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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21. 2022

요즘 구두를 자주 신게 되었다

나에게 구두를 신는다는 것의 의미는?

     나는 우리가 흔히 하이힐이라 부르는 굽이 있는 구두를 잘 신는 편이 아니다.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009년 ~ 2010년대 초반까지는 회사에서 정장을 입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블라우스에 스커트, 원피스를 입다 보니 그에 맞게 구두를 신을 수밖에 없어서 그때는 구두를 자주 신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직장 여성들이 구두를 신는 것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도, 여성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도 많이 바뀌었다. 화장을 하거나 힐을 신는 행위를 '꾸밈 노동'이라는 단어로까지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화장하고 꾸미는 데는 일명 화장 기술과 시간이 꽤 소요된다. 그래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아침 출근 시간에 더 바쁜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업이나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는 여전히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어야 될지 몰라도 최근엔 스타트업이나 IT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들이 늘어나서인지 아니면 사회적 인식이 변모해선지 점점 더 자유로운 복장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제는 거리에서 정장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여성들도 흔하게 볼 수 있고 그것을 더 이상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화장이나 하이힐 신기 등의 꾸밈에 대한 인식도 전보다는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 영역의 문제로 넘어갔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전족처럼 구두 안에 발이 갇힌다. 특히 앞코가 둥글하고 납작한 구두가 아니고 앞쪽으로 코가 뾰족한 것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원래 힐을 신어도 앞코가 둥근 것을 선호했는데 (이렇게 된 게 발이 조금 덜 아프기 때문) 요즘엔 앞코가 뾰족한 신발들만 찾아 신고 있다. 앞코가 둥근 구두는 아무래도 귀여운 이미지가 있는데 그에 반해 앞코가 뾰족한 구두는 그 모양처럼 냉정함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성숙한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힐을 신으면 뒤쪽에 있는 구두굽 때문에 발 앞쪽으로 힘이 쏠려서 눌리고, 어떤 신발은 걸을 때마다 발 뒤꿈치가 구두에 쓸려서 뒤꿈치가 닿는 부분이 슬슬 아프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구두를 벗고 보면 상처가 나있을 때도 있다. 구두의 특성에 따라 뒤꿈치뿐만 아니라 발가락 앞, 뒤, 옆이나 엄지발가락 옆쪽으로 나있는 있는 뼈 부분에도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신는 구두들 중 몇 개를 찍어봤다.



     그런데 나는 요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하이힐을 꺼내 신는다. 평소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적당히 촌스럽지 않으면서 편한 패션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서 운동화나 굽이 낮은 단화를 좋아하고 사이즈가 알맞게 맞거나 오버 사이즈로 된 넉넉한 옷을 선호한다. 구두나 신발이 꽉 끼어서 몸이 불편하면 그것이 기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불편한 복장을 하면 불편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일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한 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리에서 하는 행동도 불편하고 하기 싫어지기 때문에 편하게 입는 걸 좋아한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 깃든다는 말도 있지만 그 역도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즉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몸이 힘들면 그에 비례해서 평소라면 넘어갈 일에도 짜증을 낼 수 있다. 이 문장을 이용해 비유를 하자면, 몸이 긴장을 하면 마음도 긴장하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몸을 긴장시키고 그에 따라 마음의 긴장, 변화를 추구하는 나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구두를 신는다.


     하이힐을 신는다. 이것은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인식과 함께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메시지다. 힐을 신는 것의 일반적이고 주요한 목적은 패션이라는 기능과 관련되지만 나는 패션만큼이나 나를 긴장시키는 역할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꾸만 편한 곳에 안주하려고 하는 나를 붙들기 위해서 몸에 긴장을 주는데 이만큼 좋은 게 없다.



너 지금 괜찮은 거 맞아?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지금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늦는데?
이미 깨닫고 났을 땐 늦었다고.

정신 차려야 해.


     이렇게 나를 채찍질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이힐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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