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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n 03. 2023

악보사에 방문하다

예술의전당 대한음악사 방문기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있다. 레슨을 진행한 지 거의 반년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선생님께서 드디어 써드포지션 진도를 나가려는지 새로운 악보를 꺼내서 보여 주면서 어느 부분을 연습해 오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여주는 악보는 그동안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처음 보는 교재였다.


     선생님이 사 오라는 악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팔긴 하는데 배송료를 내야 했고 그렇다고 배송료를 아끼기 위해 추가로 주문할 것도 없었다. 배송료 안 내자고 쓸데없는 물건을 주문하는 짓은 안 하기로 했기에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교보문고로 가볼까 했지만 오프라인 매장엔 재고가 없었다.



그러다 떠올랐다.
'악보사'라는 장소가.



     '악보사'는 단어 그대로 악보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를 말한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대학생 시절, 명동에 있던 대한음악사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검색해 봤더니 명동점은 없어졌는데 대신 예술의전당에 입점해 있었다. 왠지 예술의 전당을 지나가다 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퇴근길에 들르기로 했다.


     퇴근길의 2호선을 타고 방배역에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그동안 전시회를 보러 예술의 전당은 여러 번 와봤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처음 해보는 '악보를 산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입구에서부터 두근대기 시작한다.


     예술의 전당 1층은 비타민 스테이션으로 카페나 가게들도 입점해 있고 공연장으로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악보사가 어디 있더라 하며 저어기 안쪽을 들여다보니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니 악보들로 가득하다. 매장을 구경하기 전, 먼저 사야 하는 악보부터 샀다. 악보가 많아서 나는 곧바로 못 찾을 거 같아 메모장에 써서 바로 직원에게 찾아달라고 했고 그렇게 악보를 받아 들었다.


여기 있는 책들은 모두 악보다. @ 에술의전당 대한음악사


     물건을 받아 얼른 계산부터 하고 그제야 가게를 찬찬히 둘러본다. 음악사는 악보도 팔지만 음악과 관련된 각종 소품도 팔고 있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무용 전공하는 학생 둘이 오르골을 사려고 가격을 물어보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어느 박물관에서 바이올린 모형으로 된 자석을 산 기억이 떠올랐다. 악보 외에도 각종 엽서, 볼펜, 클립, 수첩, 공책 등 여기저기 음표나 음악과 관련된 제품들이 가득하다.


     악보는 악기별로 정돈되어 있고 중앙 즈음엔 스코어(총보)도 있다. 스코어(score)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모든 악기의 악보를 한꺼번에 보는 악보를 말한다. 지휘자님이 보는 악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봐서 그때 총보라는 것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없는 가난한 대학생들이라 총보를 복사한 다음  악기(파트) 별로 오려낸 다음 그걸 악기별로 쫘악 붙여서 파트보를 만들었었다. 원래는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돈을 내고 파트보를 별도로 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는 가난한 대학생들이라 어쩔  없이 불법을 조금 저질렀다.


     심지어  년에   하는 연주회도 실은 내돈내산이다. 연주회 한번 하려면 장소 대관비용은 물론이고 그날을 위해 부르는 객원 연주자들 일당, 그동안 고생하신 지휘자님께 드릴 수고비까지 전부 돈이 필요하다. 진짜 그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심지어 파트보를  만들어놨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중간에   빼먹은 악기가 있어서 좌절하면서 다시 만들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수많은 악보의 바다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악보를 찾았다. 내가 1악장부터 4악장까지 한 곡을 온전히 연주했던 건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일명 주피터라 불리는 곡 하나뿐이었다. 그때 연습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아직도 1악장은 기억이 난다. 악보를 펼쳐놓고 유튜브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을 재생했다. 내가 아는 곡을 악보를 보면서 들으니 재밌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하이든 교향곡 94번 (일명 '놀람교향곡'으로 알려진 곡)을 연주했었는데 인원 부족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전 악장을 연주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부분만 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악보도 찾아봤는데 역시 전 악장을 연습하지 않아서인지 도무지 들어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더. 평소에 가끔 듣는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도 총보를 펼쳐놓고 악보를 보면서 들어봤다. 그래도 확실히 모차르트 교향곡 41번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수없이 연습했던 곡이니까 악보를 잘 따라갔는데 실제로 해보지 않은 곡들은 듣다가 한번 놓치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매장에서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동안 조성진 연주를 반복해서 들었더니 익숙한 멜로디라 좋았다. 악보사에 악보 하나 사러 갔다가 의외로 너무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악보 구입하고 구경 조금만 하고 바로 학원에 연습하러 가려고 했는데 결국  갔다. 이렇게 찬찬히 구경을 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오케스트라를 다시   있을까? 총보를 보고 나니 오케스트라를 했던 시절의 두근거림이 떠올랐다. 지금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후배들과 같이 연주하는 선배들이 몇몇 있다.   선배들 중에는  분밖에 없지만 지금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이나 졸업한  얼마  되는 후배들은 연주회에 많이 끼어서 같이 무대에 서더라.


    현 파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일반 오케스트라에는 멤버로 끼기가 어렵기 때문에 원래 하던 곳에서 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난 연습하는 건 자신 있는데 그보다 큰 문제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어려워해서 그걸 해결하는 게 숙제일 것 같다.


     선생님이 사 오라고 한 악보 하나 때문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악보사라는 장소와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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