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만화영화 <영심이> 수록곡 중 '알고 싶어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구름은 어디에서 흘러오는지
알고 싶어요
난 알고 싶어요
알고픈 건
아는 그리고 딱 그만큼인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새벽은 왔다가 어딜 가는지
어둠은 밀려서 어딜 가는지
알고 싶어요
난 알고 싶어요
알고픈 건
아는 그리고 딱 그만큼인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만화영화 <영심이> 수록곡 중 '알고 싶어요'
얼마 전 어느 밤.
잠이 안 와 유튜브를 뒤적거리던 중, 추천영상으로 옛날 만화인 <영심이>가 떴다. 유튜브로 <영심이>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니. 오랜만이라 궁금하길래 한 번 눌러봤다. 그러다 가끔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 노래, 그동안 대체 어디서 들었던 노래였지? 하며 출처를 찾고 있던 그 노래, 이게 바로 영심이에서 나온 노래였던 것이다. 우연히 뜬 알고리즘으로 고민이 해결되었다.
지금도 예민하지만 지금보다 더, 다른 의미로 예민했던 사춘기. 10살 때부터 25년간 살았던 집이 남향이었고 집 베란다에서 노을이 굉장히 잘 보이는 구조였다. 일하러 간 부모님은 저녁 늦게 집에 오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나와 동생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학원 가기 전 혹은 학원에 안 가는 날은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노을을 바라다보며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었다. 그 뒤로도 종종 저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르곤 했지만 그동안 이 노래가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작화는 예스럽지만 63 빌딩과 한강이 보이는 서울의 모습은 지금과 똑같았다. 63 빌딩은 당시 지금의 롯데타워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 삐까뻔쩍한 건물로 묘사되고 있었다. 당시엔 정말 그 건물이 세워진 지 얼마 안 돼서 금빛처럼 빛났는지 만화적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63빌딩보다 더 높은 건물도 등장했고 그것 말고도 새로 지어진 높은 건물이 많아 63 빌딩은 더 이상 과거만큼 반짝거리지 않는다. 성우 더빙 스타일도 옛날 스타일이라 요즘 애들은 촌스럽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포근한 목소리였다.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원래 가사에다 내가 작사를 해서 2절과 3절도 따로 만들었다. 맨 앞 '바람' 자리에 들어가는 단어를 바꾸고 그 단어에 어울리는 혹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동사를 넣어주면 가사가 완성된다. 그런 식으로 노래를 무한 증식시킬 수 있다. 2절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노을 보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였던지라 아래와 같이 만들어봤다.
(2절)
태양은 어디에서 솟아오는지
태양은 어디에서 솟아오는지
난 알고 싶어요
난 알고 싶어요
그리고 세상의 거의 모든 노래 가사에는 사랑이 들어가니 또 사랑을 주제로 아니 만들 수 없지. 당시 짝사랑했던 남자애를 떠올리며 가사를 써봤다.
(3절)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오는지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오는지
난 알고 싶어요
난 알고 싶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2월이 지나고 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게 된다. 같은 학교를 가게 될지 어떨지도 몰랐고 같은 학교에 진학한다고 해도 같은 반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6학년의 발렌타인 데이에는 꼭 초콜릿을 주고 싶었다. 문제는 초콜릿을 주긴 줄 건데, 도대체 어떻게 줄지가 문제였다.
당시에 짝사랑남과 같은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반이라 학원 셔틀버스에서만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오히려 보는 눈이 많은(학급 전체 인원 + a(다른 반 친구들)) 학교보다는 직접 건네주기에 괜찮은 환경이었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가면 말도 못 하고 얼굴도 못 들었던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짝사랑하는 걸 알고 있는 친구한테 나 대신 좀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나는 교실의 내 자리에 앉아 그 장면을 자리에서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되게 웃긴다. 푸하하.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데 그거 하나 내가 못하고 남한테 부탁을 했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초콜릿을 전달하고 나서 그 애와 알콩달콩 잘되는 걸 기대한다기 보다도 그냥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거,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 마음을 직접 전달한 것도 아니니 당연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또래 남자애들은 보통 이런 거 받으면 다른 애들한테 떠벌리고 다니거나 오히려 나를 놀리려 들 텐데 이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되려 나중에 나한테 따로 잘 받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때도 그 아이의 그런 태도가 참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잘 살고 있니, 형진아? 김형진이었나, 이형진이었나 이제는 성도 헷갈리네. 키는 조금 작았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이 좋았던,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렸으며 공부도 곧잘 했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 치고 꽤 성숙했던 그 아이는 어디서든 아주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다시 사랑이 필 날이 올까? 아무래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