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너에게>, 권순관
날씨 좋은 날 나갈까
쉴 틈 없이 우리 달려왔었잖아
이제 조금 한숨 돌려도 될까
돌아보면 다 좋았어
가질 수 없는 걸 꼭 붙잡고 있던
나약한 내 마음을 가득 안아줘서
난 너에게 한없이 많이 부족한 사람
이런 나에게 넌 말해줬었지
그냥 이대로 나여도 괜찮다고
네가 있다면 너만 괜찮다면
가파른 길을 함께 걷든지
파도 치는 바다를 건너든지
그건 사랑의 완성의 과정일 뿐
고단한 너의 얼굴엔
가졌던 꿈보다 사랑을 택했던
모든 걸 잃은 듯해도 우린 영원을 얻었네
난 너에게 한없이 많이 부족한 사람
이런 나에게 넌 말해줬었지
그냥 이대로 나여도 괜찮다고
네가 있다면 너만 괜찮다면
가파른 길을 함께 걷든지
파도 치는 바다를 건너든지 그건
사랑의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야
사랑해 사랑해 널
많이 하지 못한 말
미안해 미안해 늘
고마워 고마워 난
이젠 두렵지 않아
함께 걸어가자
<너에게>, 권순관
이 노래는 밴드 노 리플라이(no reply)의 두 멤버 중 한 명인,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인 권순관의 솔로앨범 2집에 실린 곡으로 타이틀곡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는 몇십 번, 몇 백번이고 듣고 가사를 곱씹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이 노래와 좋아하는 다른 가수의 저 노래에서 비슷하게 느껴지는 무드 혹은 한 곡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에 대한 답을 다른 가수의 노래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우타다 히카루의 '誓(ちか)い (맹세)'라는 노래 가사에서 물어본 질문을 권순관의 이 노래에서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本当にこんな私でもいいの
ねえいいの
정말 이런 나라도 괜찮은 거야?
있잖아, 정말 괜찮은 거지?
<誓(ちか)い>, 宇多田ヒカル
이런 나에게 넌 말해줬었지
그냥 이대로 나여도 괜찮다고
<너에게>, 권순관
아마 이런 주제는 꼭 이 두 노래가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노래에서도 많이 나오는 내용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여러 번 듣다 보니 거기에서 찾아낸 것일 뿐. 그리고 이 질문과 답변을 관통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은 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달라는 것.
이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솔직한 욕망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어느 정도 타고난 사람들이다. 아우라와 끼와 언변을 갖춘 스타 같은 사람들.
하지만 그렇게 잘난 그러니까 저절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이런 사람은 정말 몇천만 분의 1이며 연예인들은 직업적으로 애초에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꾸며져서 비치는 것도 있기에 제외)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매력을 크게 포장하든, 없는 걸 만들어내서 포장하든 아니면 그냥 있는 그대로 이게 나예요 하면서 아무런 포장 없이 그대로 들이밀든.
하지만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된다면 특히 그 사람이 너무나 내 마음에 들 때 내 모습을 보여줘서 사랑을 얻으려기 보다는 차라리 내 진짜 모습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꾸며서, 연출해서 사랑을 얻으려고 하게 된다. 정말 평범한 사람이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사랑을 얻으려고 하는 건 아무래도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내 본모습을 이상형으로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물론 내 안의 그것과 비슷한 게 1%라도 있겠지만 아주 작은 특성을 좀 더 크게 연기하거나 나에게 아예 없는 특성이라면 어떻게든 없는 걸 만들어내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그리 다정하지 않지만 다정하게, 다소 친절한 편이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친절하게. 돈을 잘 못 벌고 심지어 빚도 있지만 돈을 잘 버는 척하거나 돈을 아끼는 편이지만 큰돈을 편하게 쓰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선물 사주는 걸 원래 좋아하지 않지만 고가의 선물을 펑펑 사주고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상대방과 만나려 노력하는 모습들과 같은 것들.
이걸 적당히 이용하면 좋지만 너무 지나치게 앞선 페이스로 파파파박 무슨 불꽃 터뜨리듯이 강하게 불꽃막을 치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아 얘는 원래 이렇게 다정하고 친절하며 돈을 잘 쓰고 돈도 잘 벌고 내가 부르면 아니 매일매일 그냥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하고 항상 달려오는 사랑을 일 순위로 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어놓고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다? 연기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해야 하는 사람이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나둘씩 내 진짜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좋아했던 나의 특성은 아예 없거나 작은 것이었기 때문에 거의 사라지게 된다.
문제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상대방이 사라지는 바로 그 부분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나의 본모습에도 매력을 느끼면 다행이지만 예를 들어 사라지는 그 부분만이 상대방이 사랑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혹은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속성이었다면? 그럼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거다.
그나마 사귀고 있는 중이라면
헤어지면 되지만...
이미 결혼을 했다면?
결혼생활을
이어가는데 문제가 된다면?
결혼 전에는 남녀평등을 함께 주장했던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는 내 일 아니잖아 그냥 네가 좀 더 해 줘, 원래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거야 등등 같은 태도로 돌변한다면? 다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갈등이 생긴다면?
어디선가 본 웹툰이었나 영상이었나...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하고 호감이 생겨서 두 번 정도 만난 상황.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그 남자가 굉장히 큰(?) 아니다 크다기 보단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 호감을 깎아먹을 만한, 굳이 말해도 되지 않을 사실 하나를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남자는 그만큼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어떤 사실도 숨기지 않고 가감 없이 말한 거라고 했다. 오히려 이 관계를 더 오래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꽁꽁 숨기기보다는 차라리 이 사실을 먼저 털어놓는다. 그리고 혹시 네가 이것 때문에 나랑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마음은 조금 쓰리겠지만 어쩔 수 없지. 오케이. 오히려 관계가 더 진전되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서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려운 말을 꺼낸 만큼 오히려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시작하고 싶다는 사람의 말이라면 아주 심각한 결격사유(예 : 감옥에 다녀왔다)만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 솔직함이란 이런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어떤 병을 가지고 있다던가 집안에 우환이 있다던가 하는 것들은 사귀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헤어지게 될 수도 있는 사유가 있다. 다만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만 숨기고 싶은 찌질한 부분도 있었을 텐데 사소한 그런 부분까지 사랑해 달라는 귀여운 종류의 투정이면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모두가 듣고 싶은 말은...
그냥 너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때로는 조금 찌질하지만
그래도 다정하고 섬세하고 나를 생각해 주는 너여서
그러니까 그거면 됐다고.
더 이상 꾸미지 말고
그냥 그대로의 너이면 좋겠다고.
꾸며진 내가 아니라
찌질하고 조금 못나도 '나'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모두 원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