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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pr 16. 2023

혼자 사는 것은? 생활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

혼자 살아보면서 찾게 된 생활의 취향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적은 돈이지만 매월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엄마에게 보냈다. 내가 취업을 하자 엄마는 나와 나이 또래가 비슷한 친척네 누구누구는 취업하니까 집에 얼마씩 준다더라, 하면서 나에게 취업한 자식은 집안 경제에 약간의 보탬을 해야 한다는 힌트와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 


    그렇지만 집에 생활비를 지불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샴푸를 사거나 바디워시를 산다 같은 생각도 특별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집에 샴푸가 있으니 그걸 썼고, 치약이 있으니 그냥 썼고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혼자 살게 되면서 이런 물건에도 개인 취향이 담기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생활의 취향 찾기 첫 번째 : 치약


처음 사본 유시몰 치약.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때로는 내 취향의 욕실용품을 사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개인적으로 산 바디 퍼퓸이나 보디 오일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런 제품들은 슈퍼에서 파는 기성 제품에서 나는 향기와는 다른 개성적이고 강한 향이 많았다. 그래서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향에 민감한 엄마가 내가 사 온 물건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래서 돈 주고 사놓고도 마음 편히 쓰지 못하거나 쓰면서도 눈치를 봤다. 그래서 욕실용품을 살 때 내 개인 취향을 고집할 수 없었다.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가에서 가져온 치약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본가에 가서 화장실에 잔뜩 쌓여있는 치약을 몇 개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치약을 써볼까? 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여전히 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생각해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사다주신다.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음식물 쓰레기 거름망을 찾아보고 구입하거나 그동안 써보지 않은 조금은 비싼 치약을 써보고 싶다. 또 향기가 강해서 가족들이 싫어할 법한 방향제를 사서 거실에 둔다던지 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그동안 사고 싶었었던 다소 비싼 치약 몇 가지를 찾아보고 올리브영에 갔다. 인터넷으로 사도 되지만 배송비가 붙어서 어차피 그게 그거였다. 결심했을 때 사야겠다 싶어서 평상시 쓰는 페리오 치약보다 양도 적은데 가격은 두 배인 비싼 치약을 구입해 봤다. 지속적으로 쓰게 될진 모르겠지만 치약 하나까지도 내 취향을 반영할 수 있어서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처음 써보는 이 치약에선 파스 냄새가 났다. 강렬했다. 아, 이걸 계속 쓸 수 있을까? 그렇지만 하루, 이틀, 삼일… 계속 쓰다 보니 특유의 향에도 적응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걸 계속 사서 쓸까 아님 또 다른 걸 사서 써볼까 쓸데없는 고민을 해본다. 이 치약은 양이 적어서 한 3달 쓰고 나니까 다 써버렸고 그래서 또 다른 치약으로 갈아타면서 치약 유랑을 시작했다.



생활의 취향 찾기 두 번째 : 향수



     향수라 함은... 으른으른 한 이미지가 있다. 머리 아프게 지나치게 뿌리는 건 안 좋아하지만 (본인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맡는 건 고역임) 은은하게 향을 풍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건 멋져 보인다.


     나는 무향의 사람이다. 향이 나는 걸 쓰지 않는 편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평소에 향수는 쓰지도 않으면서 그동안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면세점에서 미니어처 향수를 샀었다. 향수알못이니까 미니어처 향수로 여러 향을 접해본 다음에 마음에 드는 향수를 큰 사이즈로 사야지라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애초에 관심이 없던지라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니 사놓고도 안 쓴 게 수두룩했다. 


     요새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 새 화장품을 사지 않고 그동안 사다 놓은 화장품들을 하나둘씩 쓰기로 결정했다. 영 안 쓰는 건 버렸고 그 외 나머지는 내가 직접 사용을 해서 없애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그동안 착실하게 모아놓은 미니어처 향수를 써보기로 했다. 


그동안 쓰지도 않으면서 사뒀던 미니향수 몇 개. 이거 말고도 아직 쓸 게 많이 남아있다.


     책상에 주르르 올려놓고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오늘은 뭘로 할까 고민한다. 이게 미니어처다 보니 스프레이 기능은 없어서 팔목에 한 방울 정도 떨어뜨린 뒤 양 손목을 문질러서 향이 묻어나게 하고 있다.


