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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Dec 23. 2022

여름과 가을의 틈, 그 사이에서

현재에서 탈피해 미래라는 모험의 세계로


계절의 사이.
계절은 칼로 무를 자르는 것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계절 사이의 기간엔 현재 계절의 것을 버리고 앞선 계절의 것을 미리 조금씩 가지고 온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땐, 봄바람에 여름의 더위가 조금씩 담겨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땐, 후텁지근한 공기 사이에 선선함이 담겨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땐, 어느새 코끝에 차가움이 다가와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올 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눈 속에서 새순이 돋는다.






     봄과 가을의 어느 시점에서 온도계로 측정한 온도가 15도로 같을지 몰라도 봄과 가을이 각자 지니고 있는 속성은 매우 다르다. 즉 과학적으로는 같은 온도라도 그게 봄일 때와 가을일 때의 기분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봄이 되면 설렘으로 충만하는 것과 달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엔 유난히 싱숭생숭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서는 요즘, 퇴사자들이 너무 부럽다. 만약 내가 이 회사를 퇴사하게 된다면 퇴사 선언을 어떻게 하지? 이전까지는 퇴사하면서 회사 전체에 보내는 메일을 한 번도 쓴 기억이 없는데 이번엔 전체인원이 10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고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 제일 오래 다닌 곳이니까 한번 전체 메일을 날려볼까? 어떤 문구를 써야 임팩트 있을까? 인터넷의 그 유명한 퇴사짤을 메일 마지막에 박아버릴까? 그럼 정말 재밌겠지? 뭐 이딴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퇴사짤. 이걸 날리는 게 (거의) 모든 직장인의 로망 아닐까?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지로 떠나기 전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 이직이 확정되고 과거의 것을 다 버리고 새것을 걱정하는 마음과 한편으론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그 사이의 시간. 그 틈의 시간이 정말 짜릿하고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란 것을 나도 지난 두 번의 퇴사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퇴사자들이 밉도록 부럽다. 그들은 이제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향할 것이다. 다가오는 날이 두렵고 걱정은 되겠지만 이곳은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미래가 되지 못한다. 익숙한 세계를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나갈 때의 모험심과 호기심이 과거라는 망령을 잊게 해주는 좋은 촉진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단순히 '이직'만 해서는 그러니까 이직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걸. 내가 무엇이 불만이고 무엇을 원해서 이직하는 것인지 혹은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스스로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결국 어느 회사를 가든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므로 이직을 한다는 것은 겉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지금 상황이 여러모로 성에 차지 않을 땐 껍데기라도 바꿔주면 어떨까? 껍데기 자체가 변화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통풍이 좀 되지 않겠어? 그런데 껍데기 운운하다 보니 때마침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탈피'였다.



그래,
나는 세 번째 탈피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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