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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pr 25. 2021

메타버스에 관한 책을 읽다 떠오른 아날로그 시절

과연 기술발전이 우리에게 좋기만 한 걸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에 대한 책을 찾다가 <메타버스(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저자 김상균)을 읽었다. 나는 문과형 인간이라 이과 용어, IT 관련 지식이 낮은 편이고 아이폰을 쓰고 있음에도 그냥 전화 기능과 카톡과 앱 몇 가지만 쓸 정도로 기계를 잘 사용하는 편은 아니다. 책을 읽다 보니 메타버스란 개념은 생활 속에 침투한 부분도 있어 어찌 보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가 중간중간 삽입해놓은 초 단편소설을 보면서 과연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무조건 좋기만 한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도 이제 마냥 어리지는 않은 나이다. 20대를 보며 자꾸 '젊은애들'이라 칭하게 된다. 뭘 해도 가능한 젊음이 부럽다. 그 자체로 생동감이 넘쳐 보여서 부럽다. 나도 내가 이렇게 나이가 먹을 줄은 몰랐다. 물론 나이는 '먹어가는'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든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거 같다. 그래서 젊은애들을 보면 이것저것 앞뒤 상황 따지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연애도 할 수 있고, 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당연힌 것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부럽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늬들은 아날로그 세대의 진짜 감성이 뭔지 모르지? 



     나는 운 좋게 내 나이 때의 특성상 어렸을 때는 아날로그 세대에 속해있다가 흑백 핸드폰부터 디지털 세대를 경험한 그야말로 양 쪽에 발을 다 담근 세대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삐삐가 공급되었으나 반에 삐삐가 있는 아이들은 굉장히 소수였다. 일명 잘 나가는 애들의 소유물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우리들은 친구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았고, 친구네 집으로 전화를 해서 친구와 직접 통화를 해야 했다. PC통신이 보급되고 광통신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하면서는 이메일을 주고받고 버디버디와 MSN 메신저 같은 메신저를 통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앞선 세대는 집에 전화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약속 장소에서 엇갈리기라도 하면 몇 시간을 그냥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은 카톡이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다. 아무 때나, 양질의 무료 영상통화를 할 수 있으니 미국에 있는 동생 하고도 크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집을 나서는 순간 전화나 다른 수단으로 실시간으로 연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속을 꼭 지켜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세대, 무언가를 하려면 꼭 시간을 들여서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너무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나 핸드폰에 노출되지 않는 게 좋다는 게 그런 이유 아닐까?


     하지만 기술 발전의 좋은 점도 너무 많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영어 외에 제2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여러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거 보면 어학 공부를 취미라고 볼 수 있다. 그때는 외국어 공부를 하려면 시중에 나와있는 교재로 독학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방법밖에 없었다. 독학을 하려면 종이 사전을 뒤적거리며 단어를 찾아야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흘렀을 때는 전자사전이 등장했는데 그야말로 신문물이었다. 전자사전은 고가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집에 하나밖에 없어서 동생과 서로 쓰겠다며 다투기도 했었다. 


     같은 집에서 25년을 살다 작년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짐을 정리하다 보니 옛날 물건이 참 많이 나왔다. 그중엔 언젠가부터 소문 없이 존재감을 감췄던, 오래되어 색까지 바랜 연둣빛깔의 일제 전자사전도 발견되었다. 그 뒤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더 발전해서 인터넷에서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검색하며 공부했다.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일본어 사전에 한자를 그리는 기능이 없어서 한자로 찾거나 어딘가에서 읽는 방법을 알아와야 검색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일본어든 중국어든 어설프게 한자를 그리기만 해도 다 인식이 된다.


     어디 사전뿐일까? 유튜브에는 각종 언어 공부자료가 넘쳐나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원어민이 올려놓은 자료들도 많다. 외국어 공부를 하려면 얼마든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몇 달씩 걸려서 종이 편지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펜팔 앱을 통해 몇 초만에 외국의 펜팔 친구도 만들고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모두가 다 외국어 천재가 되야겠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다. 아니지, 모두들 나에게 번역기 어플이 있는데 왜 굳이 외국어 공부를 힘드게 하느냐고 묻는다. 


     메타버스에 대한 책이 오히려 옛 향수를 자극한다. 옛날엔 GPS 추적이 되지 않으니까 내가 있는 위치를 살짝 다르게 말할 수도 있고, 연락이 제대로 않으면 약속이 엇갈리니 약속에 대한 정의와 기대감이 지금과 다르며 중요성 또한 엄청 차이가 난다. 엄마에게 전화 예절을 몇 번이나 물은 다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네 집에 전화를 했던 일도 기억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내 생일 전날 밤 12시가 되기 몇 분 전, 가장 먼저 생일을 축하해주겠다며 밤늦게 집 전화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친구와의 에피소드 또한 잊지 못하는 아니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일로 남게 되었다. 항상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지만 이 연결된 세상에서 정말로 '혼자'임을 느낄 때,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이 차가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힘이 되어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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