     향수마다 미묘하게 향이 다르다는 것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팔목에만 조금 바르다(?) 보니 내 향수를 다른 사람이 맡을 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향수를 뿌린다는 이 행위가, 어떤 향수를 뿌리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이미지와 그날의 행동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20대에 어울릴 듯한 달달한 향을 뿌렸다면 오늘 하루는 이 향에 맞게 좀 더 밝게 행동해볼까 한다. 아니면 사람들이 보통 성숙한 여인의 향이라고 느끼는 향을 뿌렸다면 나도 그에 맞게 조금은 우아하게 행동해 본다던지 하는 그런 것들. 이것 또한 생활의 변화이자 발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바디스크럽을 샀다. 그런데 이게 스크럽 효과도 효과지만 바디로션 바른 거 마냥 몸에서 은은하게 몸에서 향이 나서 좋았다. 포인트는 센 향이 아니라 은-은해서 좋았다는 것.



생활의 취향 찾기 세 번째 : 꽃꽂이 (그냥 단순히 꽃 꽂아놓기 일지도?)



꽃집에서 사온 꽃다발을 그대로 꽃병에 꽂기만 했는데도 기분이 좋아진다.



     꽃꽂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디피 되어있는 꽃다발을 사 와서 그냥 꽂아놓는 것이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정도 간격으로 꽃을 사 온다. 요즘엔 확실히 꽃을 파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엔 '꽃을 산다'라는 것은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만 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집에 꽂아둘 꽃을 사는 집은 부잣집이라고만 생각했다. 요즘엔 그런 편견을 깨고 저렴한 꽃집들이 일상에 들어왔다.


     엄마랑 집 근처 양재 꽃시장도  두어 번 가봤지만 매번 가기엔 귀찮았다. 그러다 출근길에 지나다니는 강남역 지하상가에 꽃집이 많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가격도 딱 만 원대 정도에 형성되어 있었다. 누굴 줄 것도 아니고, 생일이나 기념일같이 특별한 날이라서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일상에 둘 물건으로 사는 거니까 만 원 정도면 부담 없었다.


      첫 주엔 만 오천 원 정도 되는 이미 포장이 된 작은 꽃다발을 샀다. 역시 이미 예쁘게 여러 꽃을 조합해 놓아서인지 집에다 그대로 꽂아놔도 예뻤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꽃이 서서히 시들기 시작한다. 시들면 꽃을 버리면 되는데... 꽃이 없으면 허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꽃병은 집에 들어왔을 때 딱 현관문 정면에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혼자 사는 이 집에 꽃이 나를 맞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도, 다음 주에도 계속 꽃을 사 오기 시작했다.


     디피해놓은 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날도 가끔 있었다. 그동안 몇 번 사봤으니까 이번엔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 해볼까? 싶어 이것저것 섞어서 달라고도 해봤다. 그런데 확실히 가격이나 미관상 이미 가게에서 만들어놓은 꽃다발이 여러 종류의 꽃이 들어가 있으면서 적당히 풍성하고 예뻤다.


     게다가 나는 미적 감각이 좋은 편이 아니라 꽃을 고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돈은 돈대로 쓰고 결과물은 별로라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몇 번 해보다 포기하고 그냥 예쁘게 만들어 놓은 걸 사 와서 잘 꽂아놓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처음에 꽃을 샀을 땐 집안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꽃을 사는 것 같다. 집에 들어왔을 때, 신발을 벗고 바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면 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 같다.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피어있지 않았던 봉오리가 활짝 벌어져 있을 때도 있다. (물론 그 반대로 꽃이 져서 테이블 위에 툭 떨어져 있는 기괴한 광경도 연출되지만.)


     누군가는 꽃이 피어있을 땐 예쁘지만 금방 져버리기 때문에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꽃을 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꽃이 지기 때문에 꽃을 산다. 꽃이 진다는 건 살아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집에 생물체라고는 사람인 나 하나밖에 없다. 혼자 사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이 집안에 살아있는 게 나밖에 없구나 싶어 외로워질 때도 많다. 꽃은 금방 질 지언정 살아 있다. 비록 시들어서 사라질지라도 집 안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자체로 온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꽃을 사러 가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보 독립생활자.

이런 식으로 생활의 취향을 하나둘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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