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권순관 1집 앨범 <a door>
(2023년의 봄이 다가오는 시점에 쓴 글입니다.)
4,5월 이맘때, 봄에 듣기 좋은 앨범으로 밴드 노리플라이의 싱어이자 키보디스트, 작곡가인 권순관의 솔로 1집 앨범 <a door>를 추천한다.
나는 좋아하는 가수 한정 아직도 실물 형태의 앨범인 시디(CD)를 산다. 나도 시대에 발맞춰 요즘엔 유튜브로 곧바로 나온 음원을 듣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은 실물 형태로 산다. 그리고 작동이 됐다 안 됐다 하는 오래된 시디플레이어에 맨 처음 한 번은 CD를 넣고, 반드시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듣는다.
요즘 음반 시장은 앨범 단위의 발표가 아닌 싱글곡 발매가 범람하게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건 적어도 어렸을 때 그러니까 20년 정도 된 습관이라 그런지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서 그래도 최소한 한 번은 들어보는 게 아직까지 당연한 일이다.
최근 나오는 노래의 퀄리티들이 과거에 비해 좋아진 건 사실이다. 게다가 앨범이 아니라 전부 싱글로 나오다 보니 나오는 곡마다 족족 타이틀곡 감이다. 곡 하나하나도 작품이지만 여러 곡을 모아서 발표하는 앨범이라는 형태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이건 내가 주로 좋아하는 가수들이 직접 곡을 쓰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와 같은 시대를, 세상을 살면서 어떤 걸 느꼈고 어떤 곳에 가치를 뒀는지 그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단편소설도 좋기는 한데 그래도 틀이 잘 짜인 장편소설 한 권을 읽었을 때의 기쁨과는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될까.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주로 앨범 단위로 음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 이 논리가 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해서 거기에 실린 모든 곡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듣다 보면 이중에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곡이 있고 또 별로 안 듣게 되는 곡으로 나뉜다.
사람들마다 어떤 특정한 노래를 들으면 그 당시 시절로 간다는 노래가 있는데 나에게도 그런 노래들이 여러 곡 있다. 그런데 권순관 1집 앨범만큼은 어느 특정 노래가 생각난다기보다 어느 시점이 되면 '1집 앨범 전체를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이 앨범을 찾아 듣게 되는 시기는 바로 지금, '봄'이다. 좀 더 특정 짓자면 4월과 5월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 앨범이 처음 발매된 건 봄이 막 시작할 무렵인 2013년 4월이었다. 나는 관심 있는 가수의 앨범은 나오자마자 듣기 때문에 그 계절에 이 앨범을 처음 들었고 한동안 즐겨 들었기 때문에 그 계절만 되면 앨범 전체가 떠오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밴드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나오는 경우 노래가 내 취향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같이 노리플라이를 좋아했던 친구 한 명은 권순관 솔로앨범은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난 밴드는 밴드대로, 솔로는 솔로앨범대로 좋았다. 노리플라이 때보단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더 좋았던 거다.
그럼 권순관 1집 앨범이 발매되었던 2013년 4월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앨범 한 개를 여유롭게 곱씹으며 들을 시간이 있었던 걸까? 당시 나는 3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있는 중이었다. 무작정 논건 아니었고 다음 스텝을 준비한답시고 항공물류학원에 다니고 여기저기 원서도 넣고 면접도 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딘가 공식적인 곳에 속하지 않은 신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꽤 불안한 시절이었다. 스스로에게 1년간 갭 이어(gap year)를 줬으니 연말까지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시기를 지칭하는 단어로 '갭 이어'라는 표현이 생겨서 이해가 쉬워졌다. 하지만 당시엔 이 시기를 표현할만한 용어조차 없어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불분명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 시간이 힘들기만 하진 않았다. 소속감이 없고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집에 눈치가 보인다는 것 빼고는 좋았다. 학생은 방학이 있어서 여름과 겨울에 한두 달씩 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방학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그 시기는 나에게 방학이나 마찬가지여서 좋았던 것이다.
다행히 독립하지 않은 상태여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집세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여윳돈이 있어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나는 이제 여유 있게 벚꽃구경을 가고 싶을 때 낮이든 밤이든 마음대로 나갈 수 있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와서 이미 어두컴컴해진 저녁바람을 맞으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화를 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아가며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봄햇살이 따사로이 비추는 낮에 편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전거를 마음대로 탈 수 있었다. 엄청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앨범 수록곡 중 <변하지 않는 것들>의 노래 가사 중에 '오월의 햇살과'라는 가사 때문에 유독 봄에 이 앨범이 떠오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앨범은 항상 봄이 시작하는, 따뜻한 기운이 세상 도처에 퍼지고 벚꽃이 피는 4월부터 서서히 날이 따뜻해지고 길거리에 빨간 장미가 피어나는 5월까지 그렇게 매년 찾아 듣게 되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 다가올 봄에도 그러할 것이다. 앨범에 실린 전곡이 다 좋지만 그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노래를 몇 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잊었던 서울 하늘
잊고 지낸 사람들
햇살이 오랜만에 느껴져
숨 쉬듯 아프던 시간은 지났나 봐
변함없이 할 일을 하고
외로움은 익숙해져 가
너 없이
몇 번의 눈물이 마르고
잠잠해질 때쯤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그리움도 이젠 제자리로
돌아오나 봐
너무도 아름다웠던 만큼
무엇도 위로하지 못한 긴 시간을
밤늦은 산책에 떨구고
친구들 얘기에 웃으며
조금씩
몇 번의 눈물이 마르고
잠잠해질 때쯤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그리움도 이젠 제자리로
또 한차례 사랑이 떠나고
변함없이 강물이 흐르네
잊었던 서울 하늘
잊고 지낸 사람들
1번 트랙 <Home Again>
*
나는 서울에 살고 있으니까 노래가사에 '서울'이 들어가면 그 노래는 더 특별해진다.
