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으로 우리 팀에 대한 비난과 험담을 마주했을 때
<백 오피스 근무자의 고충(상)>에서 이어집니다.
처음엔 다른 건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이미 여기서부터 공격적인 태도였다. 왜 우리 팀에서 룰을 바꿔놓고 지키지 않느냐며 거의 화를 내기 직전이었다(고 나는 느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처리 방법을 변경하는 것은 A-Z까지 중 A에 해당하는 것만 바꾸겠다고 전달했는데 룰을 바꾸는 건 A-Z를 다 바꾸는 거지 왜 우리 마음대로 룰을 적용하냐며 따졌다. 그러더니 그 부분은 팀장님이 지시하신 부분이었으므로 팀장님과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끝난 줄 알았지만 어제 보낸 메일에는 왜 답이 없냐고 따져 묻기 시작한다. 그것도 팀장님이 답변하실 테니 팀장님과 통화하시라고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게 싫었다. 자기가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고 겨우겨우 마지막 단계까지 다 마쳤는데 내가 그렇게 자료를 요구해서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걸 (아마)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럼 내가 ‘우쭈쭈~ 아이고 그러셨어요~ 많이 힘드셨어요~’라고 하며 달래줬어야 했을까?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고생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말투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한테는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나에게 어필한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즉 전혀 어필이 되지 않았다는 것.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터무니없이 자료를 요구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죽도록 힘든 일이었으면 나한테 다시 얘기를 해서 많이 곤란한데 OO 씨(나)랑 팀장님이 얘기해서 내부적으로 처리할 방법은 없느냐, 좀 부탁한다고 부드럽게 말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면서 내가 대꾸를 안 해주니 혼자 더 악에 받쳤는지 씩씩대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태까지 그 프로젝트하면서
오갔던 메일, 자료 다 보내줄 테니
그거나 한번 봐봐요.
내가 찾아서 다 보낼 테니까!
말리지 않으면 진짜로 메일함을 뒤져 보낼 기세였다. 나는 아까부터 어이가 없었는데 이 말을 듣고 학을 뗐다. 내가 힘든 거 몰라서 그런 자료를 요청했을까? 너무 유치했다.
내가 추가 자료를 요청한 것에 대해 오기를 품고 ‘그래,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두고 보자’란 마음으로 자료를 가져와서는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자, 그래, 네가 요구한 거 가져왔다. 그럼 네가 나한테 뭐해줄 건데? 내가 이거 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랬다. 그런 거 있잖아, 흔한 부부싸움 풍경. 퇴근한 남자가 집에 들어와서는 부인에게 '내가 밖에서 얼마나 힘든데 말이야, 어, 네가 그딴 걸 부탁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하면서 엄마 앞에서 패악 부리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반말을 하며 다음 말로 연타를 쳤다. ‘그리고 회계팀은 이번에 인원 충원했죠? 우리 팀이 너네보다 인원 더 적어. 그런데도 밖에 나가서 영업하고 영업뿐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저것들도 다 하고 있다고!!!’ 그 말을 직접 들으니 좀 충격이었다. 아마 노사위원회에서 직접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놀라고 기분 나빴던 게 바로 이런 이유였나 보다.
우리 팀이 그쪽 팀보다 인원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따지고 화를 낼까? 인원이 적어서 힘들면 대표이사한테 따져서 인원을 늘려야지. 그런데 만약 대표가 말을 안 들어줘서 자기가 정 힘들면 퇴사를 해서 회사를 차리던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는 거 아닐까? 왜 그 화풀이를 나한테 하지?
회사에서 내가 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면 내 대답이나 전화의 분위기가 이상한 걸 감지한 팀장님이나 다른 동료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거나 해서 상황이 중지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이렇다는 걸, 이런 모욕을 듣고 있다는 걸 알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인원이 늘었으니 일이 줄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일이 아주 조금 줄기는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생각만큼 신입사원에게 일을 주지 못했다. 신입사원은 자기 옆 자리에 앉은 내 동료와의 업무 연관성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그쪽 일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다른 팀 백 오피스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하는데 우리 팀만 맨날 야근하면서 그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해야 하나?
여기서 내가 이성을 잃고 쌍욕을 하면서 싸웠을 수도 있다. 사실 '아이 XX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대답할 뻔했지만 그래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화내고 얼마든지 욕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흘러나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일단 전화를 끊어서 이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 제일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말은 못 하자니 속에서 울컥했고 눈물이 꽉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화를 빨리 끊게 만들어야 했으니 계속 별 대꾸하지 않고 팀장님과 이야기하시라고 하며 전화를 겨우 끊었다. 그렇게 40분을 그 사람 전화에 ‘시달렸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연예인들이 왜 사람 많은 장소에 가면 다 자기만 쳐다보는 거 같고 자기를 욕하는 거 같다고 하는데 갑자기 그 기분이 뭔지 알 거 같았다.
회사에 가면, 누군가와 마주치고 인사를 하면, 이야기를 나누면 혹은 그 사람들이 나를 멀리서 봤을 때 ‘어머, 회계팀 사람 지나가네. 쟤네 진짜 짜증 나지 않냐? 우리는 사람 뽑아달라고 하는데 안 뽑아주고 게다가 인원도 늘렸으면서 맨날 뭐 안 된다고 하고 어쩌고 저쩌고...’
물론 없는 자리에선 누구든 욕 안 하겠느냐만 그런 말을 면전에서 듣고 나니 이런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회사에 다시 출근했을 때 다른 직원들을 보기가 매우 껄끄러워지면서 분명 속으로 우리 팀이나 내 욕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며 무서워졌다.
우리 팀 빼고 모든 직원들이 다 우리 팀을 험담하고 있을 것이란 공포를 느꼈다. 이런 걸로 욕먹는 게 맞는 건가? 이럴 거면 차라리 사람 안 뽑고 그냥 나랑 동료랑 둘이 서로 힘들다고 욕하고 징징대면서 새로운 일 벌이지 않고 그저 하던 일이나 흘러가도록 둘 걸 그랬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 전화 온 팀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전부터 그 분과 나의 사이가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일을 하다 보면 안 부딪칠 수도 없는 사이였다. 나에게도 답답한 점이 있을 테지만 그분도 본인의 말투나 이런 건 자기 스타일이니 상대방 보고 이해하라고 한다.
사람은 안 바뀌잖아? 그럼 적응해야겠지. 그리고 사람을 한 번 미워하기 시작하면 계속 미운 점만 보여서 싫어진다. 특히 회사 사람 같은 경우는 그러면 일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단점은 배제하고 장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회사는 일하려고 온 곳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도 일하러 온 곳이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일하러 온 사람들이고 우리는 ‘일’이 목적이니까 ‘일’이 되도록 하는 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감정을 불러와서 일하는데 서로 불편하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의 통화로 굳이 그럴 필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도 장점이 분명 있지만 단점이 너무 명확해서 그 단점이 장점을 가려버렸다.
사람 간의 선이 있는데
그 사람은 그 선을 넘었다.
자기가 일이 많고 자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라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도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고작 그런 방법으로(아주 조금 과장하자면 협박당하는 느낌... 도 들었다) 밖에 자신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거기까지인 거다. 내가 더 좋게 보려고 했는데 딱 거기까지인 거다. 그거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던 거다.
<백 오피스 근무자의 고충(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