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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Feb 11. 2023

서울탐방 제4탄 : 낙원상가 방문기 (상)

2022년 6월의 기록



낙원상가.
어디서 들어본 기억 없나요?



     낙원상가. 악기를 만졌던 혹은 악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한 때는 악기를 입문하려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던 1998년에 '낙원상가'라는 곳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엄마가 바이올린 선생님께 악기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물었을 때 종로에 있는 낙원상가에 가서 구입하거나 잘 모르면 선생님이 대신 사다 준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나는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한 1998년, 그 1년 동안 누가 뭐래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잠깐 합주 동아리에 들었다가 그 뒤로 학생 때는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초등학교 때 쓰던 3/4 사이즈 바이올린을 1년 동안 사용하다가 그다음 해, 성인 사이즈인 4/4로 바꿀 겸 해서 악기를 바꾸기로 했다.


     나는 당시 용돈으로만 생활하고 있어서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당시 집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를 처분하기로 하고 그 대신 바이올린을 바꾸기로 했다. 


     동아리 선배가 아는 낙원상가 악기사에 가기로 했다. 나 말고 다른 후배들도 여러 명 같이 갔었는데 나랑 서너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던 동아리 선배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서 그야말로 어른처럼 너스레도 떨고 주인과도 빨리 친해졌던 기억이 난다. 악기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취미로 하는데 비싼 걸 살 순 없어서 10만 원을 주고 샀던 첫 바이올린보다는 비싼 30만 원가량을 주고 성인용 4/4 사이즈 바이올린을 샀다.


     그렇게 구입한 악기와 그해 연주회까지 함께 했다. 그 뒤로 공식적인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서 집에서 혼자 연습하다가 점점 더 안 하게 되다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그룹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만 평소에 연습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레슨 받을 때만 연주하니 실력은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백화점 문화센터라는 게 한 반에 학생들이 매우 많고 수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선생님도 자세하게 봐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그것도 그만둔 지가 어언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결심을 하다 하다 얼마 전에 레슨을 시작했다. 바이올린 레슨을 다시 받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 적어두었다.




     처음엔 줄만 갈고 혼자 하려고 해서 사놓은 현이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 가서 선생님한테 현을 좀 갈아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도대체 현을 언제 갈았냐고 묻길래 15년 전쯤이라 하니 매우 놀란다. 그러면서 현은 6개월에 한 번 정도 갈아줘야 된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엔 '줄을 가는 것 = 줄이 끊어질 때'라고만 생각했는데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선생님이 줄을 갈아주려고 했는데 바이올린의 현(줄) 4개 중 오른쪽 끝에 있고 가장 얇은 E현을 감싸고 있는 팩이 너무 뻑뻑해서 돌아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아무래도 팩이 부러질 거 같다면서 악기를 샀던 악기사에 가서 갈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낙원상가를 가야 했다. 2006년에 악기를 샀기 때문에 어디서 샀는지 일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악기사에서 넣어준 듯한 악기 닦는 천이 들어 있었는데 그 천에 악기사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상호명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행히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었고 친절하다는 리뷰가 많았다. 평일엔 시간 내기가 어려울 거 같아서 토요일에 가기로 했다.


     악기는 학원에 두고 다니는데 거리 상 바로 집에서 낙원상가로 가는 게 좋았다. 그래서 토요일이 되기 전 평일 저녁에 학원에 들러 악기를 챙겨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대망의 토요일. 전날 일찍 잠든 탓에 눈이 빨리 떠져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서 나왔다. 낙원상가는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딱 버스 한 번만 타고 가면 되는, 30분 안에 도착하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낙원상가 외관 (2022.06)



     이제 다음정류장에 내려야지, 하고 버스가 좌회전을 하려는데 좌회전하는 버스 창 너머로, 그러니까 좌회전이 아니라 만약 버스가 직진했더라면 도착할 곳에 낙원상가가 바로 보였다. 버스는 좌회전해서 종로 2가에 멈춰 섰고 나는 바이올린 악기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낙원상가까지 천천히 걸었다.



