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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pr 07. 2023

서울탐방 제5탄 : 섬유센터와 마이아트뮤지엄

2022년 7월의 기록 : 한여름에는 시원한 미술관에서, <호안 미로>

     모든 문화 시설이 몰린 수도권답게 서울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 많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유명한 미술관으로는 국립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에 있는 한가람미술관이 있다. 이곳들이 오래된 전통의 강호 느낌이라면 이번 글에선 이와 반대로 비교적 최근에 생긴 삼성역 근처의 마이아트뮤지엄이라는 작은 미술관을 추천해볼까 한다. 이 미술관은 개관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나름 유명한 전시들을 많이 해서 어느 정도 인지도는 있는 것 같다.


     마이아트뮤지엄은 절대 미술관 같은 건 있지 않을 듯한 도심 속 한가운데 삼성역 근처에 위치한 섬유센터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지하에 있는 독립영화관 씨네큐브처럼 말이다.






     미술관이 위치한 이곳 '섬유센터'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추억이 하나 있다. 이곳은 내가 처음으로 라이브 공연을  공연장이 있는 곳이다. 2005,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클래지콰이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단독공연을 예매했다. 주변에 클래지콰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가야 되는 상황이라 망설였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기에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온라인 팬카페에서 나처럼 혼자 가는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공연을 보기로 했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내 돈을 내고 좋아하는 팀의 공연을 보러  것이라 그런지 기억에 많이 남았. 공연장 입장 전에 그날 같이 공연을 보기로  사람들을 만났다. 입장 번호는 제각각 달랐지만 같이 공연을 보기 위해 제일 번호가 늦은 사람 쪽에 합류해 줄을 섰다. 내가 스무 살이라 그들 중 제일 어렸고,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이가 많다고 해봤자 나랑 대여섯 살 차이 밖에 안 났고, 대학생 오빠와 직장인 언니도 있었다.


     같이 공연 본 사람들 중에 내가 나이가 제일 어렸기에 이쁨도 받고 그중에 내가 키가 제일 작아서 앞에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다들 자리를 양보해 줬다. 공연이 끝나고 이대로 집에 가기는 뭔가 아쉬웠다. 누군가가 근처에서 맥주나 한잔하고 가자고 해서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술집에 갔다. 나는 공연이 끝난 뒤 근처에 있는 이모댁에 가기로 되어 있어서 술자리 중간에 빠져나왔지만 그날의 공연과 공연 후 사람들과 같이 마셨던 맥주 한 잔의 기억이 매우 좋게 남아 있다.


     섬유센터에 생긴 이 미술관은 우리 회사 근처에 었기 때문에 그동안 반차를 내고   왔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싫어하는 과목을 꼽으라 하면 미술을 고를 정도로 똥손인 데다 미적 감각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미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만 몇 년 전에 전시회를 갔을 때 좋은 인상을 받아서 이후로는 스스로의 의지로 미술관에 가고 있다. 이렇게 미술관에 몇 번 가다 보니 나름의 원칙도 생겼다.


첫째, 주제가 또렷한 회화(그림) 작품을 좋아한다.

아직까지 추상미술이나 현대미술은 잘 모르겠고 관심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교적 주제가 확실하고 어디서 많이 봤거나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작가 위주로 전시를 보러 다닌다. 

둘째, 미술관은 되도록 평일에만 간다.

미술관에 다니기 전엔 평일에 미술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 평일이 이 정도인데 주말엔 사람이 더 많을 거 같아서 가능하면 주말엔 가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셋째, 가능하면 도슨트를 들으려 노력한다.

왜냐?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디오 가이드도 좋지만 그것보단 직접 현장에서 듣는 도슨트의 설명이 생동감 있고 귀에 잘 들어온다. 요즘은 많은 전시에 정해진 시간마다 무료 도슨트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가서 꼭 듣기를 추천한다.


