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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l 25. 2020

소설 속 인물과 현실의 내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독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독서’라는 대답을 하면 ‘정말요?’라는 사람들의 놀라운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저 재미를 위해 평소 소설과 에세이류를 주로 읽고 있고,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는 평범한 독자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굉장히 유명한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에세이는 종종 읽었지만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었다. (아, 그렇지만 상실의 시대는 읽은 것 같긴 하다.)


     이 책도 아마 내가 독서모임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 요즘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이다. 그래도 내 주위엔 책을 읽는 친구들이 조금 있는 편이었는데 그마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소설은 주변에서 거의 읽지 않아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몇 년 전, 새해를 맞아 새로운 결심을 안고 1월부터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독서'토론'모임의 느낌이었는데 나는 토론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많은 걱정을 안고 첫 모임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런 장소가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건물의 계단을 지나 모임이 열리는 방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그날 내가 느꼈던 감정은 대학교 1학년 때, 작고 오래된 동아리 방에서 뜨거운 한 여름에 동아리 동기들과 선배들과 함께 열심히 ‘피가로의 결혼’을 연주하며 바이올린 활을 그었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장소나 상황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있어 그게 모든 걸 압도한 느낌이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느낌과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자기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고, 소설에 관련된 사회문제까지도 알차게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장소나 상황이 조금 열악했어도 다 용서가 되었다.


     뭐든지 처음이 어느 정도 중요한데 그 독서모임에 대한 첫인상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나는 모임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째 모임을 나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읽지 않을 책-혹은 언젠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읽을 책-이었지만 다음 모임 책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들이 사는 지역이 일본의 나고야 시市였다.


     나고야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닌데 얼마 후 여행을 가기로 계획해 놓았던 곳이라 책을 펼치자마자 나고야라는 지명이 나와서 신기했다. 책은 몇 장 읽지 못했는데 여행일이 다가와 일단 여행을 떠났고 여행에 갔다 돌아와서 책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나고야가 고향으로, 고등학교 시절에 인생 친구라 부를 수 있는 4명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서 자신을 포함한 5명 중 자신만 대학교 진학을 위해 도쿄로 올라오는데 그 뒤로도 잘 지내다 정말 갑자기 어느 날, 모두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된다.


      친구들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전화를 대신 받은 누군가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겠다고 하지만 회신이 없고, 결국 친구 중 한 명인 아오로부터 ‘모임에서 내쳐진 이유는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냐’며 모두에게 거절당한다.


     내가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는 단지 내가 여행 갔던 나고야가 배경으로 나왔다는 점만 신기해했는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주인공에게 일어난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된 걸 운명이라고 느꼈다.




     때는 중학교 2학년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무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혼자 놀거나 모두와 친하게 지낸다기보다 어느 그룹에 속해야 하고 그 그룹 내 아이들끼리 주로 어울려 놀았다.


     나는 무리 생활이 어려웠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거나 단체 활동할 때 같이 하자고 손 내밀어 주는 친구들이 있어 그럭저럭 잘 지냈다.


     중학교 1학년이 돼서는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친구 한 명이 있어 그 친구와 정말 잘 지냈는데 그 친구가 1학년을 마치고 전학을 갔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래도 1학년 때 그냥저냥 친했던 친구 1명이 같은 반이 되었고 그 외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 또 초등학교 때 알던 친구의 친구나 방과 후 활동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있어 하나, 둘 모이니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그룹이 완성되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혀 모르던 애들이 아니고 전부터 조금씩 알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에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저쪽에 친구들이 모여 있는데 왠지 모르게 그쪽으로 가지를 못하겠는 거였다. 애들이 잘 놀고 있는데 괜히 내가 거기에 끼어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쭈뼛거리다 결국 자리에서 다음 수업시간 책을 뒤적거리거나 숙제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4월의 어느 날, 그날은 아침부터 이상했다. 아침에 친구들을 보고 ‘안녕’ 인사를 했는데 딱 한 명 빼고 내 인사를 모두 씹었다. 분명 나를 봤고 눈이 마주쳤는데도.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나만 빼놓고 모여서 내 쪽을 보며 쑥덕거리는 거 같았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급식실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와 먹어야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엔 그룹 애들끼리 모여서 먹어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선 왠지 도시락을 먹자고 했다가는 분명 거절당할 거 같아 결국 다른 반에 있는 1학년 때 친구를 찾아가 밥을 먹었다.


     오후엔 체육시간이 끝나고 체육복을 갈아입으러 가려는데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체육복을 화장실에서 갈아입었는데 그것도 한 명씩 갈아입는 게 아니라 친한 친구들 여러 명이 한 칸에 우르르 들어가서 체육복을 갈아입었으니 다 같이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나만 빼고 다들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다음 수업 시간도 있고 해서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으니 결국 화장실에 가서 혼자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옆 칸에서 유일하게 1학년 때 유일하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OO이(내 이름)
걔 웃기지 않냐?
맨날 공부 잘한다고
잘난 척하는지
쉬는 시간에도
책상에만 앉아있고.


     그 애 목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고 그나마 다른 애들은 크게 맞장구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걔는 평소에도 나에게 장난스럽게 ‘OO아, 공부 그만해’, ‘OO아, 너만 공부하냐?’ 이런 말들을 했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인사를 했는데 안 받아준 게 다 이런 것에서 시작됐던 거였다.


