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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29. 2022

나는 왜 친한 친구의 부케를 거절했을까?

부케를 받는다는 것의 의미

     바로 옆에 있는 부서와는 공식적으로 밥을 먹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팀 대 팀으로 밥을 먹게 되었다. 밥 먹는 자리에선 업무 이야기도 하지만 업무 외적인 이야기들도 하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다 최근에 우리 회사에 오래 다닌 다른 부서 여직원 중 한 명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화제에 올랐고, 공식적으로 회사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가족과 친지만 모여 결혼식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옆 부서 팀장님이 자기 결혼식 때 그 직원이 부케를 받아줘서 결혼식에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스몰웨딩이라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몇 년 전, 그 팀장님이 결혼을 했을 때 결혼이 좀 늦은 편이어서 본인이 결혼할 때쯤엔 주위에 부케를 받아줄 친구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직원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팀장님이 결혼을 할 때 부케를 받았던 그 직원은 당시에 결혼 적령기가 아닌 꽤 어린 편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팀 팀장님의 부탁으로 부케를 받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나는 친구가 많지 않지만 친한 친구들 중에 L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장점은 앞뒤를 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지도 않거니와 직선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오해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오래 알아왔기에 그것을 그녀의 장점으로 생각하고 이해했다. 그런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한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고, 청첩장을 찍었다며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침 우리 회사 근처로 이직을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잠깐 만나는 게 가능했다. 그녀는 나에게 청첩장을 주며 부케를 받아달라고 했다. 내 생에 처음으로 '부케를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그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편이고, 말투가 꽤나 직선적인 편이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주위에 부케 받을 사람이 없으니 네가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아주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딱 그 이정도의 말이었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내가 결혼을 안 했다고 무시하는 건가?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그런 말을 듣고 부케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혹시 이것 때문에 친구와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 결혼 예정도 없고 사진에 찍히는 것도 싫으며 부케를 받고 나서 6개월 안에 결혼을 못하면 3년 간 결혼을 못한다는 미신도 찜찜하고 해서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친구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결혼식에 참석하는 다른 친구 S에게 L의 결혼식에 오는지 물어보려고 연락을 했다. S는 결혼식에 온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혹시 부케 받아? L이 자기 결혼식에서 네가 부케를 받아주길 바라던데..." 그때는 결혼식을 3,4일 앞둔 시점이었다. 내가 부케 받는 것을 거절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다른 친구에게 슬쩍 말한 모양이었다. 결혼식장에 가서 보니 친구는 자기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남편의 여사친에게 부케를 던졌다. 다행히 이 일로 친구와 멀어지지는 않았다.


     부케를 받았던 그 직원은, 같은 팀도 아닌 다른 팀의 상사의 부탁으로 부케를 받았고 그 때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나는 친한 친구의 부탁인데도 거절했다. 친구가 주위에 줄 사람이 진짜 한 명도 없어서 내가 받기를 원했더라도 그보다는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부케를 던지는 것보다, 십 년을 알아온 네가 내 친구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면 나는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다. 결혼 준비에 정신이 없던 나머지,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리라 이해해주리라 믿고 그 말을 생략했던 걸까?


     나는 원체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고 미신도 신경 쓰이겠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긍정적인 쪽으로 답을 했을 것 같다. 당사자인 L이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 건 주위에 받을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부케를 던지는 것보단 내가 친한 친구니까 받아줬으면 했던 속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속이 좁은 사람인 걸까?
그럼 다른 팀 팀장님의 부케를 받아준 그 직원은 마음이 넓은 사람인 걸까?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신경 쓸 것들이 많다. 결혼식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행사이니만큼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결정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둔감해지는 것 같다. 특히 여자인 친구들 사이에서 결혼식을 계기로 멀어지는 게 이런 지점에서 서로의 배려가 부족한 경우에 발생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결국 그런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남들을 얼마나 배려할 수 있을까? 한편으론 그들이 날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부케를 던졌을 친구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나한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서운하다고 느꼈나 보다. 그래도 L은 신혼여행에 다녀와서 내 건 따로 비싼 걸 사 왔다면서 보디 오일 한 병을 내밀었다. 우리 사이가 멀어지지 않게 신경 써준 친구에게 고마워진다.


     그나저나 만약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친구도 많지 않고 웬만한 친구는 다 결혼을 해서 부케를 줄 사람이 없다. 꼭 부케를 던져야 하나? 그냥 내가 가지면 안 돼? 나와 적당히 친분이 있으면서 주위에서 곧 결혼 예정인 사람을 찾으라니 모래알 속에 진주 찾기도 아니고 그게 뭐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만약 다음번에 누군가가 나에게 부케를 받아달라고 부탁한다면? 처음 받아본 부탁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케를 던지는 사람이 내가 단순히 미혼이라는 이유 외에 다른 어떤 의미로(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 내가 부케를 받아 주길 바라는지가 중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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