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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l 22. 2023

이것은, 인턴 맞이 일지입니다 : 4편

미국인 인턴과 개인적으로 나눈 이야기들

<이것은, 인턴 맞이 일지입니다> 시리즈는 총 5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3편에서 이어집니다.





     인턴 친구가 내 옆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의식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이 친구도 우리가 바빠 보이는 걸 알고는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도 말을 걸어줘야겠다 싶었다. 인턴 친구 성격도 원체 나서거나 나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말을 시키면 또 대화는 잘했다. 그래서 스몰톡을 간간히 했다.


     그녀는 여권 상 국적인 미국인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국계 미국인이다. 내가 미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 그리고 아마 미국인이라고 하는 정체성은 우리가 정의하는 한국인이라고 하는 정체성과는 다를 것이다. 다양한 인종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미국인이 되는 것이다. 


     이 친구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이민온 부모님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난 거라 아무래도 중국이나 아시아 계통의 집안 분위기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흔히 미디어에서 비치는 미국인의 이미지 하곤 달랐다. 오히려 스테레오 타입의 미국사람보다는 우리나라 사람이랑 더 비슷한 느낌이랄까. 부모님 마인드도 우리네 부모님들과 비슷한 거 같았다. 


     이미 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이것저것 많이 먹어본 것 같다. 미국인들은 개인주의적이라 나는 베지테리안이네, 뭐는 알레르기 있어 못 먹네 하면서 까다롭게 굴 줄 알았는데 음식도 딱히 가리지 않고 매운 것도 잘 먹는다고 했다. 이것도 얘가 아시아계통의 미국인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흑인이건 아시안이건 백인이건 모두 미국인이다. 그래서 미국인이라고 했을 때 어떤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묶기가 어렵다는 게 뭔지 알 거 같았다.


     이왕 회사생활 체험하는 거니까 다른 부서 사람들도 많이 소개해주고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면 좋았을 텐데 그걸 거의 하지 못했다. 내가 거의 인턴을 전담(?)하고 있다시피 했는데 다른 부서 사람들하고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다 보니 인턴한테 업무설명 좀 해주세요, 같은 간단한 부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팀 하고 교류가 없어서 좀 미안했다. 이래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달까.






1. 시애틀


     나에게 시애틀 Seattle이라는 곳은 미국의 지명에 불과하다. 시애틀은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 제목이 동시에 떠오르는 곳이다. (이 영화를 보진 못했는데 제목을 보아하니 아마도 시애틀 배경이지 않을까?) 이것 말고는 아는 게 전혀 없다.


     인턴이 시애틀 출신이라고 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시애틀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부산여행 간다고 하다가 날씨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레 시애틀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인턴은 시애틀이 날씨도 좋고 자연경관도 보기 좋고 살기 좋다고 칭찬을 많이 했다. 그곳 또한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데 여름이 우리나라처럼 습하지 않고 겨울 또한 우리나라처럼 어마무시하게 춥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전혀 관심 없었던 시애틀에 괜히 가보고 싶어졌다. 



2. 미국인들의 성향


     미디어에 비치는 흔한 미국인들의 모습이란 자기주장이 강하고 앞에 나서는 거 좋아하고 뭐든지 앞서야 직성에 풀리는 듯한 모습일 것이다. 말이 많고 활발하면서(outgoing) 모든 일에 주도적인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인싸'의 모습이랄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래서 인턴을 맞이하면서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데 전혀 달라서 의외였다. 


     물론 회사 분위기가 좀 딱딱한 것도 있으니 그것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친구는 수줍어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말하기를 내향적(정확히 'introvert'란 단어를 썼다)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직접 들으니 신기했다. 나도 내향적인 사람인지라 반갑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기간 동안 미국에서 친구들이 한국으로 놀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자기보다도 더 내향적이라 혼자도 아니고 친구 둘이 왔는데 둘이서는 전혀 돌아다니려고 하질 않는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는 낯선 곳이니 핸드폰을 들이밀던 아니면 영어로 손짓발짓 해가면서 길을 묻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들을 너무 꺼린다고 했다. 그래서 숙소에서 이제나 저제나 자기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 친구는 그래도 나름 어떤 벽을 깨려고 한국이라는 외국까지 온 거 아닐까 싶어 대단해 보였다. 고작 만 20살인데 연고도 없는 낯선 외국에 와서 이것저것 경험해보려고 하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꼭 도전적이지 않다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도전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는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3.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의 '발음'의 문제


     이건 인턴 친구와 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있었던 일이다. 팀장님은 국내에서 영어공부를 하셨지만 외국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고 해서 영어를 어느 정도 잘 구사하는 편이시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 영어를 배웠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발음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팀장님이 말하는 몇몇 단어를 인턴이 잘 못 알아 들었는데 나는 한국인이니까 당연히 알아 들었지만 단어가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발음해서 들려주니 '아하'하고 바로 이해를 했다.


