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이라고 해서 사무실에서 마냥 팽팽 놀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2020년 시점에 작성한 글입니다.)
나는 회계팀 소속으로,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우리 팀은 팀장 격 인원 1명에 팀원이 2명인 체제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회사는 이제 생긴 지 10년 정도 되어 기본적인 제도는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지만 아직도 변화하는 중인 곳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일'의 특성은 '증가'가 아닐까 한다. 분명 원래 하던 일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것도, 저것도 확인해야 하면서 일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작년에 새로운 팀장님이 입사하고 본인이 실무에서는 한 발 물러서면서 동시에 이런저런 일들을 추진하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전에는 3명으로도 팀이 그럭저럭 돌아갔던 건 팀장 직급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여전히 실무적인 일들-경비 정산 등-을 나눠서 해주고 있었으며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고 기존에 하던 일만 겨우겨우 기한에 맞춰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 오신 분은 업무 욕심도 많았고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있었다. 그래서 인원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리 팀도 전부터 사람을 추가로 뽑자고 말은 나왔었지만 백 오피스의 인원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의 모든 부서들은 항상 인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그런 경우엔 백 오피스보단 영업 부서라던가 혹은 영업 부서와 관계되는 부서의 인원을 먼저 충원해 주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회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이익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업과 그에 관련된 부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따라 백 오피스의 인원 충원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게 된다. 퇴사한 사람의 자리를 채우는 것-replacement-을 뽑는 건 가능해도 T/O를 늘리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새로 온 팀장님의 강한 의지와 법인 설립 때부터 작년까지 대표로 근무하고 퇴임하신 대표이사님께서 그동안 우리 팀의 고생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 추가 채용 승인을 해주셔서 채용 절차가 진행되었다. 어차피 내년부터는 본인이 대표이사가 아니라 책임이 없으니 특별히 아량을 베푸신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연말에 채용을 진행했고 신입사원이 1월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직원이 팀 내에 있던 적은 있었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도 않았거니와 직속 후배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대등한 동료사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나이 차도 좀 있고 다른 회사에서 갓 1년 정도 일해본 경험이 있는 신입사원으로 나와 내 동료의 후배로 생각하고 뽑았다.
신입사원은 내 업무보다는 다른 동료의 업무를 주로 많이 받게 되어 둘은 서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아무래도 동료가 후배 사원을 많이 봐주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뽑았으니 계획했던 새로운 일들을 시작해야 했다.
전 직원의 법인카드를 포인트가 좀 더 많이 쌓이는 카드로 변경했고, 그동안 법인 통장에서 결제되던 개인 법인카드의 결제계좌를 직원의 개인 계좌로 변경했으며 그동안 당연히 했어야 했는데 환급받지 않고 있던 부가세 환급을 위한 계정 생성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경비 정산이 복잡해졌다.
또한 비용 통제 및 예산 관리를 위해 그동안 ERP에 메뉴로만 존재하던 예산 시스템을 실제로 도입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많은 불편이 있었고 동시에 그것들을 대응해 주는 우리 팀도 힘들었다.
그나마 아직 나와 관련된 것은 없어 직접 항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동료와 신입사원이 통화하는 것을 들어보거나 사람들이 자리에 와서 물어보는 것 등을 봤을 때 직원들의 불만도 많고 힘들겠다란 생각을 했다.
백 오피스의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다.
일을 아주 조금만 못하거나 비어 보이면 사무실에 편하게 앉아서 뭐 하느냐고 욕을 먹는다. 그런데다 우리 팀은 보통 회계팀에서 1년에 한두 개나 시도할 법한 것들을 상반기에 여러 개 진행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업무 프로세스가 변경되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내가 세 번째 다닌 회사인데 그동안 내가 다닌 곳 중에 업력이 가장 짧다. 그래서 기본적인 것들인데도 제도화되지 않은 것들이 있으며 또 다닌 곳 중에 조직 규모가 작은 편이라 변화에 대응하기 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보통 큰 프로젝트는 1년에 한두 개 진행할까 말까 한데 그만큼 짧은 기간 안에 많은 프로젝트를 하며 많은 것들을 바꿔본 경험은 나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올해 대표이사님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건의함의 신설이었다. 고객의 소리함 같은 느낌의 상자에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말하고 싶은 바가 있으면 익명으로 투고할 수 있는 제도다. 그리고 그 상자는 분기마다 한 번씩 있는 노사위원회에서 개봉된다. 이번 분기 노사위원회가 있기 전에 우리 팀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접수되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다.
그런데 나중에 회의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건설적인 비평이라기 보단 노골적인 비난과 일방적인 험담 이어서 기분이 많이 나빴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회의 참석자들의 입을 통해 한 번 걸러져서 들었기 때문인지 며칠이 지나니 그런 기분은 서서히 잊혔다.
평소에도 무슨 일만 있으면 나랑 잘 부딪히는 다른 팀 팀장이 있다. 그분은 본인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거의 듣지 않는다. (본인이 틀렸을 수도 있는데) 물론 내가 설명이 부족했거나 설득력이 떨어져서 일수도 있지만 팀장이라면 그런 것까지도 이끌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대화를 하고 나면 항상 찜찜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사람을 미워하면 일하는데 내가 힘들고 분명 장점은 있으므로 단점으로 치부되는 것들은 장점으로 덮어서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자료를 하나 요청했다. 업무 처리는 진행했지만 나중에 감사 때나 추가로 자료 요청을 받을 수도 있으니 거래처한테 이러이러한 자료를 좀 받아주십사 했다. 그전부터 그 자료를 받기 어렵다는 뉘앙스를 계속 흘리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번 케이스는 이전에 처리하던 것들과 조금 달랐다. 그래서 메일로 이러이러하니 좀 해주셨으면 한다,라고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메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전화가 오더니 마구 따지기 시작했다.
항상 그분은 그게 본인의 말투고 스타일이니 나보고 기분 나빠하지 말라하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이러이러해서 이전 케이스들과는 다르니 좀 받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구구절절한 설명과 이런저런 첨부파일이 포함된 메일이 왔다. 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본인이 회신하거나 전화를 할 테니 나보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전화가 왔다.
<백 오피스 근무자의 고충 (중)>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