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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03. 2023

이제야 내 일상에 들어온 스타벅스

커피를... 카페를 좋아하세요? 스타벅스 닉네임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

카페의 대명사.
<스타벅스>.



     요즘이야 밥 먹고 카페에 가는 게 흔한 문화가 되었지만 내가 스무 살이던 2005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는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 중 특히 여자들을 '된장녀'로 비하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커피를 못 마시게 해서 커피를 마실 줄도 몰랐고 된장녀라는 프레임이 무섭기도 해서 스스로 스타벅스에 가볼 생각도 하지 않다가 20대 초반의 어느 날 처음으로 엄마와 스타벅스에 가보게 되었다.


     엄마나 나나 커피래 봤자 믹스커피만 먹어봤으니 메뉴에 있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지금은 무슨 메뉴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를 시켰는데 굉장히 썼다. 쓰다는 맛만 기억나는 걸 보니 아마도 아메리카노인 것 같다. 시럽을 엄청 넣어도 쓰길래 도대체 왜 비싼 돈을 주고 이걸 사 먹는 거지? 생각하면서 다시는 사 먹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교내에도 하나둘 커피숍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토종 국내 카페 브랜드도 점점 늘어났으며 카페에 가는 게 된장녀 놀이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고 밥을 먹고 난 후 후식을 먹으러 가는 하나의 코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후식을 먹는 장소를 넘어서서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장소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까지 변모했다.






     출근길에 스타벅스 매장이 하나 생겼다. 지하철 역 안에 있는 지하상가인데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니 위치 선정이 매우 탁월했다. 지하상가에 있는 매장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매장과 달리 이곳은 주문한 메뉴를 받아갈 수 있도록 벽면에 닉네임이 뜨도록 작은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지점도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그 시끄러운 매장 안에서 스태프들이 소리 지르듯이 닉네임이나 주문번호를 부르는 게 짠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신세계가 미국 스타벅스 본사 지분을 인수해서 최대주주가 되었다고 들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해' 같은, 너무나 뻔하고 한국적인 마케팅 문구 같은 거 만들지 말고 이런 거나 편하게 한국식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전광판엔 주문번호 아니면 자기가 지정한 닉네임이 뜬다.


출근길, 나에게 웃음을 준 '금토일'님께 감사를. (@스타벅스)


     A-03과 같이 무미건조한 번호로만 뜨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본인이 설정한 닉네임과 번호가 같이 뜬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무심결에 고개를 스타벅스 쪽으로 돌렸는데 호출 전광판에 '금토일'이라는 닉네임이 눈에 띄었다. 10년이 넘게 출근을 해도 이놈의 출근길은 익숙해지지 않고 피곤하고 참 가기 싫은 그런 길인데 이 닉네임을 보는 순간 마스크 안에서 큭큭, 하고 웃음이 터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괜히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 뒤로는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꼭 한 번씩 전광판을 쳐다봤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금토일'님은 아마 스타벅스 단골인 데다 나랑 비슷한 시간대에 나보다 조금 빨리 이곳을 지나가는지 그 뒤로 이 닉네임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참 기분 좋아지는 닉네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스무 살 때와 달리 커피를 마시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자주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충전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선물 받은 기프트 카드를 앱에다 등록하면 편하게 쓸 수 있다고 해서 얼마 전 앱회원으로 가입했다. 앱회원으로 가입을 했어도 닉네임 설정은 안 해서 주문이 완료되면 직원이 번호를 불러주는 걸 귀 기울여 유심히 듣고 있었지만 스타벅스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니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은 웬일로 스타벅스를 하루에 두 번이나 갔다. 오후휴가를 내고 미술관을 가려고 했는데 입장 시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고 마침 미술관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사람 좀 빠졌겠지 하면서 갔는데 이건 뭐 거의 도떼기시장 저리 가라일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게다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음료수 받으려고 기다리면서 각자 떠들다 보니 소리가 울려서 매장이 엄청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나를 언제 부를지 모르니까 집중해서 듣고 있어야 했다. 이 사태를 겪고 나서야 닉네임 설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닉네임을 어떤 걸로 할지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일단 성을 빼고 이름으로 설정해 놓았다. 아마 이름이 아닌 다른 닉네임으로 부르면 그게 나인줄 모르고 대답 안 할 거 같아서.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지역을 이동한 뒤 미리 찾아본 스터디 카페에 가려고 했으나 일일회원은 받지 않는 곳이었다. 다음 스케줄 이동하기 전에 중간에 비는 한두 시간을 때워야 했다. 근처에 어느 카페에 갈까 하다가 조금 걸어야 하지만 역 근처에 있는, 전국 어디서나 균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벅스에 가기로 했다. 