맞아,
여기야 여기.
여전히 그대로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바로 2층에 들어섰고 칸칸이 자리한 악기사들과 각종 악기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상가를 구경하기에 앞서 먼저 악기 수리부터 하고 둘러보기로 한다. 내가 가려는 악기사는 입구 초입에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옛날에 여기서 악기를 산거 같은데 오랜만에 하려고 하니 팩이 잘 안 돌아가서 좀 봐주십사 한다고 악기를 열어서 보여드렸다. 그런데 사장님이 대뜸 '코로나 때문에 쉬다가 이제 다시 하시는 건가 봐요?' 하며 대화의 물꼬를 튼다. 사장님, 전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한 10년 쉬다가 하는 건데요.


      사장님은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서 이리저리 딱 한두 번 보시더니 그동안 지판을 짚는 왼손 손가락 끝이 아프지 않았냐고 묻는다. 브리지가 너무 높아서 손가락이 아팠을 거라고. 아뇨, 전 몰랐어요. 처음에 악기 산 그대-로 쓰고 있는 건데요. 여태까지는 당연히 손가락이 아픈 건 줄 알았다. 더 이상 손가락이 아프지 않도록 쓱싹쓱싹 브리지를 깎아서 끼워주셨고 줄도 사사삭 갈아주신다.


     수리된 바이올린을 받아 들고 그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걸 물어봤다. 옛날에 산 저렴한 3/4 사이즈 바이올린이 있는데 혹시 그런 걸 매입하기도 하시나요? 아니면 그냥 버려야 할까요? 했더니 계산대 밑에 서울시 악기기부 어쩌고 쓰여있는 안내문이 있었다. 악기 상태가 깨끗하면 그걸 통해서 기부할 수 있으니 가게로 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다. 이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나의 손 때가 묻은 첫 번째 악기이지만, 사이즈 상 더 이상 쓸 일도 없다.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아서 바이올린을 시키면 또 모를까. 10만 원짜리 싸구려 악기라지만 추억과 감정이 묻은 물건이라 손쉽게 보내질 못하겠다.


     그리고 혹시 일반인이 연습용으로 쓸, 괜찮은 악기의 가격대는 어느 정도인지도 물어봤다. 그랬더니 악기를 하나 보여주시면서 80만 원대 정도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벌써 나무때깔이 다르다. 내 건 공장에서 나온 듯한 인위적인 색깔인데 이건 자연스럽고 고급져 보이는 느낌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이건 수제에다가 나무도 바니스칠을 스무 번인가 해서 나온 거라면서 소리가 울리는 것도 다르다고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레슨을 받아서 어느 정도 결심이 선다면 내 돈을 주고 악기를 업그레이드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악기로 평생 가는 거지. 그리고 지금 악기 케이스는 악보 넣는 칸 지퍼가 고장난데다 여기저기 달린 지퍼의 손잡이도 깨져있는 바람에 엉망이라 바꾸긴 해야 한다.


     친절하신 사장님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와 본격적으로 낙원상가를 둘러보기로 한다.


낙원상가 내부 (2022.06)



     내가 하고 있는 현악기인 바이올린을 비롯해 비올라, 첼로 등은 물론이고 관현악기인 트럼펫, 플루트도 많이 보이고 심지어 리코더와 하모니카도 있다. 거기에다 기타는 물론이고 각종 음향 장비에 노래방 기기까지 있다. 3층에는 피아노만 다루는 매장이 즐비했다. 언젠가 피아노도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 난 왜 이렇게 일하는 거 말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걸까?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욕심말이다.


      상가를 구경하면서 지나가는데 한 가게 안에서 약간 나이 드신 할머니 사장님이 앞에 다섯 살도 안 된 것 같은 아기 손님을 앉혀두고는 정확한 사이즈는 모르겠지만 한 1/2이나 아니 거의 1/8 사이즈는 돼 보이는 아주 작은 바이올린을 들고 보여주고 있었다. 귀여워. 그 아이는 평생의 악기로 바이올린과 함께 하게 될까? 혹시 재능이 넘쳐서 나중에 뉴스에 나오는 것은 아닌지 멋대로 상상하며 가게를 지나쳤다.




 '서울탐방 제4탄 : 낙원상가 방문기 (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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