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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ug 27. 2022

서울탐방 제2탄 : 평일 오후, 이촌한강공원 소풍

2022년 4월의 기록

     어느새 3월이 지나고, 바람이 확연히 따스함을 머금고 있는 4월이 되었다. 이번엔 출근길에 육교를 건널 때마다 저 멀리 보이는 이태원의 모스크를 보러 가볼까 했다. 남산도서관에서 소월길을 쭉 따라 걸어 내려와서 하얏트호텔 앞에서 경리단길로 빠져서 녹사평역까지 걸은 후, 거기서 모스크 보고 집으로 돌아와야지, 라는 코스를 짰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억지로 짠 코스에 나를 밀어 넣는 느낌.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이태원이 있으니까 꼭 이태원을 걷고 탐방해야 된다고만 속으로 단정 짓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한 달에 한 번, 이런 식으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용산구나 아니면 넓게는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갈 수 있는 곳을 가 보자는 결론을 냈다.



 그러다 생각났다.
한강에 가보자.



     집에서 좀 걸어가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나는 여태 걸어서 한강에 갈 수 있을 만큼 한강 근처에 가까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한강의 지류인 안양천이나 양재천 근처에 살았던 게 전부였다. 한강의 지류가 아닌 본류를, 걸어가서 볼 수 있는 것도 여기서 사는 남은 1년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즐거워졌다. 마치 장기 외국여행을 앞둔 여행자처럼. 설렌다. 마침 요즘 날씨도 좋다. 그리고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사월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매년 4월 1일에는 꼭 브로콜리 너마저의 잔인한 사월을 듣지만 이상하게 올해는 그 노래가 떠오르지 않아서 아직 한 번도 듣지 않았다.


     곧 내가 좋아하는 유월이 올 테니 그동안 나루의 'June Song'을 실컷 들어야겠다. 나의 연력이 끝나는 유월이 이제 고작 2개월 정도 남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내일의 짧은 소풍에 뭘 가져갈지 생각해보자.



바닥에 깔 담요를 챙겨야지.
약간의 간식과 마실 거리도.


책도,
아이패드도,
핸드폰 충전기도,
블루투스 스피커도 챙기고
음식을 좀 사갈까?



     혼자 나가도 짐은 많다. 예쁘게 입고 나가야지. 자전거는 본가에 있어서 아쉽지만 따릉이를 타고 이촌한강공원에 가야겠다. 유럽 여행할 때 가봤던 대도시에서는 자전거를 몇 번 타봤는데 여태까지 정작 따릉이는 타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은 나의 집이고 집엔 우리 가족의 자전거가 있기 때문에 굳이 따릉이를 빌려 탈 필요가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한강의 지류 근처에서만 살았었다. 안양천 근처에서 25년을, 양재천 근처에서  1. 그래서 항상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가려면 페달을 한참 밟아야만 했다.


     나에게 한강은 그런 곳이었다. 쉽게 가질  없는 .  페달을 밟아서 가아만 도달할  있는 . 정신승리 같기도 하지만 쉽게 가질  없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했다. 이상향 같은 느낌. 그래도 이상향은 절대 도달할  없는 곳이지만 이건 노력하면  수는 있으니 그나마 나을지도.


      안양천 근처에 살 땐 집에서 한강까지 약 5km 정도여서 넉넉잡고 30분가량 설렁설렁 페달을 밟아도 한강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양천에서 살다 25년 만에 이사 온 양재천 근처의 집에서는 양재천을 따라 한강 합수부까지 가려면 약 10km를 나가야 해서 도저히 자전거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 가보질 못했고 그 사이에 독립을 해서 이사를 해버렸다.


     이사 온 집엔 한강의 지류는 없지만 20분 정도 걸어가면 한강이 나오긴 한다. 그래서 한강과의 접근성은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걸어가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사온지 1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나가보질 않았다.


