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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14. 2022

혼자 사는 집에 친구 초대하기 (중)

첫 집들이, 첫날의 이야기

'혼자 사는 집에 친구 초대하기(상)'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lifewanderer/272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한 대망의 d-day인 금요일, 출근해서 점심도 안 먹고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와인을 팔길래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와인을 사기로 했다. 그래서 막상 편의점에 갔지만 나는 와인알못인데다 어디서 본거 같은 와인도 편의점이라 그런지 비싸게 파는 거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친구가 온다는 일정에 쫓겨서 잘 모르는데 급하게 사지 말고 대신 다음에 천천히 먹어보기로 했다. 대신 아이스크림과 맥주 몇 캔만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 후다닥 점심을 먹고 치우고는 친구에게 언제쯤 출발할 거냐고 연락했더니 친구도 쓰레기를 버리고 이제 곧 출발한다고 했다. 한 시간 좀 넘게 걸릴 거리이니 나는 그동안 내가 먹은걸 치우고 어제 못한 방바닥 청소를 할 참이었다. 그렇게 청소를 하고 났더니 그새 땀이 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친구한테 전화를 해보니 이제 거의 다 왔으며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도착했다고 해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친구가 탄 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친구는 나보다 늦게 운전을 시작했는데 능숙하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오자마자 선물이라면서 나한테 쇼핑백 가방을 건네주었고 같이 집으로 올라왔다.


     미리 에어컨을 켜 뒀다. 물 한잔 먹으면서 식탁에 앉아 수다 시작. 그런데 왠지 내가 술을 준비했을 거 같다면서 꺼낸 말.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실은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완전 서프라이즈. 이제 4개월 차라 초기는 벗어났다고 했다. 


     친구는 결혼한 지 꽤 되었지만 그동안 아이 생각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자기 동생이 결혼하고 나서 근처에 사는데 조카들을 자주 보고 아이들을 예뻐하다 보니 마음이 바뀐 듯했다. 임신이 안 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빨리 된 편이라고 했다. 우리는 호랑이띠이고 친구는 아이도 호랑이띠에 맞춰서 낳고 싶었는데 다행히 올해가 가기 전에 낳을 거 같다고 했다. 


     요즘 아이를 갖고 싶어도 임신이 어려워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기에 친구의 임신은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그래도 아이 없는 친구와 아이가 있는 친구는 또 다르다. 그동안 이 친구랑 자주 연락하고 지낸 것도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기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또 한 명이 멀어져 가는구나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하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얇게 썬 양배추를 부침개처럼 부쳐서 그 위에 피자치즈와 각종 토핑을 얹은 양배추 피자를 만들어서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친구가 가져온 토마토를 깎아먹고는 거기에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추가로 먹었다. 


     그리고 또 한 두어 시간 있다가 나초칩에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얼마 전 내가 맥주를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맥주를 마시면 속이 안 좋아서 하는 수 없이 진짜 맥주 대신 무알콜 맥주를 사다 놓은 게 있었고 임산부인 친구도 마실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했다. 


     집에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거실 통창에 붙여놓은, 붙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아직도 붙어있었다. 아마 누군가와 같이 사는 집이라면 진작에 다 치웠겠지만 혼자 사는 나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그대로 두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기분도 낼 수 있는 데다 이 장식은 소재 특성상 한번 떼면 다시 붙일 수가 없기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사 가기 전까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저녁이 돼서 바깥이 어두워지자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도 켜고 크리스마스 재즈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수다를 떨었다. 지금 아기는 친구의 뱃속에 있지만 올해 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캐럴이 흘러나올 때쯤엔 그 아이가 바깥세상에 나왔을 거라고 말하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상상했다.


     일주일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금요일 저녁이 일주일 중 제일 피곤하다. 게다가 어제저녁에도 요리 준비에다 화장실 청소한답시고 1시가 넘어서 잠들었었다. 아까 점심 먹고 나서 청소를 하려니 졸음이 갑자기 몰려와서 일단 급하게 레쓰비 한 캔을 마셨지만 이 시간이 되니 역시 졸린 건 졸린 거다. 그래서 12시쯤 이제 그만 자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옛날에 같이 놀러 다니던 그 시절에도 그랬다. 호기롭게 맥주와 술과 먹을 것을 잔뜩 사서는 "오늘 밤새면서 노는 거야!!!" 하고는 12시, 1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둘 다 눈에 졸음이 한가득이어서 항상 밤은 새지 못하고 잠들곤 했었으니까. 물론 잔뜩 사갔던 술과 먹을거리도 항상 남겼다. 


     집에 여분의 이불이 없어서 원래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잘 생각이었는데 가만 보니 애초에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에서 성인 두 명이 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친구는 임신한 상태로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불편하게 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리 알았으면 와서 자라고는 안 했을 텐데. 어떻게 할까 머리를 굴려보다가 얇은 여름 이불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친구한테 침대를 양보하고 나는 다른 방에 요가 매트를 이불 대용으로 바닥에 깔고 얇은 여름 이불을 덮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



'혼자 사는 집에 친구 초대하기(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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