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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Feb 11. 2023

서울탐방 제4탄 : 낙원상가 방문기 (하)

2022년 6월의 기록

'서울탐방 제4탄 : 낙원상가 방문기 (상)'에서 이어집니다.



     최근에 이 낙원상가가 화제가 되었던 건 낙원상가 옥상에 있는 허리우드극장(일명 '실버극장') 때문이었다. 나도 온 김에 들러봐야겠다 싶어서 바로 악기상가에서 연결된 길을 찾았는데 잘 못 찾겠더라. 그래서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간 뒤 국밥거리를 지나서 가니까 뒤쪽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다른 입구가 나왔다. 가는 길에 송해 선생님을 모델로 그린 벽화도 있었고 위쪽으로는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진 극장 포스터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낙원상가 옆 직접 그린 옛날 영화포스터. 나 어렸을 땐 극장 간판이 다 이런거였는데 세월 참... (2022.06)


     왜, 옛날 극장 포스터들은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그린 거였는데... 이거 알면 옛날사람인가? 하하. 내가 어렸을 때에는 CGV가 이제 생기는 중이었기 때문에 CGV 같은 멀티플렉스와 옛날부터 있던 일반적인 극장이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버스 타고 지나다니던 길에 보던 영등포의 경원극장이나 연흥극장의 포스터는 사진이 아닌 직접 그린 포스터였던 기억이 난다.


      어르신들과 엘리베이터 탑승해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극장이 나왔다. 익히 들었던 대로 어르신(노인)들을 위한 극장인 만큼 어르신 입장가격이 제일 저렴했고 일반 성인 가격이 7천 원으로 젊을수록 입장료가 비싼 극장이다. 영화 포스터나 영화관 입구도 꼭 옛날에 봤던 극장 느낌이 났다. 옥상에 있는 마당에는 정원과 무대가 있었는데 나무로 된 담을 따라 있는 담쟁이넝쿨 같은 식물은 전부 조화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낙원상가 옥상의 허리우드 극장의 정원과 전경. (2022.06)


     극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어르신들을 위한 데이터 리터러시 강좌 안내를 위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엔 스마트폰 사용법과 심지어 유튜브 사용법 안내 강의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그걸 온라인 제페토에서 강의를 한다고 나와 있었다. 제페토라니, 나도 아직 안 해봤는데. 어르신들이 나보다 더 잘하시겠다. 


     내가 어르신들께 핸드폰 문자 보내는 방법을 알려드리던 봉사활동을 하던 2008년엔 어르신들이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였는데 이젠 그걸 넘어섰다. 과연 내가 나이가 들면 어떤 세상이 될지 참 궁금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지기도 한다. 아마 자식이 없으면 이런 기술발전 부분에서 더 빨리 세상으로부터 도태될지도 모르겠다.


     영화관 로비인데 레트로 느낌 제대로다. 내가 60,70년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게 요즘 감성(?)에 맞게 꾸며진 건지 아님 그 시대에 살았던 분들이 향수를 느끼게끔 꾸며져 있는지까진 모르겠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분들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란 생각이 들었다. 로비에 장식되어 있는 식물은 조화가 아니라 전부 생화였다.


낙원상가에 위치한 허리우드 극장의 레트로 느낌 물씬한 로비 풍경. 송해 선생님 기둥도 눈에 띈다. (2022.06)


     카페는 장사를 안 하는 거 같았지만 누가 봐도 어르신들을 위해 메뉴판 글씨가 엄청 크게 쓰여 써놔서 장하기도 짠하기도 했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누가 봐도 간판에 안 맞게 정말 크게 쓰여있는 거다. 그런데 또 ice는 그대로 영어로 써놨네? 이왕이면 ice도 한글로 쓰여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살짝 해봤다.


      로비에 들어설 때부터 굉장히 익숙하면서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들려왔다. 분명 아는 노랜데 제목이 뭐지 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는데 알고 보니 <Girl from Ipanema>인데 내가 평소에 듣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연주돼서 그랬나 보다.


     그리고 로비에 있는 기둥 하나는 온통 송해 선생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마침 이때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라 나도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비록 송해 선생님의 육신은 없을지언정 사람들의 입에 계속 회자되고 영상 자료로 남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나마 영원히 살아계시겠지.


     낙원상가에 들렸다가 들른 서점에서 이소호 작가의 <서른다섯, 늙는 기분>이라는 책을 읽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쪽으로 점점 포지션이 옮겨지고 있다. 아, 하지만 이건 정확히 따지면 인간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나이가 들어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우리 세대가 나이가 들었을 땐 다른 곳에 이런 공간이 생기려나? 아니면 낙원상가의 이 공중정원이 우리 세대의 입맛에 맞게 바뀌게 되려나? 아니면 이런 공간은 아예 없어지고 그냥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할까? 전부 다 섞여서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젊어질 수는 없고 나이가 들어갈 일만 남은 나로서는 자꾸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반대편에 있는 작은 전시장에서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림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사진까지는 더더욱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제가 여성에 대한 것이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할머니 사진을 보니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할머니에게서 나던 특유의 냄새가 기억났다. 사진에서도 마치 그 냄새가 나는 느낌. 방명록에 조용히 이름을 남기고 나왔다.


     아까 전시장에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보니 바닥에 있는 배수로 덮개가 악보 무늬로 되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애국가 가사와 함께 높은 음자리표와 악보가 그려져 있었다 


바닥의 하수구를 이용한 악보 표기 (2022.06)






     나는 아마추어 음악가이고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평생을 아마추어로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일상 어디에선가 악보를 보면, 또 높은 음자리표 같이 음악과 관련된 기호를 발견하면 그저 설렌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베토벤 뮤지엄하우스를 관람하다가 전시 품목 중에 낮은 음자리표가 그려진 악보를 봤는데 음을 읽을 수 없었다. 내가 당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낮은음자리표 음계 읽는 법을 까먹었음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이란. 그럴 만큼 오랫동안 악보를 보지 않았구나를 자각했다.


     나는 아마추어니까 별 부담 없이,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이렇게 기쁘게 반응하는 거겠지. 세상에서 제일 비싼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돈을 모아 적당한 울림이 있는, 나에게는 어느 명품 악기보다도 소중한 악기를 맞이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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