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니seny Jul 26. 2023

이것은, 인턴 맞이 일지입니다 : 5편 (끝)

인턴과의 마지막 날, farewell party와 안녕을 고하다

<이것은, 인턴 맞이 일지입니다> 시리즈는 5편까지 이어집니다.

지난 4편에서 이어집니다. 






     처음 인턴이 들어왔을 때는 '한 달 반? 한참이네'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흘러 어느새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는 farewell party에 상영할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는데 이때가 월 마감할 때라 최고로 바쁠 시기여서 이래저래 영상까지 찍을 시간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케이크나 사다가 파티하고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러고 집에 왔는데 케이크는 먹으면 없어지는 거니까 안 없어지는 선물이 없는 건 좀 아쉬웠다. 그래서 급하게 사진 몇 장 이어 붙이고 배경음악 깔아서 짧은 영상을 만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영상에 쓸 배경음악은 바로 생각났다. 바로 밴드 모카(Mocca)의 'Happy'라는 노래다. 정말 유명한 노래라 아마 노래를 들으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아는 노래일 거다. 그런데 사진이 정말 너무 몇 장 없어서 3분이라는 짧은 노래인데도 사진에 맞춰 노래가 1분 만에 끝났다. 그래서 고민하던 찰나 내가 원래 말하려고 적어뒀던 멘트가 있는데 그걸 이미지 파일처럼 만들어서 그러니까 스케치북에 메시지 적어서 넘기듯이 만들어서 메시지를 이미지로 추가하면 음악과 영상 길이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해서 짧은 동영상이 완성되었다. 음악 길이에 사진 개수를 맞췄더니 사진 하나하나가 천천히 바뀌었다. 테스트로 한번 틀어보고 파일 변환해서 이메일로 보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가온 인턴 출근 마지막 날. 막내 사원이 미리 주문해 놓은 케이크 샵에 가서 케이크를 픽업해 오고 같이 와서 회의실 세팅을 했다. 유튜브에서 보니 방송 프로그램 마지막 녹화날에 스태프들이 출연자 대기실에 A4용지에 한 글자씩 글자를 출력해서 감동 멘트나 문구를 벽에 써붙여주는 이벤트를 하는 걸 많이 봤었다. 이걸 써먹어 보기로 했다.


     벽에 써붙이는 멘트들은 우리가 주접 멘트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한번 보면서 픽 하고 웃게 되는 기발하고 재밌는 문장이나 문구였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고 기분 좋게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영어로 주접을 떨어볼까 했지만 한글처럼 알파벳 한 문자당 A4 용지 한 장을 쓰려니 잘 안 맞았다. 그래서 영어로 된 좋은 문구이면서 짧은 문구를 하나 골라 한 장에 최소 두세 문자만 들어가도록 A4 용지를 준비했다. 아래 문장은 뭐든지 잘될 거라는 뜻으로, 나도 이번에 쓸 만한 좋은 문구를 찾다가 알게 된 신기하고 재밌는 영어 표현이다.



The World is your oyster!!!



     회의실 화이트보드의 맨 윗줄에는 인턴의 이름과 앞뒤로 하트를 출력해 붙였다. 그리고 둘째 줄과 셋째 줄에 걸쳐 미리 출력해 놓은 "The world is your oyster!!!"를 붙였다.


     시간이 되어 동영상 세팅까지 미리 해놓고 회의실로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영상 재생. 이미지 개수가 적은 데다 음악에 맞춰서 재생되도록 했으니 이미지가 빨리빨리 안 넘어가서 좀 민망했지만 그럭저럭 잘 끝났다. 


     먼저 팀장님이 한 말씀하시고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마지막으로 인턴 친구도 한마디 했다. 그리고 CFO를 모시고 와서 한마디 하시고 사진 찍어준다고 해서 회의실에서도 사진을 찍고 회사 로고 앞에서도 팀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식사는 다른 사람들은 일이 있어서 빠지는 바람에 조촐하게 나랑 막내랑 인턴이랑 셋만 갔다. 시답잖은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인턴이랑 막내 사원은 인스타 맞팔도 하고 우리는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세상 쿨하게 헤어졌다. 아마도 다시 볼 일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모른다. 세상은 넓고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까.






     아침에 출근해서 한번 대화를 트면 30분 정도 영어로 얘기했었다. 또 업무 설명을 해줘야 되니까 영어로 준비를 해야 돼서 부담되면서도 약간은 긴장되는 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오랜만에 느끼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무늬만 외국계인, 마치 홍철 없는 홍철팀 느낌으로 외국인 직원이 1명도 없는 외국계만 다녔다.

 

     억지로라도 외국인이 근무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영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비상한 아이디어도 빛이 다 바랬을 때가 돼서야 사무실에서 외국인과 만나 실제로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인턴이 여기서 뭘 얻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턴을 맞이하는 우리 팀도 첫 인턴이었고 또 인턴이라는 위치가 가지는 한계도 분명 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는 제도였다.


     인턴이 퇴사한 다음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내 옆자리는 이 사무실로 이사 올 때부터 계속 비어 있었는데 고작 6주간 인턴이 앉아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빈자리가 오늘따라 쓸쓸하게 느껴졌다. 인턴은 약 1주일 정도 있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출국한다. 그녀가 남은 1주일 간을 잘 마무리하고 시애틀로 잘 돌아갔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인턴 맞이 일지입니다 : 4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