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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25. 2023

같은 포인트를 서로 반대로 생각하기

팀장님과의 의견충돌

      오늘 팀장님한테 오랜만에 혼났다. 그런데 팀장님께서 화를 내면서 내가 생각한 것과 정확히 반대편을 짚었다. 그래서 서로 다르게 생각한 이유를 파악해 보기 위해 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본다.






     어제 팀장님이 오후 반차로 자리를 비우셨었다. 그때 팀장님의 보고라인으로 계신 CFO이자 본부장님이 우리 팀 단톡에 오늘 오전에 있던 회의에서 중요한 내용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때 회의 내용에 대해 오늘 이러저러한 내용이 있었다고 얼추 다 설명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중요한 몇 가지를 빼고 이야기했다. 나는 나한테 직접 물어본 것이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여지를 남겨 두고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지를 남겨두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내 업무 영역/책임 범위 밖의 것을 해버리면
바로 윗상사에겐 내가 너무 깝친다고(나선다고) 느낄까 봐
(= 상사를 무시한다고 생각할까 봐)

2. 1번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중요한 건 '팀장님이 직접 보고하세요'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제외


     그런데 팀장님은 이걸 전부 반대로 지적하셨다. 오히려 본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는 내가 팀원이어도 팀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사랑 하는 회의에 나와 팀장님 둘 다 참석했을 때 과연 내가 어디까지 나서야 하는지 그 경계선을 찾기가 어렵다. 예전부터도 회의에서 나서려면 얼마든지 나설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나보다 윗사람들이 있으니까 굳이 나서지 않았던 거다.


     그런 점에서 어제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 전부 말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간단하게 내용 전달만 해주고 중요한 건 팀장님이 하면 되는 것으로 일부러 남겨둔 거였다. 그런데 팀장님이 정확하게 이 지점을 지적하실 줄은 몰랐다. 


     그런 태도를 취하다 보니 본사와의 회의에서도 나랑 직접 관련된 부분만 집중해서 들었다. 내가 회의를 하면서 메모를 하는 건 회의의 전반적인 내용 파악보다는 나중에 이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자료를 정리할 때 필요한 부분을 수집한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팀장님이 원하는 것처럼 숫자 외의 다른 정보에 대한 메모를 하지도 않았고 그만큼 집중해서 듣고 있지도 않았다.


     실제로 중요한 얘기가 몇 개 오가긴 했는데 그것들은 직접 숫자 집계하는 것과 관계가 없어서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추가로 들었던 내용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팀장님이 오늘 아침에 '어제 회의에서 나온 중요한 내용 뭐야?'라고 물었을 때 딱 한 가지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가끔 팀장님이 '너는 더 잘할 거 같은데 숨기고 있는 느낌이란 말이야'라고 할 때 살짝 찔린다. 팀장님이 이런 내 속마음까지 알고 말하는 건지 그냥 한번 떠보는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려면 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맞긴 맞기 때문이다.


     내가 애기애기한 3년 차 팀원이라면 또 모를까 이제는 경력 10년 차를 훌쩍 넘긴 중년의 팀원이다. 그러니 팀장님은 본인이 자리에 없을 때 팀장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대처하길 바라신 것 같다. 만약 내가 어제 알아서 잘 보고했더라면 팀장님이 오늘 아침에 같은 이야기를 본부장님께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새로운 관점이었다. 뭣도 모르고 책임과 권한이 거의 없는 사원일 때는 모르겠으나 애매하게 회사의 중간관리자 정도라면 내 위치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즉,
내가 하는 대로
내 위치가 정해지는 것.



     팀장님한테 다 알고 있는데 일부러 말 안 한 거라는 속마음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이건 하나의 가정이지만, 만약 내가 팀장님 역할까지 다 해버린다면 팀장이라는 자리의 역할이 없어지는 거고 팀장님은 본인의 위치에 불안함을 느끼게 되겠지. 비슷한 경우로 팀장님도 본인이 나서서 다 해버리니까 때로는 본부장님이 CFO로서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CFO-팀장님과 팀장님-나, 이 두 관계의 차이라면 나는 아직 팀장님을 대체할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회사라는 조직의 생리와 분위기를 앞서서 읽어내는 것은 너무나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지만 때로는 단점이다. 지금 바로 앞의 상황만 내다봐도 되는데 그보다 몇 수 앞을 읽어버리는 바람에 없는 걱정도 사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해가 되었다. 올해 초 어느 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팀에는 나와 직급과 경력이 동일한 팀원이 한 명 더 있는데 올해부터는 이 두 명을 작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할 것이라고. 위에서 하는 지시를 받아서 그대로 일하는 팀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맡아서 본인이 생각한 방식 대로 일을 진행하고 책임질 수 있는 팀원이 될 수 있도록 업무를 지시하겠다고 하셨다.


     이와 더불어 팀장 예행연습을 시키겠다고 선포하셨다. 나와 동료는 중 한 명은 상반기를, 한 명은 하반기 팀장대행을 하게 되었다. 본인이 맡은 기간 동안 팀장님이 부재하거나 휴가 등으로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경우 본인이 팀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부서와 소통하고 위 보고라인인 본부장님과 소통하여 업무를 진행해 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더 이상 사원이, 말단 팀원이 아니다.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다. 조직에서라면 당연한 요구다. 그런데 잘 보면 팀원일 때부터 리더의 싹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같이 그런 싹이 없는 경우도 많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스스로 자질이 없는 걸 알고 있는 모순된 상황. 조직이 주는 울타리는 아늑하고 달콤한 안정감을 주지만 나는 조직이라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이런 요구 때문에 조직을 떠나 혼자서 일 할 수 있는 방법엔 뭐가 있나 자꾸 울타리 밖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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