     아까 몇 시간 전에 사람이 바글거리던 매장의 직원과 달리 이 매장의 직원은 적당히 안 친절하다는 말이 잘 어울렸고 어딘지 모르게 사근사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굉장히 사무적인 톤으로 주문을 받으면서도 사용기간이 6일밖에 남지 않은 생일쿠폰이 있다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첫 번째 방문했던 매장에서 그렇게 친절한 목소리로 주문을 받던 직원은 생일쿠폰의 존재에 대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 매장이야 워낙 바빴으니까 쿠폰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까지 친절함을 발휘할 순 없던 모양이다. '생일 쿠폰이 있다'는 그 말 한마디 하는 순간 또 쿠폰으로 바꿔드릴까요, 어쩌고 저쩌고, 멘트가 늘어날 테니 내가 알아서 잘 쓰겠거니, 하고 넘어갔겠지.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난 스타벅스를 잘 안 다니는 편이고 심지어 앱회원으로 가입한 지 겨우 1년 정도 됐나 그래서 생일쿠폰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이 직원은 사무적인 톤이었을지언정 사용기간이 곧 만료될 쿠폰이 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줬고 그래서 그걸로 결제해 달라고 했다. 스타벅스에 자주 오지 않는 내가 오늘부터 6일 내로는 스타벅스에 올 가능성이 매우 낮으므로 이 직원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올해 생일쿠폰은 그대로 증발했을 것이다. 그럼 생일 무렵 쿠폰이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렇게 쿠폰을 날렸겠지?


     커피 대신 차를 시켰더니 금방 나오니까 기다렸다 받아가라고 해서 픽업창구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까 주문받은 직원도 그렇고 음료수를 내주는 직원도 미묘하게 친절하지 않다. 아니, 내가 아무리 매장에서 먹는다고 해도 그렇지 쟁반에도 안 내주고 그냥 바닥에 컵만 달랑 내려놓더라. 쟁반은 원래 내가 알아서 꺼내는 건가? 따지기 귀찮아서 뜨거운 물이 가득 담겨서 넘칠 것 같은 컵만 달랑 들고는 2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도대체 어떤 매장이, 어떤 직원이 친절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오늘 첫 번째 방문한 매장에서 말투는 매우 친절하고 사근사근했지만 쿠폰의 존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직원일까? 아님 두 번째 방문한 매장에서 만난, 절대 친절한 말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용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쿠폰이 있음을 굳이 본인 목 아프게 한마디 더 말해서 알려준 직원일까? 


     그나저나 나도 '금토일'님처럼 참신한 닉네임을 짓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피식, 하면서 그 순간만이라도 웃을 수 있는 그런 닉네임을. 그런 닉네임을 발견하기 전까지 당분간은 이름으로 닉네임을 쓸까 한다.






     참, 나에게 웃음을 준 '금토일'님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출근길에 지나갈 때마다 오늘도 '금토일'님 닉네임이 있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스타벅스 전광판을 쳐다보며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닉네임 설정하면서 궁금했던 게 중복되는 닉네임 설정이 가능할까? 였다. 이 의문은 '금토일'님 덕분에 풀렸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은 출근길이었고 나는 습관처럼 본 전광판에서 '금토일'님 닉네임 옆에 내가 설정한 것과 똑같은 닉네임이 버젓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말인즉슨, 닉네임 설정은 중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었는데 '금토일'님 덕분에 전광판을 자주 들여다봐서 자연스럽게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커피라도 한 잔 사드려야겠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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