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백 오피스 근무자의 고충 (하)

모든 직원과 신뢰가 깨졌다고 느낀 나. 계속 근무할 수 있을까?

by 세니seny

<백 오피스 근무자의 고충(중)>에서 이어집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낮이었다.


나는 다른 팀장님과 업무 관련 전화 통화를 하고 끊었다. 그리고 저녁에 야근을 하고 있는데 그분께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시냐고 했더니 낮에 통화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신다. 본인이 짜증 나는 일이 있어서 전화를 좀 불퉁거리며 받은 거 같다고 사과를 하셨다.


이 팀장님은 거의 우리 외삼촌 뻘로 나와 나이 차이가 거의 20년 가까이 난다. 전화를 받은 내가 오히려 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나는 낮에 그 분과의 통화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 하는 느낌을 살짝 받았던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나를 불쾌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분도 있는데 앞의 그 인간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 더 이상 상대하지 말자. 최대한 얽히지 말자.


그리고 솔직히 우리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 건의함에 있던 우리 팀에 대해 했던 말들은 얼마나 더 노골적인 비난의 표현들이 가득했을까.


익명이라 누군지 밝혀낼 순 없지만 분명 복도에서 웃고 인사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한 명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저질스런 표현을 사용해야만 자신의 짜증남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회사에 불만 없는 사람이 없을까?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고 그런 말들을 하는 걸까? 사람을 앞에 두고도 소리함에 썼던 말들을 그대로 똑같이 할 수 있을까?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정말 비겁하다.


한 사람의 말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소리함에 의견들이 많다고 했으니 그 말 한마디에서 회사 전반적으로 우리 팀에 대해 생각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뒤에서 얼마나 욕을 해댔을까? 사무실에 앉아있는 주제에 왜 사람을 또 뽑아? 그러면서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그러고 시스템은 바꿔서 불편해졌다고 욕을 했겠지. 그동안 우리 회사가 기준이 안 잡혀 있어서 편하게 일했던 건데 그건 모르고 있었나 보다.


나는 회사에 친한 사람이 없어 소식에 어둡고 (관심도 없지만) 잘 모른다. 누가 누구와 사이가 안 좋고, 누가 누구랑 어땠고 이런 건 잘 모른다. 차라리 모르기 때문에 회사 직원들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고 다들 밖에서 고생하고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부로 그런 생각은 다 싹 사라졌다. 나와 다른 직원들 사이의 신뢰관계는 깨졌다. 당장 다음 달에도 직원들 모여서 하는 교육이 있는데 정말 가기 싫다. 뒤에서는 얼마나 욕을 해대고 그 자리에 와서는 '어머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척하려나? 아니면 아예 끼워주지도 않으려나?




그리고 후일담.


재택근무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데 팀장님이 의견을 구한다며 메일을 한 통 보내신 게 눈에 띄었다. 메일에는 사진 파일이 달랑 하나 첨부되어 있었다. 열어봤더니 누군가 익명으로 건의함에 우리 팀에 대한 불만을 적은 것이었다. 팀장님은 이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어떤 답을 줬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고 의견을 달라고 하셨다.


한 페이지에 구구절절 우리 팀에 대한 불만과 본인이 왜 회계팀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일을 다시 가져가던지 아니면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직원을 뽑아달라는 내용, 결정을 해달라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조직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강 몇 명 정도로 추려진다. 혼자 단독으로 적었을 수도 있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동료들의 의견까지 담아 누군가 한 명이 대표로 제출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저번에 그 팀장님과 대화할 때와 똑같이 '이 사람이 정말 힘들구나'라고 이 사람에게 공감이 되기보다는 씁쓸한 마음과 분노가 일었다.


일을 진행하면서 우리 팀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절차 등을 변경하면서 그것의 배경과 의미에 대해 전달이 잘 되지 않았던 점일 것이다. 그런데 팀장님이 모든 걸 다 이해시킬 순 없다고 했다. 때로는 밀어붙이는 것도 있어야 된다고 했다.


회계팀 업무 특성상 통제는 필요한데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들어주고 이해해 주면서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직접 와서 물어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답 안 해줄 우리도 아니니까.


본인 선에서 해결될 것 같은 문제가 아니라면 정식대로 본인의 팀장님을 통해 우리 팀장님을 호출해 팀장들 선에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익명으로 건의함에 자신의 화를 담아 제출했다. (물론 본인 팀장한테 이야기했는데 묵살당했을 수도 있으니 못난 팀장을 만났을 수도 있으려니 하며 불쌍하게 여긴다고 해도.)


통화 후 느꼈던 공포감이 현실이 되었다. 이런 투고를 할만한 직원이 누군지 대충은 추려지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알아낼 수 없다. 나는 그 투고를 할만한 몇 명의 대상들과 일을 하며 마주치는 사이이다. 본인이 짜증 나고 힘든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런 말들을 보고 나니 사람들과 일하는데 협조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이걸 투고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모든 사람을 다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신뢰가
깨져버린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자신의 화와 짜증만 다 표현하고 건의함에 의견을 넣어 일을 밀어내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이후에 불어닥칠 후폭풍은 생각지도 않았을까? 만약 본인이나 본인의 팀과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투고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기분이 나쁘지 않겠는가?


예민하고 내향적이고 생각 많은 나라서 남들보다 생각의 영역이 확장되어 더 공포와 두려움을 본 것일 수도 있다. 뒤에선 건의함에 익명으로 불만을 이야기할 정도로 화가 쌓였으면서 앞에선 인사하고 말 걸고 도움을 요청하는 가증스러운 사람(들)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속으로는 그 의견 낸 사람은 내가 누군지 못 찾아내겠지? 하며 얼마나 고소해할까?


나는 이전부터 계속 회계일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해 오긴 했었다. 사실 아직도 못 찾았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사람들하고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는 강하게 든다. 당장 이직은 어렵겠지. 그렇지만 이걸 계기로 삼아 내면을 더 단단히 하고 빨리 이곳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