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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19. 2021

배우는 모든 언어로 해리포터 시리즈 읽어보기

나의 외국어 공부 이야기

      나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것에 대한 반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어 선택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상하게 다른 일은 실수할까 봐 소심하게 굴면서도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렇지 않다. ‘틀리면 어때? 우리말도 틀리는 판에 외국 사람이 말하면 당연히 틀릴 수 있는 거지’라는 자신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영어 카드를 갖고 놀던 내가 테이프 발음을 듣고 혀를 굴려가며 ‘R!' 발음을 하는 것을 듣고 엄마가 놀랐다. 엄마는 얘가 잘하는 게 이거구나 싶으셨는지 아니면 앞으로 영어가 정말 중요하게 될 것이란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1주일에 한번,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해서 교재를 가지고 1:1로 수업하는 튼튼 영어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마 미국에 살다 오신 듯했는데, 나는 푸근하고 친절한 선생님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 아침마다 모닝콜로 걸려오는 전화에 말도 안 되는 단어를 섞어가며 대답을 하곤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은 다 들어주시고 올바른 표현을 알려주셨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재 본문을 전부 외워서 줄줄 읊어대고 다녔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교재값이 많이 비싸졌는데 엄마는 차라리 그 돈이면 원어민 선생님이 가르치는 곳이 낫겠다 하여 나를 영어 학원에 등록시켰다. 요즘에야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학원이 흔하지만 당시엔 나름 혁신적이었고 그런 곳이 잘 없었기 때문에 수업료도 꽤 비쌌다. 원어민 선생님과 한국 선생님이 1시간씩 번갈아가며 교육하는 시스템이었고,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었다. 모든 수업 내용을 다 영어로 하니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흥미롭게 공부하게 되었다. 나는 원어민 학원에 다니면서 맞든 틀리든 '영어로 말하는 것'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떨치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독해나 문법적인 부분의 공부가 많이 부족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영어 정규과정은 중학교부터 시작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공부해 온 나에게 상대적으로 학교 수업은 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처럼 영어를 좋아하는 한 친구로부터 '외국어 고등학교'라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곳이야말로 내가 딱 원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통학시간이 길어지고 일반고에 비해 수업료가 조금 비싸더라도 꼭 외고에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보통 고등학교였던 외고가 내가 입학하기 1,2년 전부터 대학 입시를 위한 탄탄대로 코스로 꼽히게 되면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 덕에 그전까지는 학원을 싫어해서 다니지 않던 내가 일요일까지도 학원을 다니며 외고 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외고 입시는 영어는 물론이고 일반 교과목인 국어나 수학 등도 시험을 봤는데, 수학을 그다지 잘하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시험에 불합격했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면서 한국식으로 스파르타 영어 공부를 한덕에 영어 독해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때 공부한 걸로 고등학교 시절과 수능을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본어라는 새로운 외국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집에는 아빠가 보다 말던 일본어 교재가 몇 권 있었다. 마침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일본어 수업이 개설되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1학년 2학기 때 괜찮은 선생님을 만나 그 뒤로 1년 정도 방과 후 활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첫 시간에 수업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그 선생님 성함을 듣지 못했는데 그게 지금은 그렇게 아쉽다. 방학이 되자 선생님께선 집 전화번호까지 알려 주시면서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하라고 하셨는데, 평소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그런 걸 잘 안 하는 내가 몇 번 전화를 걸었던 기억도 있다. 성함을 모르는 나의 첫 번째 일본어 선생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중학교 시절, 방과 후 활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던 교재.
성함도 모른 채, 그저 일본어 선생님이라고 적어놓았던 중학교 시절의 다이어리.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외고 입시를 준비한다고 일본어 공부에 손을 놓고 잊어버리고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며 다시 공부에 불이 붙었다. 수능 공부 때문에 일본어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학교 일본어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주최한 교류회에 참가해서 일본 후쿠오카의 소도시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문제집을 풀며 독학을 했다. 남들 하는 것처럼 일본 드라마도 보고 노래도 듣고 영화도 봤다.

 

     나는 해리포터를 참 좋아했는데(지금도 좋아하긴 한다) 그 당시 출간되어 있던 4권까지 다 읽고 나니 5권이 나오기까지 텀이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영미권에서 5권이 출판됐는데 이게 한국어로 번역이 되려니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영어공부도 할 겸 미국판을 덜컥 샀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더듬거리며 책을 읽어 나갔다. 처음엔 한 페이지 읽어 내려가기도 힘들었지만 이름이나 주문 같은 것들을 다 알고 있었고 그래도 꾸준히 몇 날 며칠을 읽다 보니 슬슬 진도가 나갔다.


해리포터 시리즈 영문판(미국판) 1~7권. 1~4권은 페이퍼북*, 5~7권은 하드커버**.


해리포터 시리즈 본편 이외의 책들. 신비한 동물사전 1,2편과 저주받은 아이 연극 대본, 비들 이야기.


*페이퍼백paperpack : 소프트커버soft cover라고도 부르는데, 표지는 약간 두꺼운 종이고 내지는 얇거나 갱지 같이 질이 좋지 않은 종이로 되어있다. 대신 하드커버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좋다.
**하드커버hardcover : 양장본이라고 부르는데, 책 표지가 딱딱하고 내지의 질이 좋다. 보통 영미권에서는 하드커버로 책이 나온 뒤, 1년 이후에서야 페이퍼백 형태로 출간된다. 우리나라는 페이퍼백이란 개념이 희박해서 대부분의 책이 하드커버(표지는 딱딱하지 않지만)와 비슷한 형식으로 출판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5권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 영문판을 읽었다. 그렇게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나고 나니 더 이상 영어로 읽을 게 없었다. 조금 쉬운 영어 원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보니 해리포터 일본어판도 구입할 수 있었다. 몇 년에 걸쳐 모두 다 읽었다.


해리포터 시리즈 일본어판 1~7권과 저주받은 아이 연극 대본.






      나는 영어와 일본어 외에도 프랑스어와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프랑스어와 중국어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는데 도중에 여러 번 그만두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래도 두 언어 모두 지금은 기초는 뗀 상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폴리글랏Polyglot을 지향하는 사람인데, 폴리글랏이란 5개 국어 이상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다중언어구사자를 일컫는 말이라 한다. 현재는 한국어 포함하면 5개 언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능숙하지 않은 언어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어를 제외하면 4개 언어니까 추가로 다른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언어는 10년 정도 하면 아무리 못해도 승산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영어와 일본어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오면서, 앞으로 내가 배우는 모든 언어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보기를 목표를 정했다. 10년 후에는 꼭 프랑스어와 중국어로도 혹은 제3의 다른 언어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이해하며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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