'서울 하늘'이라는 가사를 들으면 여러 감정들이 떠오른다.
어느새 이 계절이 끝나가네
같은 길을 걸어준 너에게
이제는, 이제는
이별의 인사를 전해야 할 시간
사랑 외엔 무엇도 필요 없던
나를 안은 두 팔이 여렸던
여전히, 여전히
아름다운 너에게 이 말을 전하네
Goodbye, love
마음 깊이 빛을 밝혀준 그대 이젠
Goodbye, love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참 많구나
Goodbye, love
꿈을 얘기하던 네게서 끝없는 바다를 봤어
Goodbye, love
Goodbye, love
잊지 말자
그대로 걸어가
함께 걷던 거리를 걷더라도
익숙해진 내 손이 그리워도
천천히, 천천히
눈물을 멈추길 다 지난 일처럼
Goodbye, love
마음 깊이 빛을 밝혀준 그대 이젠
Goodbye, love
잊히지지 않는 일들이 참 많구나
Goodbye, love
아이같이 웃던 네게서 난 눈을 뗄 수 없었어
Goodbye, love
Goodbye, love
변하지 마
그렇게 웃어줘
Goodbye, love
꿈을 얘기하던 네게서 끝없는 바다를 봤어
Goodbye, love
Goodbye, love
잊지 말자
그렇게 걸어가
2번 트랙 <그렇게 웃어줘>
*
타이틀곡이다.
전형적인 구성을 가진 곡이어서 뻔할 수도 있었지만 안 뻔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몇몇 가사가 마음에 와서 콕 박혔기 때문일 거다.
긴 여행을 떠나요
가능한 먼 곳에
가벼운 짐 들고
화려한 휴양지보다는
작은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곳
그런 곳이 더 좋을 거예요
저 들판을 걸어요
바람을 맞으며
이렇게 해볼까요
손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따라 발걸음에 맞추어
떠나오길 잘했다 하겠죠
비바람 속을 우산 없이 걸어요
물기 머금은 그 모습도 좋겠죠
빗물에 젖어들 때
우산 속에 막혀있던
그 마음을 흘려보내요
밤, 검푸른 하늘과
별의 파편들이 어둠을 밝히겠죠
맨발을 벗고 숲 속 길을 걸어요
좀 아픈 만큼 나를 붙잡을 테니
가까운 그대 숨결
발끝에 전해져요
세상이 품은 온기가
긴 여행을 떠나요
도착했을 때엔
해가 졌음 해요
천천히 밥을 지어먹고
이런저런 얘기라도 하겠죠
특별하지 않아도 좋아요
6번 트랙 <긴 여행을 떠나요>
*
쿵짝짝 쿵짝짝.
노래 뒤편으로 얕게 왈츠 리듬이 깔리면서 눈앞에 한 편의 여행이 그려진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길거리에서도 저절로 스텝을 밟게 된다.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주의)
어둠은 떠나고 분주한 아침에
나를 깨우는 거리에 붐비는 소리
오월의 햇살과 그만큼 눈부신
여린 설레임 날 움직이는 그 노래
변하지 않는 것들 다 변해가는 것 중에
익숙해서 당연한 늘 곁에 있는 모든 것
키 높은 나무와 바람의 흔들림
힘을 내라는 엄마의 작은 목소리
변하지 않는 것들 다 변해가는 것 중에
익숙해서 당연한 늘 곁을 지킨 사람들
잊지 못한 거리도 사랑했던 마음도
변해만 가
영원할 것만 같은 그 아름다운 것들이
어느 날 물결처럼 다 흩어지지 않기를
변하지 않는 것들 다 변해가는 것 중에
잊을 만큼 당연한 내 곁에 있는 모든 것
비 오는 휴일과 홀로 선 바다와
그대 웃음이 그 자리에 머물기를
사라지지 않기를
10번 트랙 <변하지 않는 것들>
*
'오월의 햇살과'란 가사 때문인지 특히 5월만 되면 꼭꼭 찾아 듣는 노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게 바로 이런 '변하지 않는 것들'이겠지.
아름다운 날들
그 빛나던 오후
너의 목소리
닫혀가는 문 저편으로
익숙한 온도
서로를 전하던
움켜쥔 손을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 왔구나
여기에서
잊지 마, 숨겨놓은 그 마음속의 보석을
누구에게 다 빛이 될 그 마음을
언제라도 어디라도 그 사랑을
간직하길 바래
고마울 뿐이야
평범할 수 없는
내게 기대어
눈을 감고 날 바라봐줘서
참 고마워
저 문을 나서면 어떤 세상이 있을지
눈물이 많은 네가 걱정되지만
한발자욱, 한발자욱 디디면 돼
날 알기 전처럼
그러면 돼
안녕 우리, 안녕 이젠
아주 머나먼 길에 서서
너를 위해 기도할게
나란한 걸음
지나쳐 간 풍경
마음을 담아
날 부르는 그 목소리를
잊지 않을게
마지막 트랙 <a door>
*
자존감이 떨어질 때 듣는 노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나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내 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