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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06. 2023

초보 독립러의 과제 : 요리하기

왜 내가 만든 음식은 '맛있지' 않을까? 왜 나는 요리를 하려고 하는가?

     나는 원래 요리에 취미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레토르트 식품도 잘 나와서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점에선 청소도 마찬가지긴 하다. 로봇청소기를 사거나 돈을 주고 사람을 사면 청소도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소를 직접 하고 있고 요리 또한 내가 직접 하려고 한다.



나에게 요리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동안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와 MSG 가루를 뿌려서 맛을 내는 떡볶이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혼자 살게 되면서 요리를 '시도'한 것이다. 나에겐 그야말로 도전에 가깝다.


     나는 회사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갖고 다닌다. 물론 약속이 있거나 귀찮을 때는 사 먹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그동안은 도시락도 전부 엄마가 싸줬었는데 독립을 하면서 그것도 내가 해보기로 했다.


     독립하면서 밥솥을 구매했다. 밥은 밥솥이 해주는 건데도 이 나이 먹도록 밥솥을 돌려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사용방법을 알려줬다. 쌀은 이렇게 뽀얀 물이 빠질 때까지 3,4번 정도 씻은 다음 물 양을 맞춰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물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3,4번 정도 해보니 어느 정도로 물 양을 맞춰야 밥이 고실고실하게 되는지 아니면 좀 물기 있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밥을 지을 때 밥솥에 동봉되어있던 계량컵으로 쌀을 퍼서 한 컵, 한 컵 반, 두 컵 이런 식으로 쌀을 넣고 씻고 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밥솥 안에 컵으로 쌀을 몇 컵 넣었을 땐 물을 얼마큼 넣으라는 선이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프로니까 그런 걸 보지 않고도 눈대중으로 밥 물을 맞춰왔기 때문에 나에게도 그렇게 알려준 것이었다. 아무튼 밥 짓는 문제는 이걸로 해결.


     하지만 진정으로 닥쳐온 고난은 이 다음부터였다. 유튜브에는 자취생들을 위한 간단한 요리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이 정도로 간단하면 해볼 만 한데 하면서 몇 가지를 따라 해 봤다. 그대로 따라 하니 대체로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 미묘한 것은 똑같은 것을 엄마가 요리를 했을 때와 맛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한 요리나 반찬은 '맛'이 있었다. 한입 먹으면 저절로 '아, 맛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만든 요리는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양으로 보면 그 요리가 맞는데 말이다. 엄마가 만든 것과 내가 만든 것의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이 '맛'이었다.


     숙주나물이 쉬워 보여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일단 숙주를 ‘적당하게’ 삶는데 실패했고 그전에 미리 사다 놓은 숙주가 이미 냉장고에 한 1주일 있어서 싱싱하지 않았다. 그리고 양념을 만들어서 무쳤는데 양념이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엄마한테 내가 숙주나물을 만들어봤는데 맛이 없었다고 하자 엄마가 똑같은 걸 만들어줬는데 그걸 먹으니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었다.


     엄마는 부엌일 경력 30년이 넘었다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제는 간도 안 보고 해도 다 맛있다고 한다. 그런 엄마와 부엌일 0년차인 내가 똑같은 결과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겠지.


     요리도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동생은 요리를 한 번 하면 곧잘 만들어서 맛있었는데 같은 엄마 뱃속에서 나온 나는 영 아닌 거 보면 나는 역시 손재주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하려면 피나는 연습을 통해 숙달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닭이나 돼지고기 같은 생(?) 재료는 손도 대보지 못했다. 그저 야채를 볶거나 전자레인지로 하는 단품요리 정도가 내가 할 줄 아는 전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전에는 요리를 해보고 싶어도 부엌의 주인이 엄마이다 보니 내가 뭘 하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부엌이 있다. 더럽히고 어지르면 내가 치워야 하지만 그래도 나의 부엌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요리를 하다 보니 밥솥에 밥을 올려놓고 그 사이에 야채를 씻고, 다듬고, 볶고 또 다른 재료를 꺼내 조리를 하고 그러면서 치워야 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리하면서 시간을 엄청 잡아먹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저녁에 집에 가서 씻고 나오면 밥이 차려져 있었는데 엄마는 그 모든 것들을 30분 안에 대체적으로 해낸다. 존경한다.


