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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13. 2021

불안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다

불안한 마음, 계속 함께해도 괜찮은 걸까?

     요새는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다 보니 밥을 먹고 나면 시간이 항상 남는다. 컴퓨터를 할 때도 있지만 날이 좋으면 산책을 나간다. 오늘은 날도 좋고 시간도 남아서 산책을 나가고 싶었지만 하필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와서 나갈 수가 없었다. 지난주에 주문을 넣고 토요일에 배송받은 그 구두를 월요일인 어제 처음 신었다.  

     아무래도 새 신발이니까 발이 신발에 익숙지 않아서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해서 보니 발 양쪽 뒤꿈치가 다 까져서 피가 나고, 발가락과 발등 옆쪽에 상처가 나서 따끔따끔했다. 원래 새 신발을 신으면 발에 상처가 날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본질적으로 신발 자체의 모양과 질이 좋지 못해서 생기는 상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 굽이 높지 않은 점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이 구두는 날렵한 모양을 내기 위해 신발 폭이 좁았고 그러다 보니 발도 조이고 뒤꿈치도 쓸렸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하루 더 신어서 길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오기가 생겨서 오늘 하루 더 신고 출근했다. 이미 어제 하루 신고 돌아다닌 바람에 반품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신어야 했다.


     운동화나 단화를 신고 온 날은 산책을 나가지만 오늘은 스스로 억지를 부려 신고 온 구두 때문에 산책을 갈 수 없었다. 대신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서핑을 했다. 권순관의 '너에게'를 듣다가 오랜만에 네이버 검색창에 권순관을 검색해 봤다. 권순관 2집을 오랜만에 들었다는 어느 포스팅 글이 눈에 띄어 클릭했다.


     그곳엔 굉장히 내면적인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그 글쓴이는 전혀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이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겠지만 같은 음악을 듣고 거기서 느낀 점을 공유해 준다는 것이 매우 반가웠다. 그녀는 이혼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권순관의 '너에게'를 듣고 내 마음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 글을 보고 생각했다.
이 마음의 정체는 뭘까?
나는 요즘 불안한 게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안한 게 맞았다.
 
왜 그럴까?
나는 독립을 앞두고 있다.
그것도 얼결에.
그런데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느껴서일까?
아니면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걸까?


     나는 몇 년 전에 심각하게 독립을 꿈꾸고 있었고 엄마에게 슬쩍 운을 띄워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엄마는 나의 독립을 반대했다. 그래서 나도 그 뒤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같이 사는 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사실 편한 점들도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은 아무리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온전히’ 그야말로 ‘제대로’ 내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사를 해야 할 경우 집을 알아본다던지 하는 책임감은 나에게 없어도 된다. 독립이 정해지고 나서,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나가면 앞으로는 같이 안 살 거지? 엄마도 그에 따라 다음 집을 정해야 하니까,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독립인데, 그것도 집을 구할 필요 없이 이미 구해져 있는 집에 이사를 하면 되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안한 건… 내가 모든 것을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것에 맞서야 한다는 것,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폭풍우를 혼자 맞아야 한다는 것 때문일까?


     나는 대체로 혼자서도 무언가를 잘 해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거 보면 곁에 있을, 함께할 누군가를 원하는 거 같기도 하다. 혼자 살아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서? 요즘 들어 부쩍 일하기 싫은 마음이 커져가는데 혼자 살게 되면 그야말로 생계를 꾸려야 하니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 독립이 결정되었을 땐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레는 기분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다. 이건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그리고 이제 돌이킬 수도 없다.



나는 과연 앞으로 괜찮을까?
나는 나를 어느 정도 안다.
 
분명 괜찮을 것이다.

조금 심심한 생활이 되겠지만
나는 혼자만의 생활도 잘 꾸려나갈 것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생활을 어떤 식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지는
숙제로 남았다.







     얼마 전에 브런치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불안감이 그 글쓴이를 만들었다고. 그분도 걱정이 많고 불안감이 많은 스타일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자기 계발을 해서 전직도 하고 결론적으로 지금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불안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겠지만 대신 그걸 발판 삼아서 노력하면 된다고.


     사람이 한순간에 바뀔 수도 없고 성향도 저마다 다르다. 초고층 건물이나 요즘 설치되는 다리는 큰 바람이 불면 일부러 어느 정도 흔들리도록 설계된다고 한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으려고 뻣뻣하게 그대로 있다가는 외부의 힘에 견디지 못하고 파괴된다. 상황에 맞게 흐름을 타는 거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바람에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의 성향 상 불안감을 완전히 없앨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불안을 가지고, 때로는 조금씩 흔들리면서 하지만 내가 뿌리 박혀 있는 곳에서 뽑혀 나가지 않을 정도로 흔들리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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