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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l 24. 2022

서울탐방 제1탄 : 이태원을 걸어보다

2022년 3월의 기록

     이제 지금 집 계약기간 만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 참 빨라? 사실 이사 와서 코로나 때문에(핑계 같지만) 많은걸 하진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했다. 그동안 난 특별히 집순이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사를 와서는 집 안에 거의 박혀있었다. 혼자 살아서 좋았던 점은 가족들과 같이 부대끼며 살 때의 스트레스가 적었다는 것. 또 가끔 재택근무를 했는데 아무래도 재택근무하는데 집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신경 쓰이는데 혼자 사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제 그 강도가 약해졌다. 이제 나에게 남은 이곳에서의 1년, 지금의 우리 동네를 잘 즐겨보기로 했다. 3월 초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를 하러 동사무소(요즘은 주민센터라고 부르나?)도 갈 겸 조금 멀긴 해도 걸어서도 놀러 갈 수 있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걸어갈 수도 있지만 집에 올 때 걸어오기로 하고, 갈 때는 버스를 탔다. 이 길을 그동안 버스를 타고 지나가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동네'라는 인식이 생기니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지나갈까 말까 한, 그래서 앞으로 내가 여기를 '나의 동네'라고 인식할 일은 전혀 없겠군, 생각만 하며 지나가던 곳 근처에서 진짜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태원도 코로나의 기운을 피해가지는 못했는지 여러 군데가 공사 중이거나 임대 표지가 걸려있었다. 금방 버스에서 내렸다. 


     사전 투표를 하러 작년 5월에 이사를 와서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들렀던 주민센터 건물에 도착했다. 지방선거와 달리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여서 그런지 사전 투표 열기가 뜨거웠다. 투표를 마치고 골목골목을 걸어 미리 찾아봐둔 카레집에 들어갔다. 3월이라고 해도 아직은 날이 아직 쌀쌀해서 그런지 뜨끈한 수프 카레가 먹고 싶었다. 홍대에서도 몇 번 먹어봤었는데 이상하게 십 년 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던 그 맛은 안 나는 거 같다.


스프카레 @ 이태원 (2022.03)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나오니 좀 걷고 싶어졌다. 이태원 골목길을 걸어 한강진역 블루스퀘어에 있는 북카페 <북카페라운지>에 가보기로 했다. 요새 나는 북카페를 꽤 선호하는 편인데, 이유는 조용하기 때문이다. 소음이 아예 너무 없어도 이상하지만 일반 카페는 사람들 목소리에 볼륨 제한이 없기 때문에 사실 좀 시끄럽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혼자서 카페를 찾는 경우가 많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적당한 곳이 좋다. 사실 음악만 흐르면 더 좋겠지만.


     그나마 북카페라고 이름 붙여진 곳은 사람들이 대화를 조용하게 나눈다. 그리고 혼자 와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고 둘이 와서도 책을 보거나 조용히 하는 편이다. 나는 그 평화로움이 좋다. 아무래도 귀만 쓸데없이 더 예민해져서 그런 거 같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니 그 방향을 향해서, 골목길을 걷기 시작한다. 


     새 건물도 있고, 오래된 가게들처럼 보이는 곳들도 많다. 내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프랑스어 단어를 활용한 간판들이나 브랜드명이 눈에 많이 띄었다. 확실히 프랑스어는 뭔가 있어 보이는 ‘있어빌리티’ 언어인 것만은 확실하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간판들 @ 이태원 (2022.03)


이태원 거리를 걸으며 본 풍경들 @ 이태원로 (2022.03)


      한참을 걸어 한강진역 블루스퀘어에 도착했다.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이 건물에 있는 북카페에 들르기 위해서다. 예전에 공연을 보러 몇 번 온 기억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북카페 같은 건 없었던 거 같은데 내가 이곳을 참 오랜만에 온 모양이다.


북카페 <북카페라운지> @ 블루스퀘어 (2022.03)


     입구에서 입장료를 결제하면 음료수 한 잔을 주문할 수 있다. 나는 차를 한 잔 시켜놓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공연이(아마도 없는?) 평일 오후라 그런지 아주 조용해서 좋았다. 내부는 널찍널찍했고 책장도 많이 있었고 책들도 많이 꽂아져 있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되는 책이 있어서 집에서  책을 가져왔는데 서가에서도 마음에 드는 책들을 많이 발견해서 좋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음악이 아예 없어서 도서관 같은 적막이 흐른다는 것과 명색이 북카페인데 책을 올려놓고 읽을 만한 적당한 높이의 테이블이 있는 자리가 많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일반 카페 같이 낮은 테이블들이 대부분이라 노트북을 두고 작업하거나 책을 읽기에는 좀 불편해 보였고 실제로도 좀 불편했다. 대신 아예 도서관 같이 노트북이나 책을 놓고 작업할 수 있는 좌석이 몇 개 있기는 했다.


      책을 손에 들고 읽느라 힘들었지만 읽을 책이 많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넓은 통창 밖으로는 회색빛의 흐린 날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책을 보다가 창 쪽을 바라보면 흐린 회색빛의 겨울 끝무렵의 하늘과 세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보였다. 서울 시내 한복판이지만 고요한 이곳에서 마치 폭풍의 언덕을 보는 느낌이랄까.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태원 근방이 나의 동네가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그럼 1년 뒤, 나의 새로운 동네는 과연 어디가 될까? 여전히 이 근처에 살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될까? 이번엔 내가 직접 내가 살 동네를 선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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