     오늘은 평일인 수요일 휴가다. 나의 업무 특성상 비교적 일이 한가로운(일이 없다기 보단 due date이 정해진 업무가 많지 않은) 둘째 주, 셋째 주에는 꼭 수요일에 휴가를 내서 자체적으로 주 35시간제를 실행하려고 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3,4월 두 달 정도 해봤는데 꽤 만족스럽다.


     날씨 좋은 4월의 봄날,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던 서울시 공식 공유 자전거 서비스인 자전거 '따릉이'를 오늘 처음으로 이용해볼까 한다. 따릉이 대여소가 다행히 한강 진출입로 지하차도 입구 근처에 있었다.


     오늘의 작은 소풍을 위해 짐을 싼다. 책 두 권과 셀카봉, 보조배터리, 약간의 간식, 물, 돗자리 대용으로 쓸 식탁보(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려고 샀던 식탁보인데 이제 겨울이 지나서 일단 걷었다. 그런데 피크닉 할 때 매트로 써도 된다고 상품 소개에 쓰여있길래 챙겨보았다), 선글라스와 또 뭘 챙겼더라... 휴지랑 작은 지갑 정도.


     짐의 부피가 꽤 된다. 아니, 꽤 무겁다. 짐을 들고 집을 나선다. 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분다. 평일 오후에만 느낄 수 있는 여유. 그런데 평일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면서 돈을 버는 걸까? 나같이 휴가 내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아님 주말에 일해서 평일에 쉬는 사람들? 아님 평일이든 주말이든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보일까? 오전만 일하고 오후엔 시간이 있는 직업이었으면 좋겠다.


    짐을 한쪽 어깨에 들쳐 메고 또 나머지 한 손에 들고 한참을 걸어 따릉이 대여소에 도착했다. 미리 다운로드하여놓은 앱을 켜서 이용권 구매 후 따릉이를 대여한다. 자전거를 끌고 지하보도로 내려가서 한강의 자전거 도로로 합류한다.



한강의 자전거 도로 (2022.04)
한강의 자전거도로 (2022.04)


     그동안 한강 지류에서 자전거를 탔던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자전거 도로가 큰 대교들 교각 밑에 있어서 그런지 가는 길마다 그늘이 져있다. 회색빛의 커다란, 나를 집어삼킬 듯한 다리의 교각들, 한강 건너편에 주욱 늘어서 있는 건물과 아파트. 그리고 오른편에는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연둣빛의 풀들, 나무들이 펼쳐져 있었다.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에 돗자리와 가방과 입고  겉옷을 올려놓고 달릴 준비를 한다. 고프로있으면  풍경을 찍어놓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찍는 풍경. 자전거길이 익숙한 안양천에서는  손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휴대폰으로 슬쩍슬쩍 촬영도 했지만 여긴 초행길이니까 조심하기로 한다. 익숙한  자전거도 아니고 하물며   만에 타는 라이딩이니까.


     바람이 좀 불어서 자전거가 앞으로 잘 안 나가는 건지 아님 거의 근 1년 만에 자전거를 타서 자전거를 탈 때 쓰는 근육들이 힘을 잃은 건지 10분 정도밖에 안 탔는데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촌한강공원까지는 약 4km 정도의 거리로 20분이면 가는 곳인데 초반부터 헥헥대고 있다.


     다시 힘을 내서 타다 보니 바람도  멈춘  같고 관성이 붙어서 그런지 앞으로 쭉쭉 나간다. 그리고 이촌한강공원 도착.


     일단 자전거부터 반납해야 해서 이촌 나들목을 통해 한강변 근처에 있는 아파트 앞에 있는 대여소에 가서 자전거를 반납한다. 이촌한강공원 내에서는 따릉이 반납하는 공간이 없어서 그렇다. 다시 빌리려면 여기까지 걸어와야 해서 이따 집에   그냥 버스 타고 가기로 했다. 다음에는 소풍 아니고 그냥 오면 2시간권 끊어서 빌린 데서 반납해야겠다.