     이번 전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다 지난번에 여기서 했던 전시 티켓을 가지고 오면 이번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이벤트를 발견했다. 나는 분명 이곳에서 개최한 전시를 두세 번은 봤을 텐데 요즘은 관람한 영화표나 전시회 티켓을 잘 모으지 않고 있어서 티켓이 없을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표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데 하며 서랍을 뒤졌는데 겨우 버리지 않은 표를 한 장 찾아냈다.


     오늘과 같은 한여름에 미술관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미술관이 매우 시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겨울에는 좀 썰렁한 느낌이다. 그 관리를 위해 온도 조절이 필요해서 그런지 전시장 내부 온도가 낮게 설정되어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더울 때 미술관에 가면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호안 미로의 그림을 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바로 '어, 나도 그릴  있겠는데?’란다. 하지만 '그릴 수 있겠다'라고 해서 실제로 그걸 려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다. 호안 미로의 그림 중 별자리 시리즈가 유명한데 이게 점도 없는 것은 좀 아쉬웠다.


     아이들이 호안 미로 스타일로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바로 이 어린이의 마음 유지하기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얼마 전 바이올린 선생님도 성인 학습자를 가르치기 어려운 점이 말귀는  알아듣지만 너무 딱딱하다고 할까, 정박을 지키고 있는 그대로만 하려고 한다고 했다. 힘을 빼고 해야 된다는 걸 이해시키기 힘들다고 했다. 아마 미술도 비슷한 맥락인  같다. 우리 태어날  분명 어떤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커 가면서 세상의 풍파에 그 원석이  쓸리고 닳아서 없어져버리는 모양이다. 


     도슨트랑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있었고 혼자서 30분 정도를 다시 처음부터 둘러보았다. 화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공부도 했지만 아무래도 미술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드니 회계 경영학 전공을 하고 회계사무원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회계 사무원으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2+2는 4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그림도 있었다. 


    그런데 화가는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니 병이 나서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리고 쉬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병도 낫길래 아예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가만보니 지금 회계팀에서 일하는 내 직업이 바로 현대판 회계사무원이다. 화가가 나랑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하니 친밀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나만 회계 업무를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란 안도감도 들었다. 


     호안 미로처럼 미술에 재능은 없지만 없는 글 재능이라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끼적이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언제쯤 회계사무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호안 미로>전에서 본 작품들 몇 컷. 이 중 제목이 2+5=7인 그림은 뭘까요? (@ 마이아트뮤지엄)


     작품 중에 색감이 강렬하면서 마치 해가 떨어지고 있는 바닷가 풍경 같은 그림이 하나 있었다. (위 사진 4컷 중 왼쪽 아래) 호안 미로 작품의 대부분 제목이 여인, 별, 새 이 세 종류의 단어로 돌아가면서 지어진 게 많길래 그 세 개 중 하나 일까 싶었다. 도슨트가 이 그림을 보고 혼자서 생각해 본 다음에 나중에 제목을 보라고 했다. 그림을 보며 한참 생각하다가 정답을 찾기 위해 제목을 보고 빵 터졌다. 제목은 <2+5=7>이었다. 큰 원 두개와 직선이 다섯개여서 그런걸까? 왜 이렇게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전시회를 다니면서 그림 제목이 수식으로 된 것은 처음 봐서 신선하고 기억에 남았다.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한낮이다. 전시장 밖으로 빠져나오니 아직 가보지도 못한 스페인에 다녀온 느낌과 동시에 상상 속 세계에 발을 담그고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어째서 저렇게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일 수 있는 걸까? 스페인의 모토는 '밝고, 활발하고, 긍정적이게'와 같은 것일까? 삶을 대하는 그네들의 태도가 부럽다. 


     폴리글랏을 지향하는 나는 스페인 출신 작가의 그림을 보며 언젠가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해서 스페인의 여러 문화를 경험해 보고 그것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 같은 영역도 있지만 역시 나는 문자로 된 것에 끌리는 언어여행자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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