     내가 미국에 가서 영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런 거 치고는 발음이나 인토네이션이 좋은 편이라고 칭찬받았다. 발음이 좋다고 해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말도 그렇듯 어느 정도 정확한 발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른 단어로 오인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발음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 그것은 우리말에는 없는 영어의 특정한 발음과 의미에 영향을 주는 인토네이션 같은 것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4. 일자리 구하기 


     인턴 거의 막바지즈음에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취업할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 친구는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 학기 있다가 졸업하고 일을 구해야 하기에 그런 것들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학벌이 좋고 대기업 출신이신 팀장님은 이 안건에 대해 본인 입장에서 학벌(영어로는 academic background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며칠 전에 전화영어 수업에서 이 단어를 배웠기에 너무너무 신기해서 혼자서 계속 써먹었다 크크)도 꽤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어중간한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다녀본 적이 없는 나는 조금 다른 의견,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줬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은 학벌? 학교이름? 솔직히 좀 중요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이다 뭐다 해도 기본적으로 필기시험도 있고 하다 보니 머리가 좋은 애들이 학벌도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견이나 중소기업이라면 업무 경력이나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는지 이것들이 없으면 하다못해 자격증이라도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거 같다고 했다. 미국은 경험/경력이 더 중요해서 인턴 친구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정규직 자리를 구하기보다는 여러 자리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신입으로 지원하던 때의 이야기도 조금 들려주었다. 이미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요즘과는 맞지 않을 거 같지만 언제나 기본값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는 경영학과 전공이었고 재무/회계 쪽을 지망했지만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관련된 업무 경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인생을 돌이켜보니 9살 때부터 용돈기입장을 써오고 있단 사실을 발견했고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을 통해 조직생활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에서도 오케스트라 단원같이 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인턴에게 'You're so brave!' 'I envy you!'를 몇 번이나 남발했는지 모른다. 너는 아직 만 20살이니 실패하고 넘어져도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그게 너무나 부럽다고. 나도 12년 전에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학교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돼서 면접 보러 다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분명 잘될 거라고 말해줬다. 


     이 질문과는 별개로, 나에게 다시 스무 살이 주어진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좀 궁금해지긴 한다. 그 당시에 20살이 되는 것과 지금 20살이 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거 같긴 하다. 같은 20살이긴 한데 지금은 시대적으로 외부환경이 그 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5. 한국에 대해 느끼는 점


     인턴의 고향인 시애틀에도 바다가 있는데 여기와 다른 점은 뭐냐고 했더니 우리나라는 바다가 깨끗한 편이라고 했다. 미국의 해변가는 쓰레기가 넘쳐난다고. 그리고 거리에서 보이는 노숙자도 미국보다 적다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했는데 원래 없던 노숙자가 왜 생겼는지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노숙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7년 IMF 시절부터 설명하려니 진땀을 좀 뺐지만 그럭저럭 설명을 했다. 그리고 지하철 입구에서 봤을지도 모를 빅이슈 판매원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다음에 지하철 탈 때 꼭 유심히 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인턴이 느끼기에 한국인들은 줄을 설 때 너무 가까이 붙는다고 했다. 이건 personal space와 관련한 문제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줄 설 때 누가 끼어들까 봐 부담스러울 정도로 붙어서 서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사람들 간 거리가 가까운 편인데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북유럽 버스정류장 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식당에서 우리는 종업원을 부르는데 미국은 안 가봤지만 유럽만 가봐도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자리를 안내해 줘야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서도 우리나라처럼 종업원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조용히 눈이 마주치면 알아서 온다. 

     

     그리고 인턴이 롯데월드에 다녀온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많아서 놀랐고 교복을 빌려주는 가게가 있어서 자기도 빌려서 입었다고 했다. 나 때는 학교 졸업하고 나서 자기 고등학교 때 입고 다니던 교복을 가지고 와서 입는 게 유행이라고 알려줬다. (나 정말 너무 오랫동안 안 간 티가 난다) 그렇지만 빌린 교복이 더 이쁠 것 같다는 함정. 미국인 인턴 친구 덕분에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알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일을 잘하려면 관심분야이면서 잘하기까지 해야 좋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지만 나랑 안 맞거나 잘 못할 수도 있는 일인 반면 어떤 일은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잘하는 경우, 후자는 후자 나름대로 길게 일을 할 수 있다. 닭과 달걀 같이 얽히고 설킨 어려운 문제다. 


    내가 여기서 일한 지 벌써 6년 정도 됐다고 하니 여기서 계속 일할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2년 전부터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까지는 인턴에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빨리 방향 전환을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이직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면 이제는 이직에 대해서 크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지금까지 일해온 날보다 앞으로 일할 날들이 (아직은) 더 많기 때문에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어디에 선가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너와 나 모두에게
  Good Luck! 을 빌어본다. 




<이것은, 인턴 맞이 일지입니다 : 5편(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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