     힘겹게 자전거 반납을 마치고 어디에 매트를 펼지 상상하며 한강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이촌한강공원에 처음  것은 아니다. 아마도  10 전쯤(?) 여의도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친구들과 이곳에  기억이 있었다. 여의도보다 사람이 적을  알고  거였지만 그게 그거였다. 한강 남쪽이든 북쪽이든 사람이 많긴 매한가지였는데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때 같이 왔던 친구들   명과는 이제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친구들  유일하게 나와 음악 취향이 맞는 편이었지만  외에는 정말  맞았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자꾸 친구들과 월급을 비교하려 들거나 남자 친구가 있을  연락을  끊어버리는 스타일이라  이상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인데 그녀는 이미 10 전쯤 또래에 비해 비교적 일찍 결혼을 했다. 그녀와는 중학교  친구로, 고등학교부터 다른 학교를 다니고 생활 반경이 달라지다 보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친구는 결혼한   되었지만 카카오톡에 아이 사진이 올라오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보니 호랑이띠 자녀를 한여름에 낳는다고 써져 있었다. 아이를 가지려다가  안돼서 늦게라도 아이를 만나게  건지 아니면 계획적으로 임신을 느지막이 한건진 모르겠지만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라고 해도 연락을 해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녀와 같은 띠가 되는 기분은 어떤 건지 괜히 묻고 싶었다.


     왜냐면 나와 친구가 모두 호랑이띠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만난 남자 친구와 오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니 이미 어떤 친구들과도 보낸 시간보다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길다. 대학 입학 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이 거의 17 정도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해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돈으로   없는 일이기에 부럽고 질투도 난다.


      아까 자전거 타고 왔던 쪽으로 올라가다가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엔 완전히 나무 그늘 밑에 매트가  들어가도록 깔았더니 바람 때문에 추워져서 나무 그늘이 벗어나는 경계에 매태를 깔아서 햇빛도  쑀다.


     오늘은 책을 두권 가지고 와서 읽기로 했다. 먼저 시인 페르난도 페소와의 시집과 지난번에 북유럽 관련  재미있게 읽었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작가 마이클 부스의 인도요리 탐방을 빙자한 일종의 여행기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까지  권이다.


봄날의 피크닉 풍경 @ 이촌한강공원 (2022.04)


     요즘 시라는 장르에 관심이 간다. 소설이나 산문 같은,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호흡의  말고. 내가 짤막 짤막하게  문장들을 모으면 시가 되는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면서.


     시는 어렵지만 처음부터 어떻게  이해하겠어. 그중에  문장이라도 건지면 되는  아니겠어? (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시집엔 포르투갈어 원문이 왼편에 실려있었다. 재즈 때문에 언젠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은데 이렇게 시집에 나와있는  보니  배우고 싶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책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는 깔깔대면서 읽었다. 요리 전문 기자(?)인 작가의 특성답게 인도 요리에 대한 것도 나오지만 여행기에도 가까운 글로 요즘 여행 가고 싶은 나의 욕구를 대리 만족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저자 소개란에 현재 한국, 일본, 중국 음식을 비교하는 책을 쓰고 있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한국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해서 반가웠고 어떤 책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한참 책을 읽고 더 읽고 싶었지만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쪼개서 음악도 좀 듣기로 했다. 원래 집에 놀고 있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가려 했으나 사용한 지가 오래돼서 그런지 핸드폰이랑 연동이 안 되길래 그냥 두고 왔다. 대신 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폰을 들고 와서 스피커처럼 음악을 크게 틀어두었다. 주위에 사람도 없어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혼자 들썩거리며 내적 댄스를 추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홈, 마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자. 아까 자전거를 반납한 쪽 버스정류장 말고 반대로 동작대교 쪽으로 한 1km 정도 더 걸어가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촌한강공원의 풍경 (2022.04)


     오른편으로 길게 트리밍 해놓은 나무들이 보이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한참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저 멀리 서울타워가 보인다. 용산구라 함은 어디서든 서울타워가 보이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4월의 서울탐방을 마쳤다. 집에서 한강이 바로 보이는 곳에 살고 싶은데 그 소망은 언젠가 이룰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걸어서라도 한강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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