 말이 있는데 좀 보자고 한다. 나는 정말 친한 친구 외에는-하지만 어쩔 때는 친한 친구여도 당일 약속이라면 잘 만나지 않는다-당일에 약속 잡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오후엔 휴가를 냈고 일이 있어서 오늘 당장 보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전화로 하면 안 되는 얘기냐고 물었다. 무슨 얘기길래, 얼마나 중요한 얘기길래 직접 만나서 해야 하는 거지? 그랬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이직 생각 없냐고 물어보시는 게 아닌가? 이직 생각은 없지만 어디 좋은 자리 나왔대요?라고 물었다. 헤드헌터가 물어봐 달라고 했거나 아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물어 물어 사람을 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랬더니 부장님 왈,



혹시 제가 다니는 여기로...
이직할 생각 없어요?



     자기랑 같이 일하는 아래 직원이 관두겠다고 면담을 했고 그만두는 게 확정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분과 가끔 연락을 했거나 나 말고 자주 연락하는 다른 직원 통해서 들은 얘기로는 그만둔다는 그 직원하고 전부터 트러블이 있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나한테 회사 소개를 하기 시작한다. 그곳은 매출이 점점 더 잘되고 있고 지금 내가 다니는 곳과는 다르게 회계팀인데도 월말에 마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시에 퇴근을 할 수 있고 연봉도 더 올려서 올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출장 갈 기회도 있으니 영어도 쓸 수 있다고 한다. 


     들으면서 아 네네, 답은 했지만 지금 상태에서 다음번 이직 혹은 이동은 신중하게 잘 생각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도 그렇고 경력 때문에도 그렇다. 부장님은 오히려 나랑 성향이 비슷한 편이어서 이해가 잘 되었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같이 일하다가 갑자기 이직한다고 해서 많이 아쉬워했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작정 이직을 할 순 없다.


     새로 온 팀장님은 전 상사와는 성향이 거의 반대다. 나와 비슷한 성향과 일하는 것도 좋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반대 성향과 일해보는 것도, 아니 성향 문제를 떠나 새로 온 팀장님과의 합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팀장님은 확실히 아는 것도 많고 자극을 주는 분이다. 인간적으로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내가 팀장님과 같이 일하려면 더 배우고 노력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현재 우리 회사의 상황에는 새 팀장님 같은 성향이 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 상사는 연봉 많이 줄 거라는 부분을 자꾸 어필했는데 나에게 돈은 그렇게까지 1순위는 아니다. 물론 돈 많이 주면 좋지. 그렇지만 돈을 많이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실제로 연봉협상을 하지 않은 이상 돈을 얼마나 줄지, 많이 줄지 알 수 없는 문제다. 2009년에 설립된 우리 회사만 해도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전 상사가 다니는 곳은 2012년에 설립된 곳으로 여기보다 앞으로 더 정리해야 할게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돈보다 시간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약 5년간 다닌 이 회사에서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인 만큼 새로운 곳이 아닌 여기서 한번 승부수를 띄워보고자 한다. 6월 중에는 팀장님께, 혹시 팀장님께 컨펌이 된다면 회사에 연봉을 깎더라도 주 35시간 제로 일하고 싶다고 인사팀에 말해볼까 생각하는 중이기도 했다. 새로운 곳으로 옮기면 또 적응을 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시스템 그리고 전 상사가 데려온 직원이라는 남들의 시선 또한 견뎌야 한다. 그걸 감수하고 갈만한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직할 때 규모가 너무 작은 회사는 피하는 편인데 그 회사는 인원이 적고 규모가 작은 편이라 내가 이직할 때 고려하는 부분과 맞지 않았다. 자꾸 전 상사의 말을 다 반박하는 느낌이라 참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는 것은 그래도 내가 실력이 엄청 뛰어나다기보다 '같이 일할만한' 협조적인 직원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전 상사는 주말 동안 생각해보라며 이틀의 말미를 더 주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직 생각은 없다고 말했으니 주말이 지나 월요일 오전에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이다.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해서 오전 9시가 지나자마자 메시지를 보냈다.


- 부장님, 출근은 잘하셨어요? ㅎㅎ 회사라 통화하기가 좀 그래서 카톡 남겨드려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당분간 이직 생각이 없어서 여기서 좀 더 일하려고요. 부장님과 맞는 좋은 분 채용하시길 바랄게요.


그러자 이렇게 답장이 왔다.


- 알겠습니다. 주말에 생각해보니 갑작스레 말한 거 같아 미안했어요. 하지만 ㅇㅇ씨는 모든 분이 좋게 보고 있다는 사실(제가 들은 것도 있고)만 알고 있음 될 거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고 수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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