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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18. 2020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떠오른 기억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부끄러움을 떠올리다

     단편소설집의 책 두께는 장편소설과 비슷하지만 단편소설집에선 장편소설의 장章이나 한 꼭지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장편소설과 달리 소설책 한 권에 수많은 인물들과 각 단편마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장편보다는 단편의 주제가 다양한 느낌이다. 세상의 많은 유행가와 책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은 꽤 흥미진진한 주제이지만 나는 꼭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간극이나 내가 느꼈던 어떤 기시감 같은 것들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로 단편소설이 그런 점들을 잘 포착한다고 생각한다. 또 장편소설을 읽기 위해선 장거리 달리기처럼 긴 호흡을 가지고 모든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책이 끝날 때까지 따라가야 하는데 반해 단편소설은 짧은 호흡으로도 하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읽을 수 있다. 처음엔 단편소설이 어색했지만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단편소설도 차차 즐겨 읽게 되었다. 이 글은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책 제목과 동일한 단편 '쇼코의 미소'를 읽고 마음속 한 구석에 묻어 두었던 기억을 꺼내보고자 적었다.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하게 나도 교류회라는 것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소설의 배경과 같은 일본 학교와의 교류회였다. 먼저 우리 학교 학생 3명이 일본에 방문해서 짝꿍 집에서 홈스테이도 해보고 짧게 여행을 하고, 한 달 뒤 다시 일본 학생들이 한국에 놀러 오는 형태였다. 일본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외국 친구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에 신청을 하게 된 나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상대방 학교는 일본 후쿠오카 소도시 지역에 소재한 중학교였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한참 차를 타고 달려 어느 소도시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짝꿍은 여자아이였고, 키도 체구도 작았다. 3박 4일의 일정 중 그 친구네 집에서는 하루를 잤던 것 같다. 나는 당시 일본어 초급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말 간단한 말 밖에 하지 못했고 그 친구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래도 나는 그 집에 가서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그 아이의 엄마, 아빠도 나에게 무척 잘해주셨고 그 아이는 나처럼 첫째였고 아래로 동생이 둘 있었다. 집에 불단이 있어서 신기했던 기억과 저녁으로 일본식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 나고 혼자 독방에서 편하게 잠도 잤다. 그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는 것 외에도 쇼핑센터에 가거나 다른 학생들을 만나는 등의 스케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일정 중간에 차를 타고 나와 같이 갔던 한국 친구들과 홈스테이를 하지 않았던 다른 일본 중학생들과 어딘가로 이동하는데 자꾸 어떤 남자애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잘 못하는 일본어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대충 해석해보니 나랑 홈스테이 짝꿍을 하는 친구가 전교에서 이지메를 당한다고 했나, 은따 같은걸 당하는 친구라면서, 왜 그런 애랑 노냐는 식의 말인 거 같았다. 사실 나는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내 짝꿍에 대해서 왜 나쁘게 말하느냐고 했었어야 됐는데 그 얘길 듣고 나니 그런 은따랑 어울리는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 원래는 다음 달에 일본 친구들이 한국에 올 때 홈스테이 했던 애들끼리 짝이 되어 다시 상대방의 집에서 재워줘야 되는데 나는 걔랑 짝을 하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그 아이가 발음이 안 좋아서 대화가 어려우니 다른 친구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결국 짝이 바뀌었다.


     한 달 뒤에 그 애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나는 그렇게 잘해줬던 그 친구에게는 거의 인사 정도만 하고 오히려 나를 재워주지도 않았던 다른 친구와 짝이 되어 말을 걸며 친하게 지내고, 밤엔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엄마는 내가 환대받았던 것처럼 일본에서 온 그 여자애에게 맛있는 밥을 챙겨주고 방을 내주고 신경을 써줬다. 그렇지만 그때의 어린 마음에도 미안하고 뭔가 찝찝하면서 내가 뭔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는 내 행동을 정당화해야 했으므로 그런 마음은 다시 마음속 깊이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재작년에 일본 나고야名古屋로 여행을 갔었다. 일본에서 일본어를 쓰며 혼자 여행을 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지금까지 일본어를 공부해오던 과정을 떠올렸다. 그러다 교류회 덕분에 처음으로 일본에 왔던 기억, 처음 만났던 그 친구 그리고 그때 그 친구에게 느꼈던 그 마음이 떠올랐다. 그때도 분명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갑자기 일본의 그 거리에서 그때의 기억이 나를 쫓아오듯이 파파파박 떠오르면서 아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그 친구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겠구나, 걔는 그 이후로 오히려 학교에서 더 왕따를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한국에서 일본으로는 3명이라는 적은 인원이 갔기 때문에 모두 다른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지만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학생들은 대략 10~20명이어서 모두 홈스테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홈스테이 해준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찜질방이나 단체로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도 자신은 단체로 숙박을 해야만 했다. 그 친구와 가족이 나에게 잘 베풀어줬고 그러면 나도 인간 대 인간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걔랑 계속 짝꿍을 하면 뒤에서 다른 애들이 나도 놀리겠지? 나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려나? 하고 나라도 거기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서 만든 변명이라는 게 걔가 발음이 안 좋아서 대화가 잘 안 통하니 짝을 바꿔 달라는 것이었던 거다. 치졸하다. 어차피 나는 일본어도 잘 못했으니 크게 대화가 안 통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 애는 그때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또 그 부모님도, 동생들도 얼마나 기분이 상했을까. 그리고 그 일로 학교에서도 더 무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에 왔을 때도 내가 말도 별로 안 걸어줬다. 모르는 사람인 척했다. 


     내가 여행하고 있던 나고야는 그 아이가 살고 있던 후쿠오카와는 한참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래도 같은 일본 하늘 아래라고 생각하니 감정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마음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놀랐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그저 길을 걷다 발을 멈춰 멍해졌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받았던 충격 그대로 행동했다면 그대로 길거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쥐어뜯고 바닥을 치며 이제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친구를 떠올리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를 외쳤을 것이다. (진짜 얄궂은 건, 이 친구 이름은 기억 못 하면서 우리 집에서 재워줬던 그 친구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의 은폐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그 아이의 외모와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학교에서 애들이 놀리고 무시한 거 같은데 나는 그 학교 학생도 아니었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걔는 내 짝꿍이었고 전혀 모르는 나에게 환대를 베풀었다. 나는 내 짝꿍에 대해 뭐라고 하지 말라고 했어야 했으며 당연히 한국에 왔을 때도 우리 집에서 자라고 베풀었어야 마땅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얘길 많이 들었던 나지만 결국 어른인 척만 했던 어린애에 불과했다. 나 스스로가 너무 못됐다는 생각이 들며 그 애는 지금 그때 살던 후쿠오카의 그 마을이든 혹은 다른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까,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지내는 것은 아닐까 하며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그때의 기억들이, 내 철없는 행동들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런 부끄러운 마음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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