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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20. 2024

퇴사자의 징조

마음은 결국 드러나고 만다

하루의 끝.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다.

대체 원인이 뭘까?

오늘 하루를 곰곰이 돌이켜봤다.






     오늘은 working day 중 가장 중간에 있는 수요일이다. 요즘 팀장님이 잔소리가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왜인지도 안다. 내가 내 지위에 전혀 부응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장급까지는 잔소리 안 듣고 최소한의 레벨은 유지했던 거 같은데 차장급이 된 지금은 힘에 부치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이걸 고스란히 들키기 전에 퇴사하려고 했던 건데 딱 걸리고 말았네? 내가 이 수준의 역량이 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잔소리를 들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혹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잔소리를 한다면 나도 수긍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건 내가 수긍하는 잔소리다.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을, 같이 일하는 막내팀원의 일을 줄여준다고(?) 괜히 말 한마디 꺼냈다가 일이 커져버렸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일인데 고집부리는 듯한, 자기는 손해를 하나도 안 보겠다는 듯한 이 아이의 태도도 너무 짜증 난다. 오늘 설명해 줄 때도 자기는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으니까. 


     조직에서 일할 때의 싫은 점은 이런 것이다. 결국 직급이 올라가면 이런 매니징 능력도 업무의 일환이라고 보고 사실 그게 맞다. 왜냐면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을 잘 align 시켜서 같이 일을 해나가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서 어렵다. 난 이런 거 잘 못하거든. 어떤 사람은 업무 스킬 자체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이런 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고 말이지.


     요새 내가 본부장님을 왜 이렇게 싫어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봤다. 본부장님이 짜증 난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사실 나도 조금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나는 그분보다 덜한 편이라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나이를 먹고도 계속 회사생활을 한다면 본부장님과 같은 스타일의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본부장님이 내가 가지고 있지만 싫어하는 점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데 나 또한 그런 성향의 사람이다 보니 그 지점이 불편한 거였다.


     사람들마다 개성이 있으니까 팀장님 같은 사람도 있는 거고 막내사원 같은 사람도 있는 거고 본부장님 같은 사람도 있는 거고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 같은 타입의 사람도 있다. 그리고 물론 나 또한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러저러한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더 이상 이 업무는 끊임없이 하고 싶지 않고 내가 잘한다는 확신도 없을뿐더러 잘 못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내 바닥이 보이는 거 같으니 더더욱 하기 싫다. 정말 이번 기말감사를 마지막으로 내년에는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이날 하루를 곰곰이 돌이켜보다가 든 생각 하나. 



퇴사자에게는
반드시
징조가 있다.



     누구나 처음엔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안고 입사한다. 하지만 그만둘 때 좋게 그만두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이를 악물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둥 악감정을 가지고 퇴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래서 퇴사를 앞두고는 그런 마음이 알게 모르게 행동과 말에 다 반영된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거나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업무처리를 하는 거다. 그런 사람들 보면 여지없이 1,2주 혹은 한 달 정도 있다가 퇴사를 했다.


     사실 이건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어서 좀 찔린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할 때 짜증이 쌓일 만큼 쌓여 있었다.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일과 맞지 않았던 나에게 있는 문제였는데도 나는 누구든지 나에게 뭘 물어보거나 귀찮게 하면 마치 사나운 개가 물고 늘어지듯이 사람들을 대했던 거 같다.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고. 진짜 못됐었지. 그 점은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좀 부끄러워서 다음에 퇴사할 때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모를 줄 알고 행동하지만 다 안다. 나중에 퇴사하는 나를 보고 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얘가 그때 그렇게 짜증 냈던 게 퇴사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오늘 다른 사람한테 OO님이 다른 데로 이직하려는 거 같더라는 소식을 들었어도... 아니다. 그 소식을 듣지 않았어도 얼마 전 OO님과 통화하다가 '어라, 얘 마음 좀 떴네? 조만간 그만두는 거 아냐?'라고 먼저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 달 뒤든 두 달 뒤든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역시...'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아무튼 첫 번째 회사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고 퇴사한 나는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감정 빼고 후회 없이 내 할 일만 잘 정리하고 나온다. 그게 최선이다. 업계가 좁고 특수해서 퇴사 후에도 업무 상 얽힐 수밖에 없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산업군으로 가거나 지역을 이동하면 솔직히 못 만난다. 퇴사하면 (거의) 끝이다. 


     내가 퇴사하고 예전 직장 사람들을 만난 경우는 직접 연락해서 한두 번 본거였지 생각보다 우연히 마주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퇴사한 인연이 이어진다는 둥 그런 거에 너무너무 얽매이지 말고 업무 주변정리만 잘하고 나오면 된다.


     얼마 뒤 경쟁사로 이직할 거라는 소문이 있었던 이 직원. 그러니 이미 회사로부터 마음이 떴고 경쟁사와 어떤 식으로든 접촉했겠지. 그런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다시 우리 회사를 다니기로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나랑 감정적으로 통화하고 나니 불편해져서 예전같이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사내에 소문이 날 정도면 꽤 진지한 단계까지 갔을 텐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예전과 같이 대할 수 있겠어.  


     




     이 직원은 이로부터 1년 정도 있다가 진짜로 퇴사했다. 한번 든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생기가 넘치고 활달했던 신입사원이었던 그도 입사 때보다 최소 다섯 살은 더 먹었고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입사할 땐 날씬했는데 그동안 살이 쪄서 조금은 후덕한 30대 중반이 되었다. 


     회계팀 특성상 연말 특히 12월 말에는 월마감과 연마감으로 인해 거의 백이면 백 야근을 한다. 12월의 마지막 근무일에도 나를 비롯한 우리 팀 팀원들은 야근을 해야 돼서 사무실에 남아 저녁을 배달시켜서 먹고 있었다. 이 직원은 12월 31일 자로 퇴사를 해서 마지막 working day 날이었던 그날, 법인카드를 반납하기 위해 늦은 시간에 사무실에 들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자주 인사도 나눴었는데 얼굴 보고 이야기한 지도 참 오래되었더라. 그간의 심경과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연말에 일하느라고 저녁까지 남아있어서 그래도 마지막에 얼굴 보면서 인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건네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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