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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22. 2022

혼자 사는 집에 친구 초대하기 (하)

집이란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주는 위로와 피로

'혼자 사는 집에 친구 초대하기(중)'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lifewanderer/273



     집들이 둘째 날 아침. 친구가 가져온 토마토와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먹고 친구 남편이 먹으라고 보내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사용하기 위해 근처 스타벅스에 가기로 했다. 어제는 날도 흐렸고 지하 주차장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오니까 나가기 싫어서 아파트 단지 구경을 못했는데 나가는 김에 아파트 단지 구경도 하고 동네 구경도 하며 좀 걸었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음료 한 잔씩에 작은 케이크를 시켜놓고 통창으로 되어있는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아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랑은 말을 하다가 이야기가 끊겨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러다 다시 이어지니까. 이렇게 친구와 1박 2일 내내 붙어있자니 예전에 친구와 결혼 전에 같이 여행 다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3박 4일가량 국내와 해외를 종횡무진하며 함께 다니면서 끼니를 챙겨 먹고 관광객 모드로 여행지를 구경하고 영화를 보고 그러다 할 말이 없어지거나 피곤해지면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래서 오랜만에 같이 어디 멀리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옛날 앨범을 꺼내서 보여줬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앨범 보여주는 건 국룰인가? 옛날엔 이랬고 저랬고 중, 고등학교 때 사진도 있어서 이 친구는 어떻고 저 선생님과는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고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니 또 배가 슬슬 고파왔다.


     점심을 차렸다. 밀키트로 산 감바스에다 남은 감바스 기름에 스파게티면을 볶아서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었다. 알리오 올리오는 처음 해보는데 친구가 이렇게 남은 기름에 스파게티 면을 넣으면 알리오 올리오가 된다고 힌트를 줘서 해봤다. 맛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릇을 싹 비우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좀 더 수다를 떨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친구는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1박 2일 동안 누군가와 붙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의견도 나누고 말을 듣고 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우리 집에서 훅 빠져나가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이 집에 이사 온 첫날, 엄마 아빠가 집에 가고 나니 느꼈던 그 기분 같았달까. 그래도 그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는데 이제는 혼자만의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있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 밀린 일들, 개인적인 공부 등을 바로 시작했다. 외로운 기분을 오래 느낄 틈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외롭지는 않겠지만 만약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꽤나 힘든 일이겠구나 싶은 걸, 친구와 1박 2일을 지내보고 느꼈다. 그나마 이 친구와는 여행도 여러 번 다녔고 서로 배려하는 편이라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게 이 정도인데 정말로 다른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떨까?


     사실 집에만 있었고 별 걸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밤이 되니까 급 피로가 몰려왔다. 아니다. 별 걸 안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친구가 온다고 해서 미리 청소도 하고 인터넷으로 장을 봐서 재료를 준비해뒀다. 그리고 어제저녁, 오늘 아침, 점심까지 세 끼를 차려내고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치우는 난리를 피웠다. 한식을 준비하진 않았지만 밀키트라도 간단한 조리는 해야 했고 전날 양배추를 미리 썰어놓는 등 요리에 필요한 준비도 해놓았으니 어찌 보면 피곤한 게 당연했다.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기쁘면서도 힘든 일이구나.



     나는 친구가 왔으니 손님한테 대접한다는 뜻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보다는 직접 만든 걸 주고 싶어서 최대한 있는 솜씨를 부려본다고 한 건데 꽤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겠지. 이제는 다음번에 누군가 집에 온다면 한 끼 정도는 시켜 먹어야겠다.


     그래도 친구가 갑작스레 놀러 온 덕분에 방 여기저기 어질러 놓았던 자잘한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비록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와인을 결국 사진 못했지만 일단 친구가 와인 오프너를 사게 만들어 주었으니 이제 진짜로 와인만 사면 된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미뤄왔던 샤워부스 물때 제거를 위한 핸드 스퀴저를 구입하게 하는 계기도 만들어 주었으니 곧 있으면 실제로 샤워부스 물때 제거를 시행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지금까지 못/안 하고 있긴 하다. 언젠간 하겠지?)


     집들이로 인해 피로를 얻었지만 와인 오프너와 화장실 물기 제거 도구를 구입할 기회를 만들어 준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의 위로를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이 낳기 전에 또 보자.





       

      JS에게,

 

        고마워 친구야.


      우리는 같은 과에 입학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친구의 친구로, 한 다리 건너서만 알고 지낸 사이였지. 그러다 대학교 3학년을 지나면서 대학교 1, 2학년 때 나와 단짝으로 같이 다니던 친구보다 어느새 친해져 있었지. 사실 그 단짝 친구는 조금 인싸 재질이라 나랑은 안 맞는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너와는 그런 갭이 없었어.


     그때부터 대화도 많이 하고, 같이 영화도 보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또 여행도 다니고 결국 대학교 친구들 중 아직까지 서로 유일하게 연락을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어. 너를 처음 봤을 땐 이렇게 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할 친구가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건가 봐.


     같은 전공을 해도 다른 분야의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똑같이 회계일을 시작해서 일 이야기를 해도 편했지. 이제 너는 더 이상 회계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해서 남편도 있고 곧 아이도 생길 예정인데 반해 나는 여전히 회계일을 하고 있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아이도 없어서 인생의 경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 그래서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생활의 전부를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친구로 지낼 수 있음에 고마워.


     나는 아이가 밉다는 것은 아니야. 이건 마치 그런 거라고 생각해. 처음에 우리 집 강아지 똘이를 만나기 전에 내가 강아지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고 있던 감정과 비슷하달까. 강아지를 멀리서 보는 건 귀엽지만 가까이서 보고 만지기엔 자신 없고 무서운, 그야말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였었다고.


     지금의 나에게 아이가 귀엽니? 아이를 갖고 싶니?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이를 바라보기엔 참 예쁘지만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서 감히 만지지도 못하는 그런 존재라고 말할 거야.


     하지만 내가 똘이를 실제로 키워보고 나니 강아지에 대한 감정은 달라졌지.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 왜 사람들이 강아지를 가족과도 같다고 표현하는지, 비싼 병원에 데려가고 시간을 들여가며 산책을 시켜주는지 그에 대한 이유를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던 거야.


     그래서 만약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전에는 단순히 귀여운 존재로만 바라봤었던 그 대상이 직접 돌봐야 하는,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점도 분명 많겠지만 그 존재가 주는 기쁨을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란 것 또한 깨닫게 되겠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도 서로 받아주고 오랜만에 연락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우리가, 그런 우리 사이가 새삼 고마워.


     올해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있을 무렵이 너의 예정일인데 순산하길 바랄게. 우리와 같은 호랑이띠를 가지고 태어날 너의 아이가, 딸이, 서로 좋은 모녀이자 친구관계가 되길 바랄게. 너는 좋은 엄마가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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