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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되기는 참 어려워

BGM <근데 왜>, 페퍼톤스

by 세니seny


이제 와 문득 돌아보니
덥수룩한 수염
시간은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와버렸구나

나른한 아침 눈 비비며
커피를 내려
향기로운 예가체프
삶의 질이 높아졌구나

근데 왜
변한 게 없는 거야 왜
어른스럽다는 건 왜 이리도 복잡한 거니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왜
붙잡을 수 없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야

잊혀 가는 이름들 얼굴
소중한 추억
바래진 사진 속엔
아는 사람 나뿐이구나

근데 왜
변한 게 없는 거야 왜
어른스럽다는 건 왜 이리도 복잡한 거니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야

이리저리 오랫동안 헤매다
무얼 놓쳤을까
망설이던 긴 여름의 끝
불어오는 가을바람

이제와 문득 돌아보니
알아가는 건
심란한 일들 모두
지나가면 그뿐이구나

근데 왜
바뀌질 않는 거야 왜
어른스럽다는 건 왜 이리도 복잡한 거니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왜
붙잡을 수 없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야


아무 생각 없었던
하루하루 신나던
우리 어린 날들로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야

<근데 왜>, 페퍼톤스





2014년 8월 22일의 기록.



어제는 점심 맛있게 먹고 기분이 찝찝했다. 그냥 식사자리에서 흔히들 하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나 혼자 또 진지하게 받았다. 그런 게 어렵다. 미혼여성이라고 하면 흔히들 하는 그런 말들이 참 듣기 싫다. 아직 30살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싫어지면 큰일이다.


게다가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더더욱 그렇고. 기분 좋게 이야기할 다양한 주제들이 얼마나 많은데도 꼭 이런 이야기만 할까?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괜히 분위기를 흐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뭘 해야 기분이 나아질까 고민했지만 해답은 결국 '다음번에는 그러지 말자'였다.


다른 사람이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나 말을 하는 건 귀신같이 알아채고 불편해하면서도 왜 정작 나는, 나에게는 그렇게 관대해지는 걸까? 그래서 어제와 오늘은 나에게 의문 투성이다.


역시나 오늘 아침 회의에서도 듣기 싫은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는데 그걸 보고 욕하면서도 순간 나도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보다 덜하지 않은가?라는 생각과 함께 어제의 기분 나쁨이 씻겨 내려갔다.


작년 9월 23일, 처음 입사해서 참석한 회의에서부터 이 회사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오래 다니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일 년을 꼬박 채우고 말았다.


회의 시간에 열받으면 테이블 밑에 핸드폰을 놓고는 구직앱에 접속해 슥슥 취업공고를 검색한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을 엿 먹이는 기분은 든다. 참 스마트한 세상이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급여를 높여서 이직을 하기보단 현상유지를 하면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곳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는 일부러 스스로 그만둔 전 회사에 대한 언급을 계속 피했고 생각나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만 했는데 닥쳐올 땐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그 여세를 몰아 아침에 인터넷 검색창에 전 회사명으로 검색을 해봤다. 대표이사가 바뀌고 회계사 한 명은 또* 의문사로 죽고(*내가 다닐 때도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여전히 일 년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취업설명회를 열었는데 거기 나온 인사담당자 이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인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7월 말인가 내가 일했던 부서 공고가 났을 때는 맘에 들지 않았는지 한 2주 정도 재공고가 났는데 이제는 공고가 연장되지 않았다. 맘에 드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뭐가 되었든. 누가 그만둔 건지도 참으로 궁금하다. 하지만 연락은 할 수 없다. 아니, 하지 않는다.


내가 마지막 근무할 땐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얼굴을 보지 못하고 퇴사해서 죄송했던 그러나 이제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해서 여전히 근무하고 있는 고마운 사수가 5월에 연락 와서 한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거다. 너 다시 올래? 뭐 그런 말. 그때쯤 이미 누군가가 그만둔다든지 하는 어떤 지각변동이 있었던 거다.


이후로 나한테 직접적인 오퍼는 오지 않았다. 내가 그때 농담으로라도 '저 다시 가고 싶어요 ㅋㅋㅋ' 이랬어야 했을까. 아무튼 카톡이 온 타이밍이 좀 그랬던 게 하필 그다음 날인가 다른 곳에 면접이 잡혀있어서 약간 흥분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다음 스텝은 제발, 인간적인 곳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른이 되는 건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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