     나는 하루아침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애가 되어버렸다. 앉아서 수업받는 시간을 빼고는 단체로 화장실을 가고, 매점을 가고, 음악 수업을 하러 음악실로 이동하고, 체육복을 갈아입는 등 모두 친구들끼리 모여서 해야 하는데 갑자기 혼자 남아 이 모든 것을 혼자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인사를 받아주던 그 친구 한 명은 인사만은 계속 받아주었다. 다른 반에 있는 1학년 때 친구들에겐 슬쩍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다른 반에 친구가 있다는 게 그렇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결국 같은 반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말하는 순간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고 그 애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사과를 할 것이다. 사과를 해도 한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했어도 결국 전처럼 지내긴 어려울 것이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 같았다. 학원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생각했다.


보통 뉴스 같은 데서 보면
왕따 당하는 친구들은 너무 괴롭고 외로우니까 죽는 생각 하던데 나도 그래야 하나?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지?
나는 공부 잘한다고 잘난 척하거나 그걸 내세운 적은 없는데.

쉬는 시간에 앉아서 공부를 했던 건,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니라
친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서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미 다들 나 빼고 모여 있으니까
끼어들기 어색해서 그랬던 건데.


     그래도 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 거 같아 죽을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괴로웠고 뭔가 단체로 해야 할 때는 참 곤란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러 5월이 되었다. 그날은 수업이 끝나고 교실 청소가 있는 날이었다. 다들 청소를 마치고 선생님이 와서 검사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교실 한편에 혼자 서 있었는데 교실 앞쪽에 모여 있던 나의 친구’였던’ 애들 다섯 명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화장실에서 내 험담을 주도했던 그 주동자만 따로 서 있었고 나머지 네 명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동자를 제외한 네 명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였기 때문에 중학교 와서 알게 된 주동자보단 알고 지낸 시간들이 길었다. 저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거 같은 데다 저 네 명만 있다면 가서 말을 걸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다. 알고 보니 그 네 명의 친구와 나머지 한 명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실 나랑 말을 안 했던 것도 그 주동자 친구의 주장이 강했고 나머지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따랐던 거라고 했다.


     그날로 상황은 역전되었다. 내 험담을 주도했던 그 친구가 오히려 무리에서 배제되었고 나는 다시 그 무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친구에게 사과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는 학교 생활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 친구와 계속 같은 반에서 얼굴을 봐야 하는 건 찜찜했지만 친구들과 생일파티도 하고, 서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온 잡지도 주고받고, 이메일도 주고받고, 주말에는 모여서 쇼핑을 하러 가거나 운동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밖에서 노는걸 안 좋아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외향적인 친구들을 사귀기가 힘든데 나는 책 읽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친구들을 만나서 이렇게 노는 것도 좋아한다.


     그렇게 나머지 중학교 2학년 시절은 재밌게 보냈고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모두와 반이 갈라졌다. 그렇지만 참으로 얄궂게도 그 주동자 친구와 피해자인 나만 둘이 달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친구는 3학년 때도 친구들 무리에서 갈등을 일으켰는데 교우관계에 있어 무리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닌 나와는 다르게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주동자 친구와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다행히 다른 반이 되었다. 2학년 때는 문과와 이과로 나뉘면서 그 이후로는 반이 같아질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과도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또 이사를 가고 하며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 웃긴 건 나와 그 주동자 친구 둘만 성인이 돼서도 계속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는 거다. 게다가 얘네 집이 우리 집이랑 5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동네에서도 아주 가끔 마주치곤 했다.


     불과 1년 전쯤이었다.


   회사가 이전을 하면서 평소보다 버스를 타는 시간이 10분 정도 늦어지게 된 첫날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고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뭐랄까 그 걸음걸이랄까, 그 아이 특유의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분명 내가 아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버스에 탔는데, 역시나 그 애였다.


     이렇게 또 마주치는 것이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 그 아이를 미워했던 감정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친구들하고 잘 지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때의 일로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갑자기 무리에서 멀어진 다자키 쓰쿠루의 이야기를 읽으며 옛날 생각도 나고 감정이입이 더 잘 되었다. 같은 교실에서 원인을 알게 되어 해결한 나와는 달리 쓰쿠루는 그 사건으로부터 15년 이상이 흐른 뒤 한 명, 한 명씩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때 어떤 이유로 자신이 그 모임에서 내쳐진 것인지 진실을 알게 된다.


     나머지 친구들 네 명은 이름에 색깔을 의미하는 한자들이 들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혼자만 이름에 ‘색채’가 없었고 남다른 재주도 없었다고 느꼈던 다자키 쓰쿠루를 오히려 친구들은 나고야에 남은 자신들과는 달리-쓰쿠루를 제외한 4명은 여러 이유로 나고야에 남았다- 목표가 뚜렷해서 도쿄의 대학교에 진학한 쓰쿠루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쓰쿠루는 단지 자신의 이름에 ‘색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자 모임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 데다 그런 일까지 당하자 더 기가 죽었던 거 같다.


     그러니까 나도, 다 잊은 척하고 살고 있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기가 죽었고 분명 내상을 입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여전히 무리에는 잘 끼지 못하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누군가를 곁에 두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내 곁엔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때 그 일은 나의 잘못은 아니라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위로하면서 살아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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