     나는 퇴근하고 나서 쌀을 씻고 재료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니 밥 한 번 해 먹는데 기본 한 시간이 훌쩍 걸린다. 그래서 이제는 밥을 다 먹고 나면 미리 밥을 해놓는다. 그럼 다음 끼니 준비 시간엔 반찬만 준비하면 되니까 부담이 덜하다.


     이제는 요리를 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구상을 한다. 이 과정이 시간이 걸리는 거니까 이걸 먼저 해놓고 그다음에 이게 끓거나 익는 동안 다른걸 어떻게 하고 등등. 요리는 재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운전과 같이 기술적인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서투른 초보운전자도 언젠가는 초보 딱지를 떼고 자연스레 차선 변경을 하는 것처럼 요리를 계속하다 보면 요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고 조금 더 맛있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시간을 써가면서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계속하려고 하는 걸까? 분명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왜 그런지 그 이유에 대해서 나 조차도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드디어 이유를 찾았다.






     얼마 전 <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언어들 중 '행복'이란 개념과 통하는 50가지 단어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다양한 외국어 단어들을 소개하는 책들도 종종 읽곤 하는데 그런 내 관심사에 딱 맞는 책이었다.  

     아쉽게도 소개된 여러 나라의 단어 중 한국어는 없었는데, 우리말에는 '행복'과 관련된 개념이 담긴 단어가 없다는 뜻일까? 저자는 찾지 못했지만 나라도 나중에 찾아봐야지.


     아무튼 여러 나라의 언어 중 카탈루냐어의 '세니(SENY)'를 설명하는 페이지를 읽었다. 내가 일부러 시간을 들여 가면서 하는 요리라는 행위가 우리나라 말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세니'를 실천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요리 말고도 '세니'를 실천할 수 있는 다른 행동들을 많이 찾아보고, 실천해야겠다.


[카탈루냐어] 세니(SENY)
분별, 상식, 성실성

우리는 때로 무절제한 충동과 온갖 변덕을 참지 않고 뭔가를 탐닉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행동을 절제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이뤘을 때 가장 뿌듯하고 기쁜 것도 사실이다. 세니는 카탈루냐 시골의 삶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보통은 '분별력' 정도로 번역되지만 성실함과 신중함, 자아실현에 이르기까지 훨씬 다층적인 의미를 아우른다.

카탈루냐 사람들과 그 문화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세니는 신중한 행동, 덕망, 분별력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오늘날에도 카탈루냐 사람들은 이런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선조 때부터 전해 내려온 세니의 횃불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카탈루냐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알려졌으며, 지금도 이런 면이 카탈루냐 문화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공정함과 정의를 열렬히 추구하면서도 조심성을 잃지 않기에 카탈루냐 친구들의 충고는 진실되고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

세니를 잘 보여주는 우화와 민담도 많다. 모두 지혜와 절제를 높이 사고 욕심과 과도함을 삼가라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다. 그중 하나는 배고픈 꼬마 쥐가 새장에 숨어들어 새를 잡아먹었다가 너무 뚱뚱해져서 새장의 철창 사이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집으로 피자를 배달시키고 영화도 집에서 보는 현대사회에서 욕심을 억눌러야 한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게 고루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상적인 욕구를 충족했을 때 얻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게걸스러운 꼬마 쥐와 마찬가지로 가끔 우리는 한 가지 욕구를 채우느라 진정으로 바라는 것, 이를테면 건강한 몸, 지적인 정신, 의미 있는 관계 등을 희생하곤 한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삼류 영화를 보려고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를 두드리다가 멈칫하게 되거든 세니를 조금 발휘해 보자.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거나 계속 읽으려고 생각만 했던 책을 펼쳐보자. 길게 보면 그것이 더욱 행복한 길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 메건 헤이